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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의 효도


BY 그대향기 2012-01-26

 

 

 

9일간의 효도

 

 

엄마

 

안 추워?

 

우린 옷을 몇 겹씩 입었는데도 추운데....

 

언 땅을 파 해치고 엄마를 묻고 돌아서던 날

 

겨울바람이 선산 소나무를 안고 울더라 나처럼.

 

꽃을 좋아하던 엄마 가시던 날 그 산에

 

계절모르고 진달래가 핀 걸 보고 얼마나 서럽던지

 

반가움보다 마구 서럽더라 그 꽃도 못 보는 엄만데 싶어서

 

 

엄마

 

엄만 하나뿐인 딸한테 그렇게 배신하고 떠날 수 있었어?

 

엄마가 위독하다고 막내오빠가 전화했을 때

 

하던 일 다 팽개치고 고속도로를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달려갔는데도

 

날 보지도 않고 눈 꼬옥 감고 있었고

 

내가 그렇게도 애타게 불렀는데 단 한마디 대답도 안했잖아?

 

엄마 눈 좀 떠 봐~

 

엄마 대답 한마디라도 좀 해 봐~

 

응급실이 떠나가도록 엄마를 불렀는데 엄마는 날 배신하고.....

 

내 손 한번 안 잡아주고 날 한번 따스하게 봐 주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무정하게 떠나갈 수가 있었어?

 

유행가 가사처럼....

 

엄마

 

엄마 살아생전에는 못 해 드렸던 효도를 마지막 효도인양 해 드려 미안해

 

엄마가 다시는 못 돌아 올 그 강을 건널 쯤에야 특실이다 vip실이다

 

부산을 떨며 엄마를 모셔두고 우리끼리 최선을 다한 것처럼 양심을 속인 거

 

엄마 살아생전에 우리가 언제 엄마 모시고 호텔방을 잡아 드려봤어?

 

엄마 살아생전에 그 흔한 휴양지의 콘도나 펜션에라도 한번 모시고 가 드려봤어?

 

다 못난 자식들 둔 엄마 복인데 어쩌겠어?

 

아들이 넷에다가 딸 하나

 

남들은 다복하다 하는데 정작 엄마는 그리 다복하지도 못했지?

 

가정에 무심한 남편에 사고뭉치 아들 아니면 가난한 아들에 바쁜 딸이나 뒀지 뭐

 

엄마가 보고프고 엄마가 원하던 날에 같이 있어주지도 못한 자식들이나 키웠지

 

 

엄마

 

진짜진짜 미안한데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엄마는 고통 중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어도 우린 식당에서 입에 맞는 밥을 먹었어

 

순두부찌개는 맛이 없니

 

갈비탕은 더 맛이 엉망이니

 

차라리 고등어 정식은 그래도 나아

 

부용의 삼선우동 국물이 깔끔하고 맛있다느니.....

 

엄마를 산소호흡기에 맡겨두고 우린 그렇게 살아남는 법을 선택했어

 

엄마가 첫날 응급실에 입원했을 때 담당 의사가 그랬대

 

오늘밤 넘기시기 어려우니 준비하시라고

 

정말 그 의사 말대로 엄마가 그날 밤 돌아가셨더라면 어쩔 뻔 했어?

 

집 나간지 10년 만에 셋째 며느리도 돌아왔는데 못 보고 갈 뻔 했잖아

 

눈을 안 뜬다고 못 보나 뭐?

 

엄만 온 몸의 땀구멍이 귀처럼 열려 다 들었지?

 

 

엄마

 

 

엄마가 집에서 혼자 쓰러지고 몇시간 동안 아무도 발견 못하는 바람에

 

뇌에 산소공급이 안되면서 치명적인 사고가 나고 말았어

 

엄마의 머릿 속 모든 신경의 전달체계는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그랬거든

 

그래서 심하게 경련도 일으키고 호흡도 정상적이지 못하고

 

눈도 못 뜨고 말도 못하고 살아있어도 우리랑 아무런 대화도 못하는

 

쉽게 말하면 뇌사상태 즉 식물인간이 되어버린거라고 그러더라

 

우린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어

 

바로 몇시간 전에만 해도 혼자서 밥 드시고 화장실에도 가신 엄만데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엄마를 무너뜨릴 수가 있어?

