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알리는 풍경들이 넘치는 요즘이다.
출근할 때, 자전거로 달리는 대독 천 아랫길은 매일 아침 눈부신 하늘을 열어준다. 드넓은 논에는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황금빛이 마음을 풍요롭게 하며 때맞춰 날아오르는 새떼들은 살아있음을 황홀하게 한다. 하늘거리는 갈대들을 보면서 아직도 뜨겁게 움직이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더 열심히 페달을 밟아 달린다.
지난 주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서늘한 바람을 기분 좋게 마시며 자전거는 앞을 향해 열심히 달린다. 나의 모든 감각은 하나라도 더 잡을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석양을 눈으로 찍고 , 바람결에 찾아온 금목서 향기를 코로 핥고, 스치며 자나가는 애들의 욕 섞인 말투를 나무라며 순간을 삼킨다.
익숙하게 오르막길을 걸어서 내리막길로 브레이크를 잡고 내려가면 하루 쌓였던 스트레스가 몽땅 날아간다. 야호와 함께
모퉁이를 돌아 굴다리가 나온다. 둑에는 누런 갈대들 사이로 부지런한 누군가가 심어 놓은 호박넝쿨이 한창 때를 지나, 다시 수줍은 듯 옅은 초록을 달고 어울렁 더울렁 비탈길을 따라 노란 꽃을 피우고 앙증스런 호박을 달고 쭈욱 뻗어 있다. 어쩌다 몰래 호박을 하나 딸 때의 두근거림과 손에 힘을 줘도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써다 톡 떨어지는 소리는 귀속을 쿵쿵 울린다. 자세히 보면 그 작은 호박 안에도 많은 초록들이 각기 다른 무늬와 색깔들을 품고서 빛을 내고 있다. 신기하다 무엇이 이런 줄무늬들을 ! 치장을 해주는 걸까?
바구니에 들어 온 호박은 두고 온 집이 그리운지 풀이 죽어 보인다. 햇살을 맞고 바람을 견디며 비에 젖어 오들오들 떨기도 했기에 누군가를 위해서 영양가 있는 가치를 만들어준다. 마음은 얼른 집에 가서 반은 된장찌개, 반은 갈치조림을 해서 먹을 생각에 행복한 기운이 쏴아 퍼져 나간다. 내 품에 들어 온 호박! 너를 만난 것이 이 가을 단풍 구경을 가지 않아도 몸속 깊이 흘러 남은 2012년을 빨갛게 파랗게 물들여 주겠지. 고마워 호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