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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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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웁니다.


BY 金木犀 2012-07-11

나는 시어머니께 사랑 받는 며느리는 못 되었다. 시원시원한 성품이라곤 하지만 오사바사 해명을 하거나 여우짓을 할 줄 잘 몰랐다. 좋게 말하면 속 깊은 성격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뻣뻣하다고나 할까? 세월이 약이라고 언젠가는 알아주려니 믿었는데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만 어디다 호소할 길 없는 맘에 눈물바람으로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해서 어머니 돌아가신지 열 몇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보고파 가슴 답답하다.

 

친정에서 나는 쏟아붓 듯 사랑받고 살았다. 흥이 많은 친할머니를 꼭 닮았다고 타박을 받았을 뿐 너그러운 보살핌 속에서 인생이 마냥 즐거웠었다. 철딱서니가 없어선가? 야무지게 인생을 설계할 줄 모르고 탱자탱자 놀멘놀멘 청춘을 낭비했다. 시집을 와서도 친정의 사랑은 변함없어 손 안 벌리건만 퍼줬으며 내게 뭐 좋은 일만 생기면 자랑하기에 바빴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협심증과 해소로 고생하시느니 어쩌면 저 세상으로 가신 게 아버지를 위해선 더 편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맛난 것도 실컨 못 잡수시고 변비와 오줌소태로 고생하던 아버지 아니셨던가? 어영부영 아버질 산에 모시고 돌아온 이래 아버지 비슷한 뒷모습만 봐도 그리움에 눈물이 철철 흘러 내렀다. 5월이 오면 햇무 된장국을 좋아하던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웠고 동태국을 끓이면 아버지 드리고 싶어 목이 메였다.

 

급성폐렴으로 돌아가신 친정 어머닌 어린아이처럼 조그맣고 깨끗했다. 염색을 모르던 반곱슬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검버섯 한번 피지 않은 맨얼굴은 분홍빛이 돌기까지 했다. 염을 하던 날도 난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오열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서질 못 할 거 같아서 꾹 참았다. 장례식장에 온 친구들은 복 많은 분이라 한겨울임에도 참 따뜻한 날씨에 가셨다고 했다.

 

며칠 전 부터 비가 제법 왔다.  그동안 큰비가 오지 않아서 올봄 지붕 공사를 해논 게 잘 되얗는지 몰라 자꾸 신경이 쓰였다. 비는 전날 천둥 번개를 치며 미친 듯이 쏱아지더니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다가 밤 늦게 부터 다시 퍼붓기 시작했다. 새벽 무렵 어스름 잠결에 누가 대문을 마구 두드리기에 나갔더니 친정어머니가 아니신가? 엄마 웬일? 비가 와 걱정돼 왔다. 집엘 들어서자마자 여기 저길 열어보시더니 저기가 새네 하신다 놀라 올라보니 목욕탕 천장이 빗물로 제법 젖었다.  퍼득 깨어나니 꿈이다.

 

기분이 묘해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는데 별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무섭게 오고 꿈 속의 어머닌 어디로 가셨나 뵈질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서성거리다 동이 텄다. 아침을 하려 마루와 부엌을 분주히 오가는데 이상한 게 천장 한켠에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가까이 가서 보니 천장 서까래 사이에 회를 발라논 게 떨어져 길게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보통은 습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이구~ 어머니 그걸 알려주러 꿈 속으로 다녀 가셨구나.

 

평생을 걱정 끼쳤으나 해결사를 마다 하지 않던 친정 어머니, 두고 두고 사랑 받았으나 사랑을 제대로 돌려드리지 못한 나, 죄 많아 부모 얘길 쉽사리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