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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그 여름(하루 계획)


BY 새봄 2012-01-27

아침 830분 압력밥솥의 취사 단추를 누른다.

잠에서 깬 새소리가 부드러우면서 힘이 들어가 있다.

창을 열고 새를 찾아도 새는 보이지 않는다.

계수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을 거라 짐작하지만 계수나무 높이는 10미터이상은 돼 보인다.

반찬은 주로 마늘과 파를 넣은 된장찌개와 푹 삶아 들기름으로 무친 나물이다.

밥을 질척하게 해서 밥 한공기와 물 반공기를 넣어 믹서에 곱게 갉아야한다.

밥 알갱이가 조금만 덜 갈려도 막내이모는 먹기 힘들어했다.

넷째이모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청소를 한다.

길쭉한 한 칸의 방을 먼저 닦고 창밖에 놓인 평상을 닦는다.

밤이슬이 내려앉은 평상은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다.

 

10시에 모자와 운동화를 신고 손에는 작은 페트병 하나씩을 들고 약수터를 간다.

약수를 먹고 페트병에 가득 담아 마을을 지나 산길로 올라간다.

마을을 지나는 길에 뽕나무가 많다.

오디가 뽕나무 아래 그늘처럼 까맣게 떨어져 있다.

이 마을은 6월의 뽕나무처럼 조용하지만 풍성하고 건강해 보인다.

손이 닿는 곳 오디를 따 먹고 새순을 한 움큼 따 비닐봉지에 담아 주머니에 넣는다.

푹 삶아 나물로 무치고 저녁밥을 할 때 밥솥에도 넣어야겠다.

산중턱에 앉아 깊게 심호흡을 하고 누워 있기도 하고

돗자리를 중심으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오전 오후로 와야 하니까 돗자리를 여기다 숨겨두고 가자는 넷째이모의 의견에

다람쥐 놀이터인 바위틈에 돗자리를 밀어 넣었다.

우린 큰 이득을 본 것처럼 12시에 산길을 내려오면서 의기양양했다.

 

점심은 아침에 점심밥까지 했으니까 그냥 차려 먹으면 된다.

씹어 먹을 수 없는 막내이모를 위해 찬은 아주 간소하고 소박하다.

이곳으로 올 때 먹을거리를 준비해온 것이 별로 없다.

양파 한 망과 마늘과 감자 한 봉지씩, 자반고등어 한 손, 수박과 토마토,

김치와 막내이모를 위한 백김치정도.

이곳으로 오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오기 하루 전에도 막내이모는

그곳에 가봤자 소용없을 거라며 이대로 죽겠다고 했다.

그냥 놔두라고 괴롭히지 말라고.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정도 눕는다.

애꿎은 천장을 보고 울던 막내이모는 넷째이모의 익살에 천장이 무너져라 크게 웃었다.

막내이모에게 과일을 갉아주는 시간.

수박을 갉아 시각적으로 보기 좋으라고 투명한 유리컵에 담아준다.

짙은 분홍빛이 맨드라미 꽃잎을 우려낸 것 같다.

 

오후 2시에 다시 약수터에 들렸다가

바위틈에서 여자 셋을 기다리고 있을 다람쥐와 돗자리를 향해 쓰윽 쓰윽 걷는다.

마을을 벗어날 땐 덥지만 산그늘 속에 들어오면 산 속은 여름이 아니다.

 

내려올 때 약수터 계곡 길이 아닌 반대쪽 계곡으로 내려온다.

이 길에 별장 두 채를 만나게 된다.

잘 정리한 넓은 정원과 잘 지은 집.

별장을 내려오면 계곡을 끼고 조립식으로 지은 좁고 빈약한 집이 있다.

그 집 앞 계곡에 납작 돌을 가지런하게 놓고 그 곁에 빨간 플라스틱 그릇과 비누곽이 있다.

납작 돌에 앉아 손과 팔을 씻었다.

 

5시에서 6시쯤 민박집 평상에 앉을 시간이다.

바라보지 않아도 저녁은 산으로부터 내려온다.

귀 기울이지 않아도 물소리가 커지는 저녁 무렵이다.

뽕잎을 넣어 저녁밥을 한다.

이 밥을 믹서에 곱게 갉면 오랫동안 햇볕을 쬔 듯 한 녹색 죽이 된다.

죽보다는 밥을 해서 갉아야 맛도 좋고 많이 먹을 수가 있단다.

막내이모가 살기위해 터득한 방법이다.

소금을 넣고 뽕잎을 푹 삶는다.

뽕잎 삶는 냄새가 오디 세 개를 깨물어 먹는 것 같다.

 

8시에 약수터에 갔다가 산길로 가지 않고 민박집으로 내려와

민박집 앞 두 갈래 길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아침 먹고 걷고, 점심 먹고 더 오래 걷고,

저녁 먹고 낮보다 덜 걷는 것이 하루 계획이고 하루 동안의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