 

내가 엄마 손을 꽉꽉 잡았는데도 반응이 없고

 

내가 엄마 찌찌를 주물렀는데도 간지럽다고도 안하고...

 

그 때까지도 따스하고 아직도 포근하던 엄마 품이었는데도 말이야

 

 

엄마

 

우린 그렇게 믿고싶었는지도 몰라

 

엄마가 경련 중에 얼굴이 실룩거리면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을 때

 

내가 얼른 엄마 눈꺼풀을 들어올렸는데 거짓말처럼 엄마는 진짜 눈을 번쩍 떴어

 

응급실서부터 줄곧 꼭 감았던 눈인데

 

입원하고 사흘 째 되던 날 기적처럼 엄만 눈을 떴어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너 댓 번이나

 

우린 그때마다 우루루 엄마 곁으로 몰려 가 엄마랑 서로 눈을 맞추려고 안달을 하고

 

무슨 보궐선거판의 공약처럼 엄마한테 맹세를 마구 남발하는거야

 

엄마한테 뭐뭐 잘못하고 살았던 거 용서하시고 앞으로는 이렇게 저렇게

 

잘하고 살거니까 지켜봐 주시라고 거침없이 엄마한테 약속을 했지들

 

두고 볼 거야 난

 

오빠들이 엄마 목숨을 담보로 굳게 맹세한 것처럼 다 지키고 잘 사는지를

 

 

나?

 

나는 안 그랬어

 

자신이 없었는지도 몰라

 

엄마가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

 

차라리 덜 고통받고 편안하게 가시라고 울면서 엄마 볼을 부빈 거 밖에는 기억 안나

 

그래서 미안해 엄마

 

너무 힘들어 하는 엄마를 지켜 보는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거든

 

이마에 흐르던 땀을 닦아드리면서 아무도 안 듣게 엄마 귀에 대고 내가 그랬어

 

엄마 이제 그만 아버지 곁으로 가

 

그 때 난 봤어

 

엄마가 흘리던 한줄기 눈물을

 

내 말을 들었던거지 엄마?

 

멀리 있어서 늘 보고팠던 딸이 엄마를 떠나라고 하니 섭섭해서 울었을거야

 

야속해서 울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친정에 간다고 전화하면 새벽부터 골목길에서 기다리던 엄마였는데

 

더는 기다려주지 못하고 떠나야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워서 울었어 엄마?

 

 

엄마

 

엄마가 눈을 감고 숨만 겨우겨우 쉬던 그 대학병원 특실 있었지?

 

그 특실에서 내려다 보이던 겨울 밤 풍경이 제기랄 미치도록 아름다운거야

 

강물에 비치던 야경이며 멀리 바라다 보이는 경주 시내가 얼마나 멋있던지

 

내가 그만 그 병원 옥상을 사 버릴까도 생각했어

 

그래서 엄마를 그 옥상에다가 모실까도 생각했었어 바보처럼

 

평생 누구네 뒷집에서 살았던 엄마를 앞 뒤 아무 것도 안 막히는

 

사방이 훤하게 탁 트인 옥상에다 엄마 유택을 지어 드리고 싶더라구

 

다른 어떤 위치에서도 그 야경이 안 보이겠어서 말이야

 

힘든 시간이었는데도 그 야경이 눈에 들어오고 엄마는 아픈데 그래서 더 서럽더라

 

살아계실 때 이렇게 좋은 곳에서 하룻밤이라도 재워드릴 걸 싶어서

 

근사한 욕실이며 작지만 깔끔한 주방에 응접실이며 두 대의 얇은 텔레비전까지

 

갑자기 엄마방의 오래되고 낡아서 흐릿한 텔레비전이 생각 나 얼마나 미안하던지

 

새벽에 엄마가 눈만 뜨면 친구가 되어 밤에 엄마가 잠이 들 때 까지 웅얼거리느라

 

그 텔레비전도 참 고단했을거야 그지?

