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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苦盡甘來)


BY 바늘 2011-11-19

 
 

고진감래(苦盡甘來) \"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즉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입니다

 

이제 쓴 세월을 뒤로하고  제가 단 세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십 년을 넘게 드나들던 에세이방 제게는 안방과 같던 아니 시골집 사랑방과 같았던

편안하고 정든 에세이방이었지요

 

그런 이곳을  떠나 흔적을 거둔지가 일 년이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주 오랜만에 한 해가 저물어가는 끝자락에서 여백에 점을 찍어

다시 찾아들어 오게 된 이유는

 

이곳은 저의 눈물과 웃음, 기쁨과 슬픔, 삶의 애환, 시시콜콜

사소한 흔적까지 아직 구석구석 베어있고 힘들었던 시절에 이곳에서 제가 받았던

수많은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넘치는 위로와 다정함이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세이방의 인연으로 아컴의 인연으로..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시간이 무료하다 생각하여

참으로 팔자 좋게 심심해~ 따분해~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고통 속에 살아가면서 얼마나 내게 커다란

사치였는지 깨달았습니다

 

고객센터 상담원이 되어 십 년 넘게 한우물 파면서

비 오는 날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던 부침 한 장과 커피 한 잔이 

얼마나 삼삼한 그리움이었는지...

 

영하의 강 추위가 매서운 겨울

직장에 출근하면서 옷 깃 여미고 미끄러운 길 조심 조심 걸어 가면서

보일러 강으로 올려 놓고 늦잠에 취해 비몽사몽인 아침이 얼마나

내게 큰 간절한 희망이었는지...

 

폭풍처럼 밀려왔던 그 어려웠던 난관에 적응 못하고 방황하고 힘들었던 지난 날

 

기계처럼 아침이면 일어나 일터로 향하고 저녁 퇴근이면 너무 피곤해서

뻑하면 내릴 하차 정류장을 지나 버스 회차하는 곳 까지 졸고 가서

기사 아저씨 \"아주머니 어디 까지 가세요? \"깨우는 소리에 놀라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환승하고 집으로 오고

 

그렇게 졸다가 집에 오면 다시 밤 늦게 고민에 쌓여 밤을 지세우고

 아침이면 다시 출근 버스에서 꾸벅 졸다가 무릎에 올려 놓았던 가죽 장갑도

 스카프도  종종 두고 내렸습니다

 

조금만 참으라고 분명 좋은 날이 다시 올거라고

주변에 많은 분들이 내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고

미래에 대한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였지만

 

아침이면 일터로 향하고 직장에 도착하면 정말 열심히

내 책임을 다하여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면서 무너져 내렸던 가슴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었습니다

 

감사하게 거처할 작은 집도 다시 마련하고 아들도 딸도 모두

빚으로 남는 학자금 대출없이 대학 공부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생각대로 희망사항 그대로 이루어졌으면 딸처럼 아들도

순탄하게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이 되고 나도 홀가분하게 그간 고생은 이미

털었을 터인데

 

예상외로 복병을 맞이하였습니다

 

청년 백수!!!

 

남의 집 일인가 했더니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청년 백수로 그간 나의 가슴을

애태웠습니다

 

 젊은 청춘의 나이에 배울 만큼 배우고 일자리 없어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들

 아울러 그런 백수 자녀를 두고 배경도 없고 힘도 없어 우두커니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 마음이 얼마나 힘이든지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작년 2월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아들은 졸업을 연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친정 오빠와 언니 조카까지 졸업식에 온다 하여 식사할 식당까지 예약하고

나도 직장에 연차 휴가를 내어 둔 상태였는데

 

아들은 한 해 더 취업 준비를 하고 졸업하고 싶다고...

 

내 마음 같아서는 무슨 연기야 어서 졸업해야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들의 의견대로 졸업을 한 해 미루었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계속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습니다

 

기업에 지원서를 내고 서류전형에 통과하고 1차, 2차, 최종 면접까지

통과하였지만, 예상외로 결과의 끝은 좋지 않았고 취업의 문턱은

왜 그리 높고 높던지...

 

계속된 낙방으로 이어진 취업 전쟁 속에 청년 백수 아들의 한 해가 또

훌쩍 지났습니다

 

올해 2월 19세 고3 1학기에 수시 모집으로 들어갔던 대학을

그간에 해병대 복무도 있었지만 29세가 되어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올해 대학을 졸업한 아들

 

2월 졸업 후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 모집에 계속 원서를 내고 습관처럼

계속 쓰디쓴 고배의 잔을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아들도 우울했고 나도 우울했고 딸도 기운 없고

가족 모두가 우울한 슬픔이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겉으로 별반 내세울게 없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 보니 누구나 다 부러워하는 일명 SKY 대학에 입학했어도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많이 할애하여 기본으로 과외 알바는 두 곳이었고

나머지 시간에도 늘 아르바이트에 매달렸으니 성적도 그렇고

 

게다가 요즘 흔하디흔한 해외 연수도 한 번 못 가본 아들이었기에

 

하지만 정말 꿈같은 일이 기적처럼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거실 탁자에 카드가 한 장 올려져 있더군요

