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잘 꾼다
꿈이 가끔 신기하게 맞기도한다
어제는 새엄마 꿈이다
그녀의 화사한 화장은 꿈속에서도 그대로다
만 삼년을 애 셋딸린 홀애비 하나 바라보고
그의 사랑을 기대하며 갖은 고생을 했다
보라색 화려한 그녀의 화장
원래 피부색을 가늠할수 없는 촉촉한 파운데이션
연말 시상식에서나 볼수있는 화려한 드레스와
아찔한 높은 구두를 신고 꽂꽂이 허리를 편채
도도한 걸음으로 시골 장터로 나가는 그녀
따라나선 내 시선에 잡힌건 그녀를 보는 수 많은 눈길
잠시 정차된 버스의 창문이 열리고 머리까지 내 밀고 보는 사람들
화려한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전처 소생은 한 걸음 뒤쳐져
고개 숙여 그 시선들을 흘깃거린다
누구라도 새엄마를 한번 본 사람은 그녀를 잊을수가 없다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새엄마와 결혼했을까
새엄마와 아버지는 아홉살 차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몇살차이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나이보다 젊어 보였고 똑똑하고 당찬 그녀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 서른 여덟이었다는 그녀는
상처한지 한달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스무살 대학생이 된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고
내성적인 열 일곱 사춘기를 겪는 딸이 생겼으며
귀여운 열다섯의 막내아들까지 둔 재취자리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지 한달만에 젊은 아내를 얻었다
그것도 처녀에 돈도 많고 음식도 잘하고 세련된 아내
누가봐도 이건 넘치는 자리였고 잘간 새장가 였다
새엄마는 넘치는 자신감과 카리스마로 아홉살이나 많은
남편을 제압하는듯 보였다
아버지가 새엄마에게 잡힌듯 보여 눈치보는 것이 기분 나빴다
내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던 자상함도 못마땅했다
새엄마의 공식적인 호칭인 어머니란 말이 한 이주일 만에 나왔다
엄마라는 말은 실수로라도 나오지 않았고
밥을 먹은 다음 잘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생전 처음 해봤다
엄마가 있을때 설겆이를 해본적이 별로 없고
방 청소며 빨래는 더 말할것도 없이 안해봤다
유일하게 딸인 나는 입장이 더 곤란해져 버렸다
눈치를 보며 쭈뼜대다 설겆이를 할려치면
새엄마가 하지 못하게 했다
그녀도 나쁜 계모 소리 어설프게 듣느니 본인이 하는게 빠르고 쉬웠을 테니...
그녀와 내가 같은 공간에서 모녀지간으로 산다해도
정서적으로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어떤 사건을 겪을때 내 역성을 무조건 드냐마냐에 따라
이사람이 내편인가 아닌가 결정이 난다
학교에서 짜증난 일에 대해 처음으로 새엄마에게 조잘대던 그날
냉정한 표정으로 그것은 니 실수라고 딱 잘라 한마디 하던 그녀
예측도 못한 일이 생긴거였다
그녀가 당연히 내편을 들어줄거라 생각했는데
더이상 할말은 잃어 버렸고 나는 머쓱해졌다
새엄마는 내편이 아니구나
마음에서 새엄마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작정하고 그런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버렸다
그러다 토요일 약국가는길에 자전거 타고 가던
변태같은 아저씨가 술냄새를 풍기며 음란한 말을 내뱉었다
불쾌하고 기분이 나빴던 나는 집에 와서 인상을 쓰고 있었고
새엄마는 무슨일냐며 물었다
얘기를 다들은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게 뭔 대수라고 그까짓걸로 그러냐며 대범하게 잊어버리라고 충고한다
그녀는 그 변태의 술주정은 너그럽게 봐줄수 있어도
열일곱 예민한 사춘기 여자 아이의 상처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새엄마는 내 편이 아니었지
그걸 까먹은거다...실수하지 말아야지...
