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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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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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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님


BY 석광희 2012-10-03



언제가부터 바쁜 명절을 보낸 후 허탈감을 느낀다

 

가만 생각 해 보니 우리어머님께서 요양원을 가신 후 부터다

아들을 결혼 시킨 후 아버님 떠나시고 좀 지나 어머님께서 혼자 알아보시고

경기도 요양원으로 가려하신단 연락을 받고 우리 시누님들과 급히 의논하고

남편이 국내에없는 상황이니 국제전화로 의논하기엔 효과적이질 않기에

내가 어머님과 직접 단판(?)을 져야했다

 

어머님은 한사코 우리집에 오시길 거부하셨고

나는 결사적으로 모시려하고

한달간 어머님과 의견 충돌이 있었으나

결국은 내가 백기를 들었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외며느리기에 도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긴 시간 친정일로 동분서주하는 내게 넉넉함을 보여주신

어머님께 감사함을 돌려드리고 싶었다

 

어머님은 그런 나의 얄팍함을 아셨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 곳에 가신지도 아홉해가 되어오며

가까이 사는 막내 시누님이 자주 찾아뵙곤한다

 

어머님은 아직 소녀 같으신 93세

 

나는 어머님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조금 더 우리곁에 계셔주기를..

남들이 듣는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이부분도 나의 이기심이다

 

어머님께선 아직도 새벽 침상에서 자녀들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며

나는 아직도 어머님의 기도가 절실한 사람이기에..

  

어머님과의 추억꺼리가 남편보다 더 많기도하며

가끔 친정어머니보다 더 따스하게 다가 오기도하며

어머니를 닮고 싶어서 좀더 여성스럽게 나를 포장하기도

 

어머님은 40년 가까운 시간속에 한결같이 내편 되어주셨고

철없던 딸같던 며느리를 조용히 토닥이시며 가르치시기도

서울토박이 어머님께선 맵씨와솜씨를 두루 갖추셨는데

아직도 나는 어머님 흉내도 내질 못한다

 

친정으로 들어갈 때도 흔쾌히 허락하셨고

오랜 불교신앙도 훌훌터시고 기독교로 나를 따라주셨고   

체력이 약한 내게 집안 대소사에 적당히 덜 수고롭게 배려하시곤 하셨다

나는 시누님 세분에겐 언제나 송구한 마음이다

여행을 좋아하셨고 음악을 사랑하시며 단한번도 누구를 판단하지 않으시기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게 많은 위로와 토닥임을 주시며

새벽재단에 며느리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해 주시기도

 

나도 며느리가 있는데도 아직도 어머님은 나를 아기 취급이시다

어머님 보시기에 아직도 나는 그 옛날 스무살 갓넘은 솜털쟁이로 보시나보다

언젠가 상조에 가입하며 종일 울던 기억이난다

마치 우리어머님께서 떠나신 것 같아서

 

우리 시누님들은 이제 아예 익숙하셔서

누가 어머님의 딸인지를 헷갈리시는 모양이시다

 

노환이라 가끔 입원하실 때가 있는데 나는 언제나 퇴원 후에나

알아지곤한다  그저 막내 시누님껜 송구함 밖엔 없다

며늘애가 서울서 여기까지와서 병원서 쪽잠자며 비위약한데

소독내 맡으며 쓰러질 수도 있다..내게 시누님이 전하셨다

 

가끔 시누님들의 조용한 반란도 나는 감수해야한다

 

이번 명절전에 어머님 계시는 곳에 잔치를 해 드렸다

그곳 원장님을 비롯해 여러분의 관리사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시고

지역 방송에서 촬영도 해 가시고 즐거워하시는 어머님과 어르신들

1년에 두어번 정도하면서 나는 매우 쑥스럽기도

 

어머님이 내게 베푸신 사랑이 너무도 크고 깊은데

나는 뭐하나 제데로 해 드린게 없어 죄스럽기만하다

 

받았으니 나는 우리 며느리에게 되돌려 줘야는데

아무래도 나는 어머님을 따라하기엔 그릇이 작은듯하다

 

한집에서 정을 나누며 함께한 고부간은 아니지만

내리사랑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어머님께 많은 산교육을 받은 셈이다

 

어색해서 시부모님께나 친정부모님께도 사랑한다 말씀 드린 적 없으나

오늘 우리 어머님께 많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 전해 드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