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마음이 허전한 날에는 음식을 만들었다.
이것 저것 반찬을 만들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곤 했다.
시앗에게 다녀오는 남자가 돌아오는 날에는 자연히 먹거리가 집에는 많았다.
그만큼 마음이 허전했다는 증거다.
참 웃기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것이 내 마음이었다.
\"너희 엄마가 음식은 참 잘했지.\"
아직도 그런 말이 들려오는것을 보면 나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긴 했나보다.
친구가 외로운 노후에 친구로 지내라면서 홀애비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음식을 잘 하나요?\"
\"운전은 잘 하세요?\"
\"집은 전세인가요 월세인가요.\"
\"생활비는 어디서 나오나요.\"
이런 질문에 짜증이 났다.
남자가 필요없다는 결론에 이르른다.
아직 덜 외로운것인지 모르겠지만 남자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주말에 무우나물과 멸치볶음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찾아갔다.
\"지난번에 주신 음식 잘 먹고 있어요.\"
아직도 식탁에는 내가 해주었던 우엉졸임과 무우생채가 있었다.
식성이 토종인 윤지는 내가 만들어준 무우나물을 참 잘 먹는다.
\"어머니 무우나물은 흉내 낼수가 없어요.\"
며늘아이의 말이다.
밥 숟가락에 멸치볶음과 무우나물을 얹어서 주니 윤지는 입을 크게 벌린다.
\"할머니는 동생 없지?\"
\"응. 할머니는 동생이 없어.\"
\"윤지는 동생 있어.\"
\"그렇지. 윤하가 윤지 동생이지.\"
\"할머니는 딸 없지? 엄마는 딸이 있어.\"
요녀석이 할머니에게 딸이 없는것을 어찌 알았을까.
내게 없는것만 집어 말하는것에 웃었다.
\"아빠의 아빠는 할아버지고 아빠의 엄마는 할머니지?\"
\"그래. 맞아.\"
왜 함께 살지 않느냐고 물을까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더이상 질문을 받지 않으려고 동화책을 열심히 읽어주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이야기에 윤지는 귀를 기울인다.
\"윤지도 곶감 좋아해.\"
내 핸드폰이 울린다.
근처에서 점심 약속이 생겼다.
\"할머니 점심 먹으러 나갔다올게.\"
\"빨리 와야해. 저번처럼 곧장 할머니 집으로 가면 안돼. 저번엔 그랬잖아.\"
\"알았어. 빨리 올게.\"
월남 쌈집에서 맛난 점심을 먹었다.
돌아오니 윤지는 목욕중이었다.
\"정말 금방 왔네. 할머니도 목욕탕으로 들어와.\"
윤지의 수다를 들으며 윤지의 머리에 샴푸를 풀었다.
아들에게 스마트폰 작동방법에서 미처 터득하지 못한 부분을 물어보았다.
\"엄마가 이걸 혼자 다 알아냈단 말이지? 역시 대단해. 기계에대해선 나보다 더 낫다니깐.\"
아들의 칭찬을 들으니 우쭐해진다.
\"어제 근처에서 월남쌈을 먹었는데 참 맛있더라. 내가 아기 봐줄테니까 세식구가 나가서
외식을 하렴. 에미도 아기 낳은후에 한번도 외출을 못했잖니. 기분전환도 할겸 데리고 나가라.\"
\"그럴까요?\"
신이 나서 외출 준비를 하는 며늘아이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빠랑 엄마랑 나가서 맛있는것 먹고와.\"
\"할머니는 아무것도 안먹으려고?\"
\"할머니는 어제 먹었어.\"
\"할머니는 안가?\"
\"축복이가 너무 아기니까 할머니가 봐줘야지.\"
젖도 먹고 우유도 먹는 축복이는 엄마랑 떨어지기가 수월하다.
이마트에도 들려서 오겠다던 아이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아이들의 얼굴이 밝았다.
\"할머니! 윤지 왔어요. 오래 기다렸지요?\"
\"그래 오래 기다렸어. 맛있었어?\"
\"네. 맛있었어요.\"
\"할머니는 이제 집에 가야겠다.\"
\"싫어. 할머니 가지마.\"
\"일이 있어서 가야해.\"
\"싫어!\"
주차장에서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왔다.
\"운전 조심하시고요.\"
\'알았어.\"
폐차를 시키려던 차가 봄이 오니 다시 굴러간다.
가끔씩 아이들의 행복을 들여다 볼수 있는것만으로 내 생활의 활력소를 찾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