어떤 말도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기가 센 새엄마에게 눌려 있는 듯 했으나
역시나 본색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말 대답 잘하고 당당하게 늙은 남편을 가르치려는
새엄마의 아끼는 자개 장롱을
부셔버린 아버지
기가 차서 소리 지르는 새엄마
이층까지 소리가 요란해서 내려와보니 전쟁이 나있었다
새엄마의 좋은날은 그때 까지 였다
이후 몇년간 모은 용돈으로 동생의 나이키 신발을 사준 그날
비싼 신발을 부모 허락도 없이 덜컥 샀다고
남편 복 없는 년이 자식 복이라고 있겠어라고
안방에서 아버지 보는 앞에서 야단을 맞았는데
그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바람에
얼굴이 계속 실룩거렸다
뒤돌아 문을 닫고 나오고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층으로 밀려난 전처소생인 우리 남매는
더욱 단단한 남매가 되었다
대지 칠십평에 건평 오십평의 이층집
아버지의 재산은 이것이 다였다
세주던 이층을 우리가 쓰면서 돈은 더욱 아쉽게 되었고
전처가 살던 집이라 이사를 가고 싶고
빚도 갚자는 새엄마의 제안에 집을 팔고 아파트로 가게 되었다
엄마가 내가 시집갈때 내 혼수로 주겠다며
사모았던 양은냄비와 법랑 냄비 스텐그릇 금장 커피잔은
동네 아줌마들이 모두 기분좋게 나눠 들고 가버렸다
싱크대 가득
다락 가득
그 많던 그릇과 고급 냄비들은 아끼며
한번도 쓰지 않고 모셔만 두던 엄마의
부지런함과 알뜰함이 배어있는 상장같은 그릇이었다
삼십평 작은 아파트에 가구들이 꽉 차서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녀야 할 만큼 새엄마의
살림들은 많았다
예쁜 찻잔들
한눈에 봐도 비싸보이는 문갑과
자개가 화려한 앉은뱅이 화장대
장식장 서랍장 열두자 자개 장롱
별도의 고풍스런 옷장
화려한 마블 벽걸이 화장대
넓은 침대
안그래도 비좁은 안방에 아담한 티 테이블 까지
오십평 주택에 있었던 그녀의 살림은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집과 잘 어울렸었다
일층 방 세개와 주방 화장실을 부부가 이용했고
우린 밥 먹을때만 내려오고 거의 이층에서 지냈다
최대한 서로 부대끼지 않으려고 하니 계속 데면데면 했다
아파트에 이사오고 나니
싫어도 계속 부딪치게 되었다
물론 눈치도 더 노골적으로 보이게 되었고
먹는거 씼는거 하나하나 신경 쓰이지 않는게 없었지만
그녀 또한 몹시 힘들고 지쳐 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더이상 친절하지 않았고
아껴주지 않았으며 급기야 그녀를 여자 취급도 안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계속 밖으로만 돌았고 그녀를 몹시 외롭게 만들었다
깔끔한 그녀는 아파서 머리를 싸매고 기는 한이 있어도
우리의 밥상은 완벽하게 차렸고 깨끗한 옷을 입혔다
그렇게 화려한 여자가 우리 양말을 빨았고
우리의 속옷을 삶았고
우리의 흠은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남편의 사랑은 시작도 되기 전에 이미 끝나 있었고
그녀는 낳지도 않은 큰 아이들의 힘든 엄마 역할만 강요 받게 되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서른 아홉에
그녀가 인생을 건 사랑은 허무하게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을 할수 없었다
아파도 외로워도 쓸쓸한 그녀는
친구에게도 형제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녀의 자존심이 철저하게 막았던 것이다
잘난 처녀가 다 큰애가 셋이나 되는 집에 시집을 왔을땐
그녀를 아끼는 친구들은 얼마나 말렸을까
장군기질이 다분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언제나 대장역할을
하던 그녀가 어떻게 남편 냉대 속에 문드러진 삶을 산다고
그녀는 도저히 말 할수 없을것이다
남편이 한눈을 팔고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 주지 않고
부부싸움이 나면 피를 볼 정도의 폭력과
잔인하리 만치 많은 집안일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은 절대 그로인해
세남매를 구박하는 일도
밥을 굶기는 일도
화를 내는 일도 없었다
신발 사건으로 냉랭해져 버린 나와
그일로 부부사이까지 냉전으로 가버린 바람에
그녀는 다시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전처소생을 훈계하지 않았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다스리려 한다는것이 얼마나
자신을 불리한 상황으로 내모는지 뼈저리게 느껴서
그녀는 웬만한 우리의 잘못은 그냥 그녀가 감당하고 말았다
그게 바로 새엄마 자리인거다
불쌍한 나의 새엄마
아버지와 싸운 뒤 잇몸이 약한 새엄마의 이가 내려 앉았다
병원에서 겨우 걸어서 올린뒤 제대로 먹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그런 새 엄마가 가여워서 계속 얼쩡거렸다
그녀가 한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열여덟 남자도 세상도 모르는 소심한 여자아이에게
그녀의 절절한 외로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잘들었고
그녀의 외로움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우리는 여자라는 것으로 드디어 한편이 되었다
차라리 아버지가 새엄마에게 질투나리 만큼
비위를 맞출때가 좋았다는것을 그때 알았다
두사람의 다투는 소리는 한밤중에도 벌떡 깰 만큼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 였다
새엄마는 우리엄마처럼 피하거나 져주지 않았다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깡이 있나 싶게 무섭게 덤볐다
나중에는 아버지가 피하게 되기까지 했다
그녀는 끝까지 아버지의 사랑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싸우고
배반 당하고
무시 당해도
그녀는 울면서 아버지가 사랑해주길 기다렸다
성격 차이라고 해야되나 세대 차이라 해야 되나
그녀와 아버진 정말 안 맞았고
그녀는 지칠대로 지쳐서 맥이 하나도 없었다
일주일에 나흘은 아파서 머리를 싸매서
내가 머리 지압을 해줬었고
외로움에 치를 떨어 했다
어린 내가 봐도 더이상 살아선 안될거 같았다
만 삼년 햇수로 오년을 끝으로
그녀는 자유가 되었다
그녀의 아픔이 내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실패를 하면서 더 아프게 와닿는다
나는 내 새엄마를 사랑한다
꿈에 그녀는 아버지가 용서를 구해
다시 재결합 해서 주택으로 이사했다
안방 바로 옆에 작은 내방이 있었다
나는 너무 좋아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 엄마 보고 싶었어요 하며
엄마라고 했다
내 엄마라고 했다
그녀를 다시 한번 꼭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