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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옥수수


BY 그대향기 2012-08-18

 

 

 

자주색 짧은 찰옥수수를 따 왔다.

작년 봄 엄마가 살아 계실 적에 씨앗 하라고 주셨던 옥수수를 싹을 내어 키운 것이다.

엄마 키 만큼이나 아담하고 오동통한 자주색 찰옥수수를 보는 순간 울컥 엄마 생각이 났다.

갈래 머리를 땋듯이 마른 옥수수 잎을 총총히 땋은 씨앗을  주면서

\"아마도 이게 마지막이지 싶구나.

 나 가더라도 나 본듯이 오래오래 길러서 애들 삶아줘라.

 씨도 없이 다 삶아 먹지 말고 해마다 씨앗은 꼭 남겨두고 삶아 먹어야 된다.\"

 

정말 엄마는 옥수수 씨앗을 다시는 주지 못하고 그해 겨울 돌아가셨다.

해마다 이맘때 친정에 가면 짧고 쫀득쫀득한 자주색 찰옥수수를 한수쿠리 삶아 주셨는데

이젠 그 찰옥수수를 우리 집에서 키우고 삶아 먹게 되었다.

토지 사기꾼한테 다 날려 버린 엄마의 문전옥답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자투리 땅이 손바닥만 해도 마늘이며 파, 부추를 심었던 엄마였다.

 

조금 더 넓은 땅에는 자갈을 골라 내고  나일론 끈으로 엄마표 경계선을 둘러 쳐 옥수수를 심었다.

여름 휴가 때 올지말지 할 딸한테 한번 간식을 주기 위해 몇바가지의 땀을 흘렸던 엄마

갓 삶아 낸 뜨끈뜨끈한 옥수수를 밥 먹기 전에 한소쿠리 내 놓으며 얼른얼른 먹어보라고

자꾸만 디밀다 혹시라도 며느리 눈치 줄까 봐 \"야야 니도 얼른 와가 한개 묵고 해라~\"

손도 바쁘고 마음도 바빴던 엄마는 이제 안 계시고 엄마 닮은 찰옥수수가 내게 남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 만큼은 더 작아 보였던 엄마는 매사가 다 긍정적이셨다.

실질적인 가장노릇을 하며 힘든 삶을 이어갔지만 유머감각도 풍부하셨다.

바느질솜씨며 살림솜씨도 좋았지만 어려운 이웃을 챙기는 일에도 엄마는 부지런하셨다.

비록 넉넉하지도 못한 형편이었지만 없는 형편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다.

꽃을 무척 좋아하셨고 덩치에 비해    생각이 시원시원하셨고 결단력도 과감하셨다.

아버지가 재고 또 재며 꼼꼼한 반면 엄마는 한번 한다하면 과감하게 밀어 부치는 장부스타일.

 

그런 엄마셨기에 아버지의 부재중에서도 우리 가정을 지켜냈고

생활력은 잡초에게서 배우셨던지 얼마나 강인하셨던지.....

엄마의 유복한 어린시절은 흐르는 강물 위의 꽃잎처럼 흩어져 버렸지만

눈 앞에 처해진 현실 앞에서 겁쟁이처럼 뒤로 물러서지 않으셨다.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셨고 누구보다도 바지런하셨던 엄마

40 여년 전에 수억원대의 땅을 다 잃고선 홧병에 가슴을 쥐어 뜯었지만

그 일로 앓아 눕지도 않았고 가족을 힘들게 하지도 않으셨다.

 

대신 엄마는 더더욱 악착같이 일을 하셨고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땅도 그냥 지니치지 못해

푸성귀를 길러서 밥상을 풍성하게 차리셨고 , 더러는 내다 팔기도 하셨다.

푸성귀를 내다 팔아서 생긴 돈으로는 제철 과일을 늘 넉넉하게 사 주셨다.

그 옛날 엄마 어린시절에 누렸던 그 풍요로움이야 언감생심이겠지만

엄마 힘으로 해 줄 수 있었던 최대한의 여유는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넋 놓고 기다리기보다는 키 작은 엄마는 발이 부러트도록 뛰고 또 뛰어다니셨다.

그 때는 가난한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내가 부모가 되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부모의 자리가 그냥 앉아서 밥상 기다리 듯 그렇게 주어지는게 아니었다.

 

여든 여덟, 짧지 않았던 엄마의 생은 이제 우리 가족이나 엄마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엄마는 늘 내 몸 속, 내 피 속에서 같이 흐르며 함께 하신다.

내가 기쁠 때나 내가 슬플 때 언제나 함께 하시며 나보다 더 기뻐하시고 나보다 더 슬퍼하신다.

오늘 엄마가 남겨 주신 찰옥수수를 삶으며 친정집 마당이며 친정집 골목이 그립다.

그리고 그 골목 끝에서  늘 기다려 주시던 엄마가 무척 보고싶다.

바쁜 수련회는 끝이 났지만 가을 큰행사가 남아있어서 여름 휴가를 아직 떠나지 못했다.

휴가는 아니더라도 잠시 다니러 갈 일이 있는데 엄마가 계시는 그 산에 가 뵙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