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비 내리던 날에 용인 천주교 묘지에 계시는 할머니 산소를 이장했다.
언니와 사촌동생과 사촌제부가 함께 우산을 쓰고 삼십년 된 할머니 산소를 파헤치는 장면을
내려다보며 기도문을 외었다.
관을 뜯어내니 유골은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고 할머니 살아계시던 시절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구십일세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대원군 말기 천주교 박해시절에 순교자의 딸로 힘든 시절을 보내시고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와서 또 힘든 시절을 보내셨지만 늘 꿋꿋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이다.
유골을 추려내어 상자에 담아서 성남 화장터로 향했다.
\"똥글 똥글한 그건 뭐예요?\"
\"발가락이예요.\"
인부의 설명에 더 묻지를 못했다.
화장터에 당도하니 가족을 보낸 많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족을 보내는 일은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지...
\"내가 죽으면 우리 아들들도 저렇게 울까?\"
\"꿈 꾸지 마셔.\"
언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도 새로운 장례식에 참례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검은 옷을 입고 오지 않은 언니와 나는 머쓱해졌다.
화장을 한 후 할머니의 유골을 작은 관에 다시 담아서 용인 천주교 묘지로 돌아와 다시 매장을 하며
죽은 자를 위한 절차도 참으로 복잡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봉분이 없는 무덤을 만들기로 하고 무덤위에 놓을 묘비에 대해서 의논을 하며 절차는 끝이 났다.
내가 죽으면 어디에 누구 옆에 묻힐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죽은 후에 일은
내 맘과는 무관한것이니 어디에 묻힌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
혼자 살던 사람이 무슨 과욕인가.
화장을 해서 바다에 뿌려달라고 요구를 한들 남은 자식의 마음이니 쓸데없는 요구일지도 모른다.
비는 그칠줄 모르고 종일 내렸다.
마음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치닫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후회없는 죽음을 맞을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잘 살아내면 그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