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 마지막 날이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낮이었다.
500명이 점심을 빨리 먹고 이틀이나 비운 가정으로 돌아간다고
한꺼번에 몰려 오는 통에 땀까지 삐질거리며 배식을 도우고 있었다.
점심 메뉴가
마른멸치랑 마늘쫑 무침,연두부 넣은 계란찜,깻잎겉절이,솎음무 김치
그리고 물만두를 넣은 떡국이었다.
떡국은 다른 국이랑은 달라서 미리 끓여 둘 수가 없었다.
멸치 육수를 커다란 솥에 끓여 두고 즉시 끓여 나가야 안 퍼지는 국이다.
다른 반찬은 다 준비 해 두고 만두국을 끓이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장모님~저 왔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부르는 소리가 아닌 줄 알았다.
오늘 행사에 온 누군가를 찾으러 온 사람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장모님을 찾았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휙~돌려 보니 어라??
우리 큰 사위네~~
\"왠일이야? 연락도 없이? 같이 왔어?\"
사위 뒤로 딸이 보이나?
외손녀가 환하게 웃으며 엄마 등에 업혀오나 고개를 빼고 물렀다.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모습이 아직 새신랑같은 사위가 바쁜 장모님을 찾아 주방까지 내려왔다.
딸과 외손녀는 같이 안 오고 사위 혼자 왔단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왔냐는 내 물음에 사위가 밝으면서도 쑥스럽게 웃었다.
\"저번에 장모님 컴퓨터가 말썽이라고 그래서 새로 들여 놓고 갑니다.
장모님 컴퓨터 없으면 너무 심심하시잖아요.ㅎㅎㅎ
더 좋은 컴퓨터 못 사 드려 죄송합니다. 다음에 진짜 좋은 걸로 사 드릴께요.
장모님도 바쁘시고 저도 바빠서 오늘은 그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곤 꾸벅 인사를 하고 가을 햇살 속으로 그냥 가 버렸다.
딸한테 미리 연락도 받은 적 없고 사위한테도 그 어떤 언질도 받은 적 없었다.
바쁜 점심시간을 허둥지둥 지나고 딸한테 전화를 했다.
\"니들 살기도 벅찰건데 무슨 컴퓨터니?
엄마는 그냥 고쳐 쓰면 되는데...\"
\"전 모르는 일인데요? 무슨 컴퓨터요?\"
\"좀 전에 김서방이 새 컴퓨터를 사 주고 가는구나.
너랑 의논 안 했어?\"
\"아니요~~오빠가 저번에 엄마 컴퓨터가 후지다는 이야기 듣고 혼자 결정 한 모양인데요.
받을 자격 있으니 잘 쓰세요. 좋은 글 많이 쓰시구요. 축하합니다, 맘~~ㅎㅎㅎ\"
이런 횡재가~
요즘 내 컴퓨터가 자꾸 퍽..퍽..꺼지는 걸 저번에 딸이 보고 가더니 제 신랑한테 이야기 한 모양이다.
딸하고 의논도 않고 컴퓨터 가게를 한다던 사위의 선배집에서 사 온 모양이다.
고맙긴한데 너무 무리한 선물같다.
아직 저들 살기도 빡빡해서 이런 큰 선물은 시기상조일건데.
다시 딸한테 전화를 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위한테 문자라도 보내라고 일렀다.
엄마한테 잘 해 주서 고맙다고 그러고 사랑한다고 한마디 해 주라고.
딸은 무슨 초딩이냐고 피식 웃었다.
\"남자들 참 단순하다 너~`
고맙다 그러고 사랑한다고 문자 보내면 우쭐우쭐~스스로 대견해 할거야.
너한테 칭찬 받고 싶어서 그런 무리를 한건데 꼭 해 줘라.
얼마나 기특하니?ㅎㅎㅎ 잘 쓸께. 당분간 조금 어렵더라도 이 일로 싸우지는 마라~~ㅋㅋ\"
\"별 걱정 다 하십니다. 그냥 오빠 혼자 결정한거지만 엄마한테 한 거잖아요. 저야 좋지요 뭐...
억지 효도지만 어쨌든 효도잖아요.ㅎㅎㅎ\"
나도 새 컴퓨터가 생겨서 어쨌든 고맙다.
그 동안은 남편이 사다 준 중고 노트북이나 아들이 두고 간 컴퓨터를 사용했었다.
이제는 나도 새 컴퓨터를 쓴다 이거지~`
어젯밤 꿈에 뭘 봤더라???
너무 지쳐서 그냥 곯아 떨어져 잔 기억 뒤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ㅋㅋㅋ
딸이 한 이야기를 흘려 듣지 않은 사위가 고맙다.
그나저나 새 컴퓨터로 좋은 글이나 잘 쓰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