 

 

엄마

 

우린 모두 비겁했어

 

엄마가 응급실에 처음 왔을 때 담당의사가 그런 말만 안했어도 우린 엄마를 수술대에 올렸을지도 모르는데

 

엄마한테는 그 어떤 생명연장술도 별 의미가 없을거라고 그랬거든

 

그래서 엄마 손가락에 심장박동수를 표시하는 이상한 기계를 연결해 뒀었는데

 

엄마가 경련을 일으키거나 호흡이 가빠지면 이상한 그래프를 삐죽삐죽 그렸어

 

그러다가 뚜......소리를 내면서 길게 가로줄을 그으면 심장이 멈추는거라고

 

쉽게 이야기하자면 의학적으로 엄마가 돌아가시는거라고 그랬어

 

이상한 그래프를 그리다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기계가 삐.......소리를 내면

 

못나게 놀란 엄마의 5남매는 복도를 향해 냅다 고함을 질러댔어

 

간호사~! 간호사~!

 

다급하게 간호사를 불러서 기계를 도로 원위치 시켜두고 그랬는데 있지 엄마

 

하루 이틀 사흘.........

 

응급실 입원 당일 하룻밤을 못 넘기겠다던 엄마가 하루 하루 생명이 이어지면서는

 

이러다가 거짓말처럼 기적이 일어나 엄마가 환자복을 허물 벗 듯 훌훌 벗고 일어나

 

쓰러지기 전처럼 혼자 힘으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어

 

그런데 엄마는 날이 갈수록 경련이 더 심해졌고 호흡이 고르지 못하고 들숨날숨이

 

엇박자를 놓는데 너무 힘들어보였어

 

지켜보는 성한 사람이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더 힘들어보였거든

 

마치 전기고문을 당하는 사람처럼 온 몸이 튀어오르고 뒤틀리고 그럴 때 마다

 

스며나 듯 얼굴에는 진땀을 빠작빠작 흘리고

 

느끼고 말을 하는 상태였더라면 그 고통을 어찌 견딜수 있었을까?

 

정말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엄마

 

장정 두 오빠들이 엄마 팔을 번갈아 가면서 꽉 붙들고 누르다시피 해도 엄마가 더 강했으니까

 

 

엄마

 

그래서 회복하기 힘들 것 같으면 더는 고통받지 않고 그 기계가 정말로

 

뚜..............하고 멈춰주기만을 간절히 바랬는지도 몰라

 

엄마도 덜 힘들고 지키는 우리들도 덜 고통당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려니까

 

얼마나 비겁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던지 많이 미안했어 엄마

 

엄마는 폐렴이 너무 심해서 폐기능이 다 망가졌고 회생 가능성이 거의 희박했대

 

엄마 온 몸에 나쁜 피가 너무 많다고

 

그래서 그 어떤 수술로도 엄마는 회복되기 어려웠대

 

공연히 노령에 수술하다가 못 깨어나고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수술대에 엄마를 누이는 것 보다는

 

그래서 더 험한 모습으로 엄마를 보내드리는 것 보다는

 

산소호흡기며 경련완화제 그리고 최소한의 영양을 공급하며 우린 기다렸어

 

엄마가 혼자 힘으로 살아내는 날까지만이라도 지켜보자고

 

솔직히 말해도 엄마 화 안 낼거지?

 

섭섭하다 안 할거지?

 

어느 순간에는 정말 그 기계가 더는 그래프를 안 그려주기만을 기다렸어 엄마

 

여러 사람들이 엄마같은 상황이라면 산소호흡기를 떼고 집에서 편안하게 가시게 하라고

 

그게 엄마를 위한 마지막 선택이라들 했지만 차마 그리는 못하겠더라 엄마

 

금방이라도 경련 중에 엄마가 어찌 될 것만 같은데 집에서 의사없이 우리 힘으로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웠어

 

겁도 났고...