 

\" 지난 10월 3일 신입사원 서류전형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인.적성검사에

귀댁의 자녀가 응시하여 합격하여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귀댁의 자녀가

응시하여 합격한 인.적성검사는 질문의 난이도가 매우 높은 전형 과정입니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합격한 자녀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따뜻한 격려를

부탁 드립니다 \"

 

\"인생에서 사회에 첫출발을 준비하는 자녀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드실것입니다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앞으로 삶의 자양분이

되기 위해 인문학이나 고전을 한 권 선물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원했던 대기업 부사장님 직함으로 부모님께 보내 온 카드 내용의 일부였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동안 취업 준비를 하면서 여러번 인.적성 시험에 합격도 하고 최종 면접에도

다가 갔었지만 이번처럼 부모님께 카드를 보내 온 기업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최종 취업까지는 여러 차례 관문 통과가 있겠지만 

회사에서 배려하는 세심함이 고맙기만 하였습니다

 

10월 초에 입사를 지원했던 회사 는 서류전형 인.적성검사,실무면접,

최종 임원면접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으며 그 때마다

단계별 합격의 통지가 정성스런 배려의 사연과 함께 카드로 배달되어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만 최종 임원면접이 있던 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근무하면서 마음의 갈피를 잡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29세 결코 취업 하기에  마냥 여유가 있는 나이는 아니였기에 말입니다

 

아들은 분명 오전 시간에 면접이 있다고 했는데

오후 시간이 지나도 아들로 부터 연락이 없었습니다

 

아~ 어떻게 되었을까?

 

조심스럽게 딸아이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 오늘 오빠 면접 어떻게 보았다고 하던? 연락은 있었니?\"

 

딸아이는 걱정하지 말라고 그냥 그렇게 보았다고 하는데

원래 그렇게 말하면 결과가 괜찮다면서 지금 오빠는 집에서 발표 기다리고

있다더군요

 

최종 면접이라 오늘 저녁 바로 발표가 바로 있을 거라고...

 

두근거리는 가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딸아이와 내가 아침 일찍 출근하면 출근하기 전까지

아들은 방에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자기방에 있다가 문 닫고 출근하는 것 확인하고

방 밖으로 나오던 아들

 

어느 날인가 핸드폰을 두고 나가

다시 집으로 급하게 들어오니 거실에 나와 있다가 나를 보고 놀라던 아들

 

그간 여동생과 엄마가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고 일자리 없이 집 지키는

백수 역할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퇴근하고 집에 오면 세탁도 해 놓고 심지어 딸과 내 속옷까지도...

 

분리수거도 잘하고 집 안 청소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정말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녀석인데

 

그간 많이 힘들어 때로 방황도 하고 좌절도 했던 녀석이었습니다

 

이제 아들의 취업은 단순한 돈을 벌기 위한 일자리가 아니라

한 가족을 살리는 희망의 프로젝트였습니다

 

어수선 심정으로 복잡한 하루가 지나고 퇴근 시간 6시가 되었습니다

 

기다리고 고대하고 있었지만, 아들로부터 연락은 없었습니다

 

아~ 이번에도 그렇다면 또...

 

사무실에서 크게 실망하며 터덜터덜 걷다가 직장 선배 언니에게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언니 저 집에 가기 싫어요 우리 술 한잔해요 ~\"

 

\"그러자 좋아~ 나 얼른 정리하고 바로 따라나갈게 \"

 

선배 언니와 나는 막걸리에 골뱅이 소면 안주를 시켜 놓고

건배를 하였습니다

 

마음은 조바심으로 떨었던 하루였기에 지쳐 있었습니다

 

울적한 나의 기분을 오늘 종일 두근거림에 대한 하소연을 하려는데

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앗! 아들이다

 

아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저 지금 인터넷으로 명단 확인했고 회사에서도 문자 받았는데

 합격이래요. 합격 ~~\"

 

순간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볼은 타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흘렀습니다

 

갑자기 우는 나를 보고 마주 앉은 직장 선배 언니도 사정을 전해듣고 따라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십 년 체증이 싹 내려가는 후련함이 들었습니다

 

아들이 가장 선호하고 원하던 대기업에 드디어 취업이 되었습니다

 

딸에 이어 아들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기업에 취업이 되었으니

이제 제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아들은 합격 소식 후 바로 내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어머니 내일 사표 내세요

그동안 말없이 지켜봐 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제가 이제 어머니 책임질게요\"

 

에세이방 여러분 그간에 이러한 기쁨이 제게 있었기에 보고(?)를 드리옵니다

 

늘 그랬듯 기쁨은 나누기하여 배가 되는 에세이방 이곳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말입니다

 

여러분 축하해 주실 거지요?

 

ps-아컴에 제가 운영자로 있는 아지트가 있습니다 \"40대는 아름다워\" 그 곳

아지트 회원님들에게는 얼마전 글로 알려 드려서 넘치는 축하를 받았구요

 오늘 이렇게 에세이방에 소식 전합니다 정말 그간 걱정해주시고 염려해 주신

많은 님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