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977

은둔형 인간


BY 새봄 2012-03-15

군자란에 꽃대가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다.

이 꽃은 오년전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엄마가 키우던 걸 가지치기해서 가지고 오신 거였다.

잎만 있을 때 군자란은 볼품이 없어 식당 후미진 곳에 놓인 플라스틱 나무 같다.

그러다가 3월이 오면 어김없이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군자란 양에게 조금 미안해져

거름도 주고(뜨물이나 커피 찌꺼기), 먼지를 닦아준다.

주황색 군자란이 여장부처럼 당당하게 꽃이 피면

아파트 화단엔 수줍은 산수유가 어머! 깜짝이야 봄이 왔네, 하며 노란 눈을 크게 뜬다.

이때쯤에 은둔 형이었던 난 슬슬 밖으로 고개를 빼고 나갈 차비를 하게 된다.

 

난 은둔형 피가 흐르는 인간이다.

친구들도 이년에 한번 만난다.

그러다보니 모임이라곤 고등학교 친구 모임만 있었는데 나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모임을 해체하면서 이 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으니...

 

미용실도 일 년에 한번 갔다 그것도 올 해 아들이 졸업식을 해서

치렁거리고 부스스한 머리를 해 가지고 미용실 의자에 앉으니

언제 파마했어요? 묻는다. 10개월만인가? 했더니 이상하게 웃는다.

거울로 봐도 내 모습은 세월을 옴팡 뒤집어쓴 인조가발 같다.

마치 상황을 초월한듯한 자세였다고나 할까?

 

운전면허증도 없다.

얼마 전에 딸아이가 운전면허를 딴다고 부산을 떨더니 이주일 만에 땄다.

그걸 보고 나도 운전면허나 따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집에만 있고 어딜 가지도 않는 내가 어디 쓸 때가 있어야지, 하면서 관뒀다.

 

나의 유일한 외출은 꽃순이랑 한시간정도 산책 가는 시간이다.

그것도 햇볕이 좋고 날이 춥지 않아야지 비가 오면 질퍼덕거려서 나가지 않고

흐려도 마음이 우중충하다며 나가지 않고

바람만 불어도 심란하다며 껌처럼 방바닥에 짝 달라붙어 있다.

오죽하면 내 별명중 하나가 집순이일까.

 

좀 먼 곳은 한 달에 한번 정도 간다.(그것도 직장 안다니고 있을 때만)

춘천 외삼촌댁에 가는 것. 외삼촌이 알면 섭섭하겠지만 시골이 좋기 때문에 간다.

분당에 살고 있는 친정엄마가 아무리 놀러오라고 해도 친정엔 뭔 때가 아니면 잘 안 가게된다.

왜냐면? 친정집은 나랑 비슷한 아파트촌에 살기 때문이다.

친정집이 시골이라면 오지 말라고 해도 수시로 가서는 장아찌 눌러 놓듯 오래 살았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친구도 없고, 말 할 사람도 없고, 세상 것에 관심이 없고,

욕심도 없고, 아주아주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심심하냐면 그건 아니다. 난 혼자 잘 놀고 있기 때문이다.

꽃 기르는 걸 좋아하고, (안 길러본 꽃이 거의 없다.)

책 보는 걸 좋아하고(이틀에 한권 읽는다)

글 쓰는 걸 좋아하고,(잡글이면서 다작이다. 책 낼 정도는 아니지만)

살림하는 걸 좋아한다.(화사한 창과 깔끔 그리고 목가적인 카페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다)

요리하는 것도 좋다.(뭐든 집에서 해 먹는다. 그것도 손 많이 가는 나물반찬은 항상한다.)

텔레비전도 좋아한다.( 주로 다큐멘터리를 본다)

텔레비전은 은둔형인 나를 어디든 데려다 준다.

앉아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 때문에 안 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다.

책도 여행을 하면서 쓴 책을 많이 읽는데

내가 발품 팔아 못가니까 책을 통해 여행을 하니 대리만족이지만 만족하고 있다.

 

그래도 난 사람이니까 대화가 필요하다.

엄마랑 자주 통화를 한다.

아들아이 있을 땐 아들아이랑 했고

딸아이가 요즘 바쁘지 않아 딸아이랑 대화를 한다.

그리고 제일 대화를 많이 하는 대상은 꽃순이다.

꽃순아 이거 먹어봐라 맛있지?

겨울이 너무 길다. 엄마는 따뜻하고 꽃이 많이 피는 프로방스에서 살고 싶단다.

삶이란 있잖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단다.“

그러면 꽃순이는 내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 나도 혼자살 수 없는 사람이라 가끔은 고독할 때가 있다.

프랑스 사상가는 이런 말을 했다.

오로지 고독 속에서만 사람은 참된 자유를 안다.”

지금 난 이 자유를 만끽할 것이고

봄이 오면 꽃이랑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럼 그들은 내게 속삭이겠지.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고...

인간은 원래 거의 모든 것과 작별하게 된다고...원하지 않는 경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