 

 

 

엄마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더니 엄마는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어

 

응급실에 실려 가던 그날에는 정말 이젠 엄마와 영영 이별이구나 싶었는데

 

엄마는 용감하게도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꿋꿋하게 아니 씩씩하게 잘 견디고 있어줬어

 

엄마를 처음 담당했던 의사선생님도 그러더라구

 

당일 잘못 될 줄 알았는데 참 강하시다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병세였다면 아마도 그날 밤 돌아가셨을겁니다....이렇게.

 

나흘이 되던 날 엄마의 5남매는 의논을 했지

 

다들 직장이 있으니까 생업을 버리고 엄마만 바라 볼 수 없는 입장들이고

 

엄마를 집으로 모실 수는 더더욱 어려운 형편들이라

 

엄말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교대로 지켜드리자고 했어

 

누구 한사람이 책임지기에는 힘든 일이고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직장도 결근을 마음데로 할 수 있는 그런 직장도 아니라 엄마지킴이에서 면제되었어

 

대신 가까이 사는 오빠나 올케들이 교대하기로 하고 요양병원으로 입원시켜드렸어

 

엄마의사하고는 전혀 무관하게 말이지

 

엄마가 말을 하는 엄마였다면 의식이 또렷했더라면 살려 달라고 애원이라도 하셨을까?

 

나는 요양병원에는 안 갈란다~!

 

이 대학병원에서 당장 수술이라도 하고 좋은 약이라도 써서 날 살려 놔라고 호통치셨을까?

 

요양병원 중환자실에 엄마를 누이고 돌아 서 나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이러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급한 연락 또 받는거 아닌가 해서...

 

요양병원 간호사가 또 그러더래

 

보호자 한분은 집에 가지 말고 꼭 대기하시라고

 

할머니는 오늘 밤 넘기기 어려우실겁니다 하면서

 

다 틀렸어.

 

대학병원 의사도 요양병원 간호사도 잘못 짚었지 뭐야?

 

엄마는 주렁주렁 거미줄처럼 링거줄을 메 단채 장하게도 사흘을 더 살아냈어

 

그리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경련도 사그라들고 평온해진 얼굴로 조용히 가셨다고 들었어

 

태어나던 날부터 엄마를 가장 애 태우던 셋째 오빠한테만 임종을 지키게 하고 가셨고

 

엄마가 제일 안타까운 아픈 손가락이었던거지?

 

10년이 넘도록 올케랑 별거 중인데다가 엄마 앞 서 중풍까지 얻어 투병중인 셋째아들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걱정이 되었던거지?

 

그래도 엄마 대학병원 응급실 입원하고 둘째 날에 집 나간지 10년만에 그 올케가 왔던데

 

엄만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뜨고 앞으로는 살림 합쳐 잘 살아라 유언도 못하고 뭐

 

엄마가 평소에 한숨 섞어서 그리도 걱정하시더니 돌아왔더라구

 

그 올케가 울기는 또 왜 그렇게 서럽게 울던지

 

잘못했다고도 울고 용서하시라고도 울고

 

다 못난 셋째 오빠 탓이지 엄마?

 

 

엄마

 

대학병원 응급실 입원하던 그날부터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기 까지 일주일

 

그리고 엄마 장례식까지 9일간 엄마의 못난 5남매는 평소에는 단 한번도

 

해 드릴 엄두도 못 냈던 호강을 해 드렸으니 이런 모순이 어딨어 엄마?

 

언제 우리 5남매가 밤샘을 하면서 9일씩이나 엄마 곁에서 안 떠나고 지켜 봐 드렸던지?

 

특실에 VIP실에 엄마를 쉬게 한 적이나 있었던지?엄마 심심할까 봐 수시로 말동무 해 드린 적은?

 

엄마 관절 안 좋을 때 누가 엄마를 걱정해서 다리를 주물러 드린 적은 있었던지?

