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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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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이야기.


BY lala47 2013-03-30

병실에서의 일이다.

새벽 세시에 간호원이 흔들어 깨웠다.

\"어제 대변 보셨어요?\"

아무리 병원이지만 자는 사람을 깨워서 새벽 세시에 할 질문은 아니다.

귀찮아서 따지고 싶지가 않아 간단히 대답해주었다.

\"네.\"

문가에 사십대 아줌마에게도 간호사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성격이 급하고 활달한 아줌마는 그냥 넘어가지를 못한다.

\"지금 몇시야? 이 시간에 그거 물어보려고 사람을 깨워?\"

파르르 화를 내니 간호사는 물러갔다.

나는 왜 부당한것에 대해서 대항하지를 못할까.

아마 오래전부터 그것이 내 생활이 되어 왔기때문일게다.

간호사는 아마 교대 전에 근무한 간호사의  실수를 보고 자신이 얼른 기입하고자

환자를 깨웠을것이다.

사람들은  목소리 크고 직설적인 사람에게 약하다.

새벽 다섯시에는 항상 피를 뽑아간다.

두대롱의 피를 매일 빼앗기니 이러다가 빈혈 생기겠다.

 

토요일에는 아이들이 병실에 다녀갔다.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한 윤하가 원피스를 입고 하얀구두를 신고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다가 할머니를 보자 활짝 웃는다. 웃음이 많은 아이다.

\"안아.\"

두손을 뻗치며 내게 달려든다.

윤하의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며느리가 나를 쿡 찌르며 귓속말을 한다.

\"윤지가 보고 있어요. 윤지도 뽀뽀 해주세요.\"

돌아보니 윤지가 슬픈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윤지도 할머니가 뽀뽀해줘야지. 일루와.\"

윤지가 윤하를 밀어내고 내게 안겼다.

윤지의 양뺨에 뽀뽀를 해주니 베시시 웃는다.

이쁜 손녀들... 이 아이들을 언제까지 볼수 있을까.

 

병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오인실이었다.

유방암 환자들만 모였지만 뇌로 전이된 사람도 있었다.

논산에서 올라온 사람.. 울산에서 올라온 사람..문가의 활달한 아줌마는 인천댁이다.

일산에 사는 오십대 후반의 아줌마는 식당을 경영한다고 했다.

그 아줌마도 명랑했다.

암수술을 하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수다스럽고 명랑하다니 신기한 일이다.

모두 사오십대고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

인천댁은 유방암 수술을 하고 와서 하루동안 끙끙 앓더니 살아나서 병실 분위기를 밝게 했다.

\"정여사님..전 혼자 밥 먹는거 싫어요. 제가 여사님이랑 같이 먹으면 안되겠어요?\"

\"그렇게 해.\"
식판을 들고 내 침대로 왔다.

가지고 온 반찬을 남편이 놓아준다.

병실에서 남편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열심히 간호하는 남편들을 보니 한번도 나를 간호해준적이 없었던 그 남자가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오니 앞침대의 일산댁 딸이 아이들에게 딸기를 한접시 갖다주었다.

맛있게 딸기를 먹고 나니 내게 있던 귤을 하나 윤하가 그 아줌마에게 준다.

\"나도 귤먹고 싶었는데.\"
윤지가 마땅치 않은가보다.

\"딸기도 주셨잖아. 우리도 보답을 해야지.\"

엄마의 말에 윤지가 끄떡인다.

\"할머니가 귤 줄까?\'

윤지에게 귤을  주니 좋아라 한다.

\"하나는 여기서 먹고 하나는 가지고 가.\"
\"할머니! 귤 한개가 물렁물렁해요. 물렁물렁한건 상한거예요\"
\"그래? 하나 더 있으니까 바꿔줄게.\"

\"엄마가 가다가 사줄게 할머니 잡수시게 놔두고가.\"
며늘아이가 말렸지만 윤지는 귤을 쥐고 놓지 않는다.

\"아니야 난 실컷 먹었으니 이제 윤지 줘도 돼.\"

 

저녁에는 병실 식구끼리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내가 젊었을때는 전인화 닮았다고 그랬어.\"
일산댁의 말에 인천댁이 반기를 들었다.

\"못믿겠어요. 인증샷 가지고 와야 믿지요. 윤복희 닮았구먼.\"
\"진짜라니깐.\"

\"인증샷 가지고 오라니깐요.\"
\"알았어.\"

옆침대의 논산댁 남편이 한수 거들었다.

\"우리 마누라는 정말 이뻤어요. 김지미 닮았었지요. 뇌까지 전이가 되어서 내가 속이 상해

죽겠어요.\"

\"맞아요. 김지미 닮았어요. 지금도 미인이시잖아요\"

인천댁이 동의를 했다.

\"난 진짜 전인화라니깐.\"
아직 지지않는 일산 아줌마가 전인화를 주장한다.

\"맞아요. 이뻤겠어요.\"
내가 기를 살려주었다. 일산 아줌마랑 인천댁은 퇴원후에 파주 요양병원에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한다.

암요양병원은 암환자들을 위한 식단도 짜주고 운동시설도 있고 의사들도 있다고 했다.

한달에 백만원이 든다고 한다.

실비보혐을 들어놓은 사람들은 주저히지 않고 요양병원으로 간다.

나는 젊은 나이부터 많은 수술을 해서 보험가입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버려 아무런 보험이 없다.

암보험을 들어놓은 사람들은 돈걱정이 없으니 얼굴이 밝다.

퇴원하는 내 어께를 감싸 안고 에레베타까지 데려다 준 사람은 인천댁이다.

울산댁이 그 뒤를 따라 왔다.

울산댁도 얼른 간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되어서 수술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말했다.

 

며칠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마트에 나가 과일도 사고 반찬거리를 샀다.

오늘은 멸치볶음이랑 뱅어포를 구웠고 오징어를 데치고 파프리카를 데쳐서 저녁을 먹었다.

끊었던 우유도 먹기 시작했다.

하루 두끼를 먹기로 했으니 점심은 우유와 바나나다.

입원후에 체중이 삼키로가 빠졌다.

체중이 늘면 유방암이 재발한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다이어트도 빼놓을수 없는 대목이다.

어렵다.

살아남기가 참으로 어렵다.

누구랑 말을 하려면 숨부터 차서 말을 길게 하기가 힘이 든다.

숨이 새나가는 느낌이다.

처음으로 숨이 새 나가는것을 느낀것은 윤지가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했을때였다.

한권 읽기가 힘이 들다니...

이제는 윤지가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하지 않는다.

허나 이렇게 골고루 음식을 먹고 약을 열심이 먹으면 나아지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