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부활주일이 지났다
부활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성당에서 많은 행사가 있다
제대로 된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 삶에서 온전히 살기 위하여...
그 중 최후의 만찬 미사가 있는 성목요일에는 세족례라는
행사가 있는데 신부님이 몇몇 신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몸소 가장 낮은 자세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도 있었기에....
거의 한 달여를 남편과 대화다운 대화가 없이 지내는 터라
집안 분위기도 무거웠고, 우울한 기분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는데 다행히 지난 주에 성당 독서모임을 함께 하는 분과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마침 그분이 심리상담을 전공하기에 내심 내 마음을 털어놓고
좀 가벼워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툭 털어놓고 얘길 하고 나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내가 하는 얘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주며
공감도 해주고 적절한 조언도 해주니 집으로 돌아올 때는
무겁기만 하던 마음이 어느 새 가벼워져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비로소 남편을 바라보니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긴 탓인가 다른 때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가 있었다
주말에 부활성야미사를 마친 후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계란 가져 왔어요?\"하고 묻는다
수녀님에게 받은 멋진 계란 1개와 구역에서 받은
예쁘게 포장된 계란을 내미니 얼른 까서 맛있게도 먹는다
그런 남편에게
\"발 씻었어요?\"하고 물으니 씻었단다
못 들은 척하며
\"내가 발 씻겨 줄게 욕실로 오세요\"하니
안 씻을 것처럼 하다가 어린애처럼 욕실로 들어왔다
문턱에 앉혀놓고 더운 물을 대야에 받아 남편의 발을
씻겨 주며
\"어쩜 남자 발이 이렇게 작고 예뻐요?\"하며 칭찬을 해주니
기분이 좋은지
\"응, 나는 옛날에도 구두를 맞추러 가면 발이 작고 예쁘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하며 목소리에 들뜬 기분이 묻어 있다
내가 씻겨주며 남편의 발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정말
굳은 살도 없고, 나는 발뒤꿈치가 딱딱하고 각질이 있어
자주 씻어도 잘 안 벗겨지는데 남편의 발은 나보다 훨씬
부드럽고 발뒤꿈치도 말랑말랑했다
\"내 발보다 훨씬 부드럽네요\"하니 나의 칭찬에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난생 처음으로 남편의 발을 씻겨주며 그동안 내가 제대로
얼굴도 바라봐 주지 않고, 서로 말도 섞지 않고 지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은 생각에 미안함이 절로 일어났다
아마도 예수님 역시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요구하시는 건 아닐까?
가장 낮은 자세로 상대를 섬길 줄 아는....
그도 나도 한 달 여 동안의 무거웠던 분위기가 일시에
봄눈 녹듯 사라지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해보지 않은 일을 통해 서로에게 닫고 있던 문을 열게되니
이번 부활절에는 나 역시 새롭게 태어나는 멋진 경험을
하므로써 그 어느 때보다 값진 부활을 맞이 하였다
부부란 정녕 인생이라는 차가운 벌판 위에서 끝까지 서로
손을 놓지 않는 그런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