 

어린 5남매 배 안 곯게 하느라 투박하고 거칠어진 엄마 손을

 

언제 그렇게 살갑게 어루만지고 볼에 부벼 드린 적 있었던지?

 

외갓댁으로 장터로 우릴 거두어 먹이느라 수천 수만리도 더 다녔을 엄마의 작고 거칠어진 발을

 

그 어떤 자식도 엄마 살아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감사하다 말 하면서 씻겨 드린 적이 있었던지.............

 

엄마가 이제나 저제나 숨을 거두시지나 않나 해서 자주 들춰 보기나했지.....

 

 

진짜 미안해 엄마

 

엄마가 많이 아픈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정말 몰랐어

 

그래도 너무 심했어 엄마

 

한 달 전에 엄마랑 하룻밤 자던 날 무슨 언질이라도 좀 주지않고 그렇게 가기가 어딨어?

 

그 날 밤 내가 자는데 이상한 손길이 느껴져 가만히 눈을 떴을 때 엄마는 내 머리맡에서

 

그저 날 내려다 보고만 계셨잖아

 

가슴께까지 내려 간 이불을 가만가만 내 목 언저리까지 올려주시고

 

난 왜 그 때 일어나 엄마랑 이야기 동무라도 해 드리지 내쳐 잠만 잤나 싶어서 후회가 돼

 

그날이 이 세상에서 엄마랑 내가 마지막으로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날이었는데 싶으니

 

도로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져서 더 울었던 것 같아

 

엄마가 밤을 꼴딱 새우자고 해도 엄마 이야기를 다 들어드릴걸....

 

민화투를 치자고 해도 그림맞추기라도 해 드릴걸....

.

어깨며 무릎이 시리다고 했을 때 파스라도 몇 번 더 발라 드릴걸.....

 

내가 사다 드린 순모로 된 커다란 숄을 동강동강 잘라서 무릎 보호대를

 

만들었다고 심하게 짜증을 내서 너무너무 미안해 엄마

 

엄마는 무릎이 시리고 아파서 숄 보다는 그게 더 절실했었는데 바보같은 딸이

 

몰라주고 버럭 고함이나 지르고.....

 

늦은 밤 엄마가 정말 돌아가셨다고 막내오빠가 울먹이며 전화를 했는데

 

갑자기 내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났어 엄마

 

애들한테 연락을 하는 내 손가락이 마구 떨려서 다이얼이 잘 안 눌려지고 자꾸 오류가 나잖아

 

마음의 준비는 이미 하고 있었지만 쿵쾅쿵쾅쿵쾅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고 어지럽기도 했어

 

 

그런데 왜 갑자기 씽크대로 달려가 설거지는 했던지 몰라

 

그것도 한밤중에 열 두시가 다 된 시간에

 

수돗물을 쎄게 틀어 놓고 물컵이며 빈 접시를 일부러 빡빡 문질러 씻었어 엄마

 

그러면서 꺼이꺼이 목 울대가 심한 압박감이 오도록 울었어

 

오늘인가 내일인가 전화노이로제에 걸렸던 며칠간의 조바심이 현실로 다가왔는데도

 

 

진정이 안되고 온 몸이 심하게 떨리더라 엄마

우리집 난방 상태는 아주 좋은데......

 

 

엄마

 

엄마가 한줌 재로 남았을 때 화장터에서 금방 나온 엄마는 따스하더라

 

고열로 인한 불기운이겠지만 한지에 싸인 엄마는 따스했어

 

큰 대접 하나 정도밖에는 안 되는 뼛가루가 엄마의 전부였어

 

백옥 같다는 말

 

난 그날 처음으로 그 말이 실감났어 엄마

 

엄마를 누인 나무관이 화장터 불가마 속으로 들어 가기 전

 

장남인 큰 오빠보고 이렇게 세 번 소리치라고 했어

 

“어머니 불 들어갑니다~!

어머니 불 들어갑니다~!

