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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난 괜찮아요


BY 김효숙 2012-04-27

저녁시간 오빠 한테 전화가 왔다.

일을 하다 장갑을 빼고 얼른 받았더니 수화기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내 그리운 오빠 목소리다.

오빠는 기도를 많이 하시기 때문에  내가 힘들어 할 때면 영락없이 전화를 하신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오빠 괜찮아요 하고 오빠를  안심시키곤 하였다.

오빠 그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행복하고 엄마를 만난 것  처럼 아버지를 만난 것 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고향같은 마음의 우리 오빠다.

 

별일 없니......

네 아무일 없어요

근데 오빠가 석연치 않은 듯 다시 물으신다.

별일 없니.... 아...저희가 이사를 가야해요 이사 준비하느라 바빠서  전화를 드리지 못했어요

오빠는 이사라는 말에 깜짝 놀라신다.

인천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와서는  이사 때문에 걱정하는 동생을 보지못했기 때문이다.

오빠........ 지금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니까 괜찮아요

교회도 가깝고 아이들 출퇴근 하는데 전철역도 가까와요 했더니

전화가 툭........끊어진다.

오빠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으신것이다.

 

오빠를 너무 잘아는 나는 괜스레 이사를 간다고 말씀 드렸나보다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우리 오빠는 육십오세이다

어릴적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한의사이셨던 아버지는 시골에서는 선생님으로 통하셨다.

사랑이 많으셔서  아픈 사람들 침도  공짜로 놔주시고 인정 많은 한방 선생님이셨다.

어려서 부터 우리집 자녀들은  동네 안밖에서 선생님 자제라며  무슨  착한일이나 인사를 잘하면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시곤 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네살 되던 해..  아버지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양반 선생님이 염을 해주셔야 한다해서

가셨는데 다녀 오신 후 곡기를 끊으시고 편찮으시다가 돌아가셨다

 

내가 네살 되던 어느 날 안방에서 하얀 천으로 덮은 아버지는 자동차에 실렸고

나는 차에 매달린 언니가 떨어진다고 울었댄다.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울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언니가 그랬는데

장사를 나가신 엄마 대신 나를 보살펴준 언니가 차에서 떨어질까 울었다는 거다..

 

지금도 그ㅡ 모습이 아련하게 떠 오른다.

오빠는 그 후로 가장으로 엄마를 돕고 겨울이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늘 얼니 동생들을 보살피곤 했다.

공부도 하지 못하고 열다섯 나이에 빵공장에 취직을 하여 엄마를 도왔다.

가끔씩 오빠가 가져오는 빵은 허기진 배를 채우고 그저 좋아서 맛나게 먹던 동생들

오빠는 그 모습을 보고 맘 속으로는 울어도 뿌듯하셨으리라.

 

군에 간 오빠는 삼년동안 월급을 모아  담요를 사오기도 하였다.

착하고 착한 우리 오빠  그런 오빠는 내 가슴에 아버지의 사랑을 몽땅 주셨다.

 

여고 졸업후 .. 난 오빠와 엄마와 우리 가정을 위해 월급을 모아 집을 사 주었다.

지금 오빠가 사는 집은 나의 순수한 사랑과 오빠에 대한 고마운 보답이었다.

 

우리 오빠  엄마가 세상을 떠난지 십여년이 되었다.

어버이날 이면 오빠는 나의 어머니요 나의 아버지다

우리 엄마는 언제나 만나면 꼭 안아주시고 얼굴도 비벼 주시고 그저 이뻐서 좋아하셨는데

우리 오빠도 나를 만나면 꼭 안아주시고 육십이 다 되어 가는 동생 얼굴을 보듬어 주신다.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은 천사 같기도 하고 예수님 같기도 하다

그저 엄마한테 효도를 못한다고 우는 바보 오빠이다.

 

어느 여름날... 비가 쏟아지는데  그땐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때다

집 앞이 바로 연못이었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참외를 사 가지고 오다가

푸대종이에 싼 참외가 비에 젖어 찢어져 참외가 연못에 빠져  둥둥 떠가는데

오빠는 풍덩 연못에 들어가 그 참외를 다 건져 가지고 집에를 왔다.

 

엄마한테 드리며 스물 일곱 청년은 그저 효도 못한다고 울었다.

 

참 착한 오빠.....다

 

내가  여고 졸업후 제약회사에 다니다 사내 커풀이 된 우리 남편

잘나가는 멋진 사람이었다

오빠는 고생만 한 동생이 이제는 호강하고 살거라고 착해서 복 받고 살거라고

든든해 하셨다. 내가 잘 살면 착한 우리 오빠 늙어서 힘없을 때 도와드려야지 했었다.

내 나이 마흔되었을 때  시동생 보증으로 인하여 우리 집은 풍지 박산이 났고

지금도 그 여파로 힘들어 한다.

 

난 절대로 힘들어도 우리 오빠를 눈물나게 하지 않으려고 늘 웃고 다닌다.

오빠는 내가  고생은 해도 힘든지 잘 모르신다.

 

그런데 오늘 오빠한테 이사라는 말을 꺼냈을 뿐인데

오빠는 툭...................수화기를 끊고 말았다.

 

늦은 밤 까지 일하며 난 웃는다.

오빠 마음에  웃음을 선사해야지 열심히 일해서 멋지게 회복할거라고

아니 지금 감사하며 이겨내는  것이 우리 오빠한테 힘을 주는 거라고

 

오빠 난 괜찮아요

오빠 동생 절대 울지 않는다구요

세상에 물질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은 바보에요

더구나  믿음에 사람은요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바라보며 일어서는 거라구요

 

오빠 힘내요 그리고 씨익 웃어요

역시 내 동생이라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