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아저씨께.
“안녕하세요. 추운데 나라를 지킨다고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위문편지를 초등학교 때는 일 년에 두번. 중학교 때는 한번정도를 꼬박꼬박 썼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샘이 내용을 불러줘서 받아 적었고 중학교 때는 나름 사연을 바꿔 시도 인용하고 학교일상도 넣고 했는데 답장은 한 번도 없었다. 글을 잘 썼던 친구들은 답장이 왔다고 자랑도하고 엄청 잘생겼다며 사진을 교실에 돌리며 흑심? 을 품기도 했었다.
벌써 이틀 밤이 지났다. 아들이 부사관으로 2월4일 2시까지 공군사령부에 입대를 하고 지나간 시간이다. 당연히 마지막 모습을 봐야하는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학교에서 난 면접이 있고, 아빠는 일을 하고 누나는 서울 있고...
어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불안함을 떠올리면, 모든 것을 미루고 가야지만 3개월 뒤엔 멋지게 임관한 순간이 올 거라는 확신을 하면서 아들과 미리 이별파티를 했었다.
아들 왈 “3일 날에는 진주친구를 만나 찜질방에서 자고 입대 할 께요 . 꼭 그러고 싶어요.” 하는데 겉으로는 “그 방법도 있네.” 웃었지만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순간순간 날카로운 칼처럼 비집고 올라와 힘들었다.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하기로 결정. 3일 일요일. 짐을 챙기고 좋아하는 프라 모델을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방을 나왔다. “아들! 내일 군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니 어때. 설레니? 엄마잔소리도 안 듣고...” 순간 아들의 얼굴은 살짝 붉어지며 “참 설레겠다.” 한숨을 하늘로 날리며 태연한척 대답했다. 우린 사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그 기쁜 순간이 이젠 이별이란 슬픔으로 바꿔 입고 아들을 보내야하다니.. TV, 신문, 친척조카들, 지인들이 아들을 군대 보낸다며 눈물짓거나, 말 할 땐 머리로만 끄덕였지 그 텅 빈 슬픔을 전혀 이해 못했다. 아니 보내고 나면 후련하고 일거리가 하나 줄어들리라 근데 “역지사지.” 내가 겪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그건 그저 눈이 덮여있는 큰 강물이라는 걸....
내일이면 못 볼 아들을 친구와 함께 7번방의 선물이란 영화를 봤다. 내용은 슬프고 코믹했지만 점점 다가오는 이별 시간의 잔인함에 영화 속에 묻혀 울었다. 친구엄마가 초대한 식당에서 훌쩍 커버린 애들의 모습에, 세월의 빠름. 안부. 위로, 합격기쁨을 반찬삼아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서 몰랐던 아들들의 취향과 실력을 보고 들으며 잠시 흥겨웠었다. 밤은 깊어가고, 마지막 추억으로 볼링장에서 서투른 솜씨로 다 같이 게임을 하면서 “아! 이 밤이 안 갔으면. 같이 자고 새벽에 올까? 바로 학교로 갈까? 찜질방에 불이? 늦게 일어나 입대를 못하면?” 등등 볼링 핀 수만큼 이나 생각들로 흔들렸다.
“엄마! 그만하고 가요.” 라는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고 차에서 짐을 꺼내 찜질방입구에서 “잘할 수 있지? 사랑해” 하며 안아주고 등을 토닥이며 들어가는 모습을 봐야 했다.
첫날밤엔, 가본 적 없는 부대모습을 연상하며 혼자서 낯선 환경의 밤을 보낼 아들 땜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안 갈 것 같은 하루가 일상의 일들로 힘겹게 지나고 벌써 이틀째다. 이번 설날도. 졸업식도. 생일도 모두 군에서 보내야 하는 것에 아들은 몹시 서운해 했는데 “이 또한 지나가겠지.” 믿는다. 3개월 뒤 “ 충성! 박 ~~하사” 하며 경례를 올 릴 국군아저씨를 미리 그리며 이 땅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 모든 아들들, 국군아저씨들에게 이 글을 올리고 싶다.
“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임무에 충실한 국군 아저씨! 정말 감사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