어머니 불 들어갑니다~!“

 

큰오빠는 소 울음을 울면서 그렇게 외쳤고 우린 고함을 지르듯이 발악하듯 울어댔어

 

엄마랑 마지막으로 대하는 순간이었는데 난 막 어지럼증이 나서 토할 것 같았어

 

엄마의 나무관이 불가마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미끄러져 들어가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엄마의 나무관 끄트머리를 잡았는데 엄만

 

기다려주지도 않고 냉정하게 그 불가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말더라

 

몇 초쯤 됐을까?

 

한 5초쯤이나 되었을까?

 

그 단 몇 초간의 짧은 시간이 51살이 넘도록 산 내 삶 중에서 가장 힘겨웠어

 

휘청하며 쓰러질 것 같았는데 마침 내 곁에 서 있던 남편하고 아들이 얼른 잡아줬어 엄마

 

콰콰콰콰쾅.......

 

금방 굉음을 울리며 세찬 불기둥이 들어가는 소리가 났어

 

그리고 엄마 그 순간 내 몸을 휘감는 듯한 이상한 공기의 흐름도 느꼈는데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 속의 어떤 기운이 엄마의 작별인사 같다는 느낌이었어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과 울어서 차가워진 내 두 뺨과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빠르게 한바퀴 휘~~돌던 그 느낌

 

분명히 엄마가 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떠나는 거라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 엄마였지?

 

거대한 굴뚝에서 처음에는 시커먼 연기가 마구 솟아오르더니 좀 있다가는

 

하얀 연기만 나오던데 엄마의 육신이 승천하는 순간이었어

 

엄마가 하얀 연기 속에서 마치 손을 흔들어 주는 것 같은 착각에도 빠졌어

 

울다 지쳐 먼 발치에서 멀거니 엄마가 아주 떠나는 모습을 넋이 빠진 모습으로

 

바라보다가 오빠들이 엄마의 작업(이 말이 소름 돋도록 참 듣기 싫었지만)이

 

다 마치려면 1시간 30분 정도는 소요된다고 준비한 점심을 먹으라고 했어

 

화장터까지 와 주신 문상객들 점심대접도 해야 한다고 하면서

 

화장터까지 출장 부페가 다 와 주더라구

 

세상 참 편리하지 엄마?

 

그리고 엄마한테는 많이 미안했는데

 

엄마는 저리 뜨거운 불가마 속에서 아주 사라져가고 한줌 재로 변하고 있는데

 

딸년이란게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다니....

 

시선을 애써 그쪽으로 안 보내면서 시락국에

 

밥을 말고 차려 놓은 반찬에

 

젓가락을 부산하게 오가면서 밥 한 공기를 뚝딱했으니 참 야속하지 엄마?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었는데 그게 현실이었어

 

다들 밥을 잘 먹었다는게 비정할 정도였지만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면서....

 

 

엄마

 

1시간 30분이 영원같이 느껴지더니 어느 순간 철거덩~~하며 엄마가 들어 간 그

 

육중한 철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단 한 점의 살점도 없는

 

뽀얀 엄마의 뼛조각을 긁어모으고 다 빻을 때까지 눈도 깜짝 안하고 다 지켜봤어

 

혹시라도 엄마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빠트리고 덜 주울까 봐

 

다행히 꼼꼼하게 잘 긁어모아서 곱게 빻아 한지에 싸고 나무 상자에 담아줬어

 

살았을 적 엄마의 온기처럼 따스한 엄마를 안고 최씨 문중의 선산으로 엄마를 모시러갔어

 

우린 엄마 산소를 선산 소나무 옆에 수목장으로 하기로 했거든

 

아버지 산소가 없어졌으니 매장은 그렇고 화장을 해서 엄마도 아버지처럼

 

흔적도 없이 흩어버리면 남은 5남매가 너무 허전할 것 같았어

 

그래서 선산에 있는 소나무 중에서 잘 생긴 소나무 밑에 엄마를 고이 모셨어

 

작은 묘비명도 하나 세웠는데 그 글귀는 딸인 내가 적었어

 

“김00여사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곳에 잠들다“

 

엄만 우리 5남매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었고 우린 그 썩어진 밀알을 거름삼아

 

이만큼 잘 자랐고 또 우리도 엄마의 뒤를 이어 자식들을 낳고 키우는

 

썩어질 밀알이 되어가고 있잖아

 

엄마는 수목장이 마음에 들어?

