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신문에 구세군 자선냄비에 각 1억이 든 봉투를 가지고
노부부가 찾아왔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따로따로 1억씩, 2억을 내면서
신상공개는 안할거고 받았다는 글만 써 달라고.
이 다음에 자식들에게 보여줄거라고 하셨단다.
최고의 유산이다.
그런데 혼자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내 평생 쥐어보지 못한 거금이다. 나에게 1억이 있다면 선뜻 내줄수 있을까.
그분들은 물론 그만한 여유가 있으니까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못하겠다.
아이들을 키울때 월급을 타고 열흘만 지나면 봉투가 바닥이 났다.
월말에 월급타는 이웃에 빌려쓰고 우리 월급을 타면 갚고..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우리 살림살이였다.
그때 내 소망은 통장에 항상 백만원의 여유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난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부자일것 같은데..
당시에 가계수표라는게 나왔다. 삼십만원이 한도액이다.
그후로 이웃에게 돈을 빌리지않고, 가계수표로 대신했다.
끝없는 되풀이에 어느 날,마음을 다지고 가계수표용지를 다 찢어버렸다.
남편에게 다시는 용지를 가져오지말라고 이를 앙다물었다.
한달만 아껴쓰고 참자.
엄마의 닥달에 용돈을 아껴썼던 우리 아이들,
돈이 없어 대학때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는 아들의 말이 아팠지만 그래도 모른척 했었다
내 억척은 기특하게도 가계수표를 안쓰고, 빌리지도 않고 잘 버텨내었다.
지금은 남편 연금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자식들도 다 출가하고 서로 손 내밀지않고, 부유하지는 않지만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그런대로 잘 살고있다.
남에게 돈을 빌리지만 않으면 잘 사는 삶이 아닌가.
월드비젼 회원으로 3만원, 지역 복지센타에 2만원, 성당 빈체시오회(가난한 이를 돕는)1만원을
다달이 내고있다.
적은 금액이지만 나의 한계다.
남에게 자랑할만한 금액은 아니다. 내 능력 한도내에서 최선의 기부라고 여기고 있다.
자식들에게 현금을 물려줄 만한 여유는 없지만 남편과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으니
죽고나면 자식들에게 물려주리라 생각한다.
.
요즘 사회에 불고 있는 기부바람에 나도 이담에 아파트도 사회에 기부라고 유언이나 남길까 생각도 했지만
새 가슴보다 좁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아래층 젊은 엄마가 친정 부모님에게서 유산을 받았다고 자랑을 하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며칠동안 괜히 마음이 헛헛해지고 빈궁한 내가 서러웠다.
월세로 시작하면서 군인인 남편의 박봉에 아이들 옷도 죄다 얻어입히고,
급기야 결혼 예물도 다 팔아 써야했던 궁색함에 진저리가 쳐진다.
손녀 유치원비가 만만찮다는 아들의 이야기도,
집사려고 월급의 반을 저축한다는 딸의 이야기도
모른채 듣고 있다.
우리가 갑자기 일찍 죽으면 자식들에게 도움이 될 정도로 횡재하는 것이고
자식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때 우리가 죽으면
새 가슴같은 엄마를 닮지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부모 아파트를 팔아 사회에 기부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노부부와 거금을 사회 기부하는 분들이 진정으로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