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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석규와 자연


BY 새봄 2013-03-12

배우 한석규를 좋아하지 않았다.

난 영화를 일 년에 한 번도 보지 않는다.

그래서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배우 한석규를 싫어하지 않는다.

인상이 좋은 편이고 조용하게 사는 것 같아서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토크쇼에 그가 나왔다.

리모컨 배터리가 없어서 채널을 돌리기가 귀찮아 보게 된 것이다.

근데 그 사람은 다른 연예인하고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그 흔한 자식 자랑도 떡치는 사랑이야기도 없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그러면서 차근차근 내보이고 있었는데

산속에서 살고 있는 은둔자 같았고,

자연과 함께 파묻혀 사는 자연인 같았다.

사는 일도 느끼는 것도 행복도 모두 자연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자연을 보고 자연을 만지며 지키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딸아이 초등학교 때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자.’ 딸아이도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또박또박 공책에 적어갔다.

선생님은 별 반응은 없었지만

만약에 자세히 보셨다면 속으로 뭐 이런 가훈이 다 있나 하셨을 것이다.

난 아이들 어릴 적에 시간만 나면 동네 화단이나 공원을 찾아다니며

나무나 꽃이나 곤충을 보러 다녔다.

꽃이름을 알려주고 모르면 들꽃 책을 사서 같이 확인을 했었다.

아파트 화단 울타리로 심어 놓은 쥐똥나무에 붙은 나방 애벌레를 건드리면

애벌레는 화가 나서 입에서 짙은 녹색 액체를 토해내기도 했다.

나중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관찰했고,

그것에 관한 글을  써서 딸아이는 글짓기 상을  받기도 했다.

가끔 딸아이가 늦게 집에 들어올 때가 있었는데,

까치가 집을 짓는 걸 보느라고 늦었다며,

까치가 어떻게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가는지 상세히 얘기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딸아이도 아들아이도 꽃피는 계절이면 들꽃 다발을 만들어 가지고와서

엄마 선물이라며 내게 내밀곤 했다.

그 시절은 남편으로 인해 많이 힘든 시절이었지만

아이들과 자연을 같이 보며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고 이해해줘서 행복하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딸아이는 스마트폰에 자연에 관한 사진을 많이 찍어 나를 보여줬다.

보도블록에 핀 들꽃이며,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며, 화단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이며...

딸아이는 여고시절 창밖 풍경을 묘사하기도 했었다.

봄이면 교정 밖으로 이어진 나무와 꽃들이 너무 화사했어.

난 공부시간에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지.

혼자보기 아까워서 친구들에게 창밖을 보라고해도 친구들은 별 관심이 없었어. 난 엄마를 닮았나봐

이런 말도 덧붙인다.

내가 삐뚤어지지 않은 건 엄마랑 같이 자연을 바라봐서 그런 것 같아.”

자연을 사랑하자는 다소 엉뚱하고 독특한 가훈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그것이 나쁜 곳으로 튀고 싶은 마음을 바로 잡아주었고

결손가정으로 인해 흔들리고 흔들릴 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 하며 어지러운 세상을 바르게 봤을 것이다.

 

한석규는 우리가 어디서 왔을까요? 하면서 자연이라고 했고,

우리가 어디로 돌아갈까요? 하면서도 자연이라고 했다.

맞다 우린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잘났다고 큰소리쳐도 못났다고 무시해도

우린 그냥 자연 속에 머리 좋은 인간일 뿐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다.

 

 

자연이 깨어나는 3월이 왔다.

온 동네와 온 산과 온 대한민국에 수채물감처럼 번질 꽃계절이 왔다.

습자지 같은 여린 꽃이 피고, 하루하루 다른 색으로 나를 놀라게 하겠지...

바람에 많이 흔들리며 꽃잎은 엄마 곁을 떠날 날도 오겠지만

꽃잎아이는 그날을 잊지 않을 거야. 자연을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처럼...

 

배우 한석규가 좋아졌다.

나처럼 유별나게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인간 한석규가 좋다.

어느곳에선가 저런 남자가 날 기다리고 있을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