 

살아생전에 늘 과체중으로 고생하던 엄마는 돌아가시고나면

 

화장을 해서 훌~훌~날아가게 해 달라고 했었지?

 

죽어서라도 가볍게 살고 싶다고...

 

화장을 했으니 가볍게 해 드렸고 우리 5남매가 언제라도 가서 엄마를 볼 수 있게

 

수목장을 했으니 우리도 덜 허탈해서 좋고

 

내년 봄에는 엄마를 모신 소나무 옆으로 내가 꽃 잔디를 심을까 해

 

엄만 꽃을 잘 가꾸고 사랑했잖아

 

봄이 되면 꽃 모종을 사다가 엄마 옆으로 이쁘게 단장을 하려고 생각 중이야

 

고마운 건 오빠들이 장례절차나 산소문제도 다 내 의견을 많이 존중해 준거야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오빠들끼리 결정을 하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은게 아니라

 

엄마의 병원문제나 장례문제 등 모든 문제를 다 같이 의논하고 내 의견을

 

많이 들어주고 결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해 줬어

 

엄마가 날 많이 사랑해 준 덕분이야

 

고마워 엄마

 

 

엄마를 선산에 모셔두고 우린 내려왔고

 

제 각각 피 터지는 삶의 현장에서 하던 일을 예사롭게 이어가고 있어

 

첫째는 엄마가 그리 오래 고생 안 해서 큰 복이고

 

둘째는 우리 자식들이 엄마 때문에 오래 고생 안해서 더 큰 복이라고들 했어

 

돈도 돈이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며 딱 일주일만 아프고 돌아가신 엄마를 두고

 

모두들 복 많은 노인네라고 하셔 엄마

 

금요일 밤 늦은 시간에 돌아가셔서 장례식까지도 하루 벌어주고 가신다고

 

무슨 복이 이리도 많으냐고도 했어

 

그런 거야 엄마?

 

이런 경우를 두고 복 많은 노인네의 호상이라고 하는거야?

 

그래도 그 호상이라는 말이 내 엄마니까 무지무지 싫은데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호상은 아니지

 

천년만년 같이 사실 수는 없지만 고아가 되는 이 순간이 어찌 좋을 수가 있겠어?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는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가시는데

 

슬픔이 너무 크니까 울음도 많이 안 울어 지더라 엄마

 

명치께가 많이 뻐근하고 막 그랬어

 

머리가 심하게 아팠던 기억이 자주 있었고

 

 

엄마

 

이제는 안녕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은 엄마랑 같이 타면서 깨끗하게 없어졌고

 

육신의 질병도 다 사라져 버렸잖아?

 

부자도 가난뱅이도 없는 나라

 

질병도 고통도 없는 나라

 

좋은 남편도 나쁜 남편도 없는 나라에서 편안하게 계시길

 

엄마의 남은 자식들 일이 잘 풀리도록 지켜 봐 주시고 응원해 줘 엄마

 

공부에서나 건강에서나 직장에서나 두루두루 다 잘 되도록....

 

엄만 사랑이 많으시니까 꼭 그렇게 하고도 더 하시려고 할거야.

 

엄마라고 불렀던 푸근한 이름이 이제는 눈물부터 나오게 하는 서러운 이름이 되고 말았어.

 

현실이 아니어도 좋아

 

꿈에서라도 자주 만나 엄마.

 

꿈에서는 내가 엄마할께 그래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어.

 

공주님처럼은 어려워도 꿈 많은 소녀로 돌아가서 엄마가 하고 싶었던 일 다 하고 사는

 

행복한 딸로 키우고 싶어.

 

어쩌면 그게 내가 살고 싶었던 소녀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우리 꼭 그렇게 하고 살아보자 엄마 꿈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