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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생각


BY 그대향기 2013-03-23

 

 

낮에 큰딸하고 같이 목욕을 갔다.

외손녀를 데리고 삼대가 온천욕을 하러 간 것이다.

큰딸은 지금 둘째를 임신 중이고 8월이 출산 예정일이다.

삼복더위에 출산이라 나는 걱정인데 큰딸은 오히려 덤덤하다.

큰딸은 둘째 계획이 당장은 없었는데 이왕 낳을거면 젊었을 때 빨리 낳고  키우라고

친정엄마인 내가 임신을 부추겼다.

요즘 애들이 친정엄마가 낳으란다고 낳지도 않을건데 순진한 큰딸....착하게도 임신을 했다.

 

마침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를 해야 한다기에  친정하고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했다.

두 아이를 혼자 감당하려면 꽤 버거울 것 같아서 종종 봐  줄 수 있는 20분 거리의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홀몸도 아니고   나도 직장이 있어서 입주할 집에 청소는 용역을 쓰게 했다.

새 아파트라도 비워둔지는 꽤 되었기에 새집증후군은 없을 것 같다.

구석구석 소독도 하고 깔끔하게 청소하려면 8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그 시간에  온천을 하기로 했는데 외손녀가 물놀이를 너무 좋아했다.

 

큰딸은 배가 제법 도도록하고 가슴도 커져가고 있었다.

유난히 피부가 뽀얀 큰딸은 목욕탕 안에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눈에 띈다.

편하게 씻을 수 있게 외손녀도 봐 주며 큰딸의 등을 비누칠 해 주다가 문득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다..

5남매의 막내인 내가 기억하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늘 할머니셨다.

엄마랑 같이 몇번의 목욕을 했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릴 때는 집에서 가마솥에 물을 데워서 목욕을 했고  고등학교 때 부터는 내가 독립을 했으니 몇번 없다..

 

철들고 직장에 다니면서는 늘 바빴고

엄마가 편찮으시고 내가 여유가 되었을 때는 엄마의 몸이 말을 듣지 않으셨다.

엄마 살아 계실 때 친정에만 가면 엄마를 모시고 동네대중탕을 자주 갔었다.

작고 구부러지고 거뭇거뭇 저승꽃이 핀 엄마의 등을 밀어드리면서

몇번이나 더 밀어 드릴 수 있을런지 조마조마했던 순간이 가슴 아팠다.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딱 한번

호텔 사우나에서 전신맛사지에 세신까지 풀코스로 해 드린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 일이 두고두고 행복하셨던 모양이다.

맛사지를 받으시면서도 몇번이나 비쌀건데 이래도 되냐고 걱정하시던 엄마

그래도 기분은 좋으신 듯 참 좋구나...아이쿠...시원하다....그러시던 엄마

막내딸이 그립고 보고싶어도 다리가 너무 아파 혼자 버스를  갈아타지 못하셨던 엄마는

모시고 살던 오빠한테는 미안해서 막내한테 자주 가 달라고 못하셨다.

엄마 돌아가시기 몇해 전에 나 사는 곳에 집 하나 장만할테니 엄마 오시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가고싶은데 니 오빠가   안된다칼끼다...병원에도 자주 가야하는데 이서방 보기 민망해서 안된다.

 

그러시다가 엄마는 나한테도 못 오시고 돌아가셨다.

거의 매일 병원에 가셔야 한다며 오빠가 말리셨다.

직장일도 바쁜데 친정엄마 병수발까지 어찌하냐며 끝내 엄마는 보내지 않았다.

그 일은 두고 두고 후회가 되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이렇게 후회만 남는거라면  단 몇년 아니 몇개월만이라도 모셔볼걸....

그러고보면 나는 참 행복한 친정엄마다.

시집간 딸을 지척에 두고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집에 같이 사는 친정엄마도 있겠지만 같이 살지 못하는 형편에 가까운 곳이라니 얼마나 다행인지.

나중에야 얼마나 더 먼데로 이사를 가서 살게될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곳에 있을 때 실컷 봐야지.

원없이 보여주고 보러가야지~

그리움이 남지 않도록 안타까움이 생기기 않도록 내가 엄마한테 못 드렸던 사랑을 딸한테 다 주고 싶다.

엄마하고 같이 못 간 목욕 때문에 눈물나게는 하지 말아야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못 해 드렸던 기억으로 목이 메이게는 만들지 말라고 해야지.

외손녀 재롱에 살아온 날들의 행복했었던 추억만으로  수 놓는 융탄자를 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