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버스로는 13 시간 정도?
경비행기로는 40분 거리 뚜게가라오.
그곳이 우리가 갔던 필리핀의 작은 마을이다.
뚜게가라오에서 5박을 하고 마닐라공항으로 나오던 날이었다.
도착하고 거의 날마다 선교지를 둘러보느라 버스로 승합차로 몇시간씩 달리고 또 달렸던
좀은 피곤하고 힘든 일정이었다.
재래시장을 가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도 이루지 못하고
도착한 이튿날부터 비는 주룩주룩
그 다음날까지 억수같이 내렸다.
비 때문에 강을 건너야 할 선교지에는 끝내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불어난 강물 앞에서 돌아서야만 했다.
그것도 밤에 한시간 반이나 달려서 건너가겠다고 간 강이었데...
그곳에서는 한밤중에라도 손님만 가겠다면 배를 띄운다고 했다.
강물만 적당하면 캄캄한 밤에도 강을 건너 준다고 했다.
때로는 달빛을 가로등 삼아 강을 건너기도 한다니 상상도 못할 현지사정들이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조달한 한국식품들로 오랫동안 고국음식이 그리웠을 두 여선교사님들을 위해
한국음식을 하느라 현지인들하고 같은 주방을 쓰며 어렵게 어렵게 소통을 하던 5일간이었다.
잦은 손님접대로 잘 훈련된 그녀들은 뭐든 눈치로 잘 챙겨줬었다.
음식은 우리가 만들고 설겆이는 언제 했는지 재빠르게 말끔히 해 주던 현지주방팀들
꼭두새벽인데도 주방에서 뭘 만들고 있는 모습들이 참 안스럽고 고마웠다.
물론 그들을 전적으로 후원하는 나라의 손님들을 위해 하는 수고겠지만
누구보다도 잦은 손님접대를 해야하는 입장인 내가 그 마음을 잘 알지.
마닐라에서 하룻밤 자는 것을 빼고는 5일간을 그 집에서 잤고 주방을 사용했다.
그들의 활짝 웃는 얼굴은 참 이뻤다.
대체로 치아들이 가지런했고 다리가 가늘고 쭉쭉 뻗어서 몸매들이 둔하지 않고 훌륭했다.
피부가 좀 까무잡잡하다는 것 빼고는 남자나 여자나 얼굴들이 잘 생겼다.
스페인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도 했다.
주방일을 보던 두 여자분들은 키가 좀 작았고 상냥한 미소에 몸놀림이 빨랐다.
말끝마다 \"예쓰 맘..예쓰 맘\"을 붙히며 공손했고.
주방일을 하느라 며칠간을 그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떠나던 날은 많이 아쉬었다.
내가 언제 또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 동안 내게 많은 도움을 줬었고 수고하던 모습이 고마웠다.
다른 동네 현지인들보다 그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직장이 있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고 의식주가 다 해결된다고.....
그래도 그냥 떠나오기가 자못 섭섭했다.
마지막 마닐라로 떠나던 날 새벽에 여행가방을 챙기면서 마음을 정했다.
그 곳에선 구하기 힘든 제법 큰 여행용 샴푸세트와 화장품세트 그리고 가져가서 안 입은 내 옷 서너가지
그 옷은 교회 가는 날 외출용으로도 손색이 없을 옷이었기에 잠시 망설여졌다.
옷만 빼고 다 드릴까?
옷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작은 갈등이 일어났다.
그래도 한국가서 후회하지 않기로 하고 가방에서 뺐다.
다른 사람들 눈도 있고해서 일부러 이른 새벽에 주방으로 내려갔다.
늘 하던 데로 두분이서 아침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나 현지인 중에서 다른 사람들이 주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후딱 해 치울 일이었다.
다 드릴 선물은 아니기에 누가 봐도 좀 그랬다.
조금 들고 간 달러를 얼른 주머니에 넣어드리고 화장품과 욕실세트는 둘이 공평하게 나누어 드렸다.
옷은 둘이서 알아서 나눠 입으시라고 손짓에 발짓까지 동원해서 의사전달을 끝냈다.
그리곤 복도를 내다보니 아직도 아무 기척이 없다.
히유.....................
그들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움직였고 실행했다.
손님들이 와서 팁을 자주 주게 되면 자꾸 바라게 된다며 주더라도 사무실을 통해서 주라고 첫날 주의를 줬었다.
그래도 그렇게 받게되면 나누기를 해야하니 자연히 적은 팁이 돌아갈게 뻔했다.
그 누구보다도 바쁘고 힘든 일을 감당하는 그녀들을 안녕이라는 인사만 하고 오기에는 너무 미안했다.
누가 볼세라 얼른 그 자리를 떠났고 아침 일찍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인원점검을 마치고 뚜게가라오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러 마악 떠나려는데
누가 뒤에서 내 가방을 홱~낚아챘다.
흡~~~
순간적으로 그 말로만 듣던 공항소매치긴가 싶어서 가방끈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곤 반사적으로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는데
아.....................
아까아까 숙소를 떠날 때 내가 생필품을 드리고 왔던 주방의 그녀였다.
내 가방에 무슨 부스럭거리는 뭉치를 넣곤 얼른 공항의 인파 속으로 사라지며 수줍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우리 일행이 타고 온 버스는 못 타고 지프니 라는 그들의 차를 타고
일부러 공항까지 배웅을 하러 나온 그녀였다.
털털거리고 창문도 없는 그 불편한 지프니를 타고....
고맙다는 인사도 하기 전에 타고왔던 그 지프니를 되짚어 타고 떠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일행이 숙소에서 짐을 내리고 공항으로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 날 찾기도 그렇고
그 때는 그녀도 다른 일로도 바빴기에 .
그녀가 떠나고 내 가방을 열어보니 잡지를 찢어서 둘둘 만 말린 망고 두 봉지였다.
망고는 필리핀의 특산물이다.
달고 시고 쫄깃쫄깃한.....아주 맛있는 건과일 망고.
식사시간마다 젖은 망고를 아주 맛있게 퍼 먹던 내 모습을 보고 빙그레~웃던 그녀였다.
주방에 아무도 없을 때 망고쥬스를 만들어서 얼음까지 동동 띄워서 주던 그녀였다.
망고를 너무 맛있게 잘 먹던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린 망고 두 봉지를 살 돈이면 그녀가족의 한끼 반찬을 살 수 있을건데.
뜻밖의 선물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녀들은 남에게 선물을 줄만큼 넉넉하지가 않다.
그 동네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은 생활이지만 그래도 어렵다.
그런데도 떠나고나면 그만인 이국아줌마인 나한테 선물을 주다니....
비행기에 앉아서 그 선물을 소중하게 다시 매만져봤다.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 빌며 이륙하던 비행기에서 저 아래로 점점 멀어지던 뚜게가라오를 눈에 담았다.
그녀의 따스한 미소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