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대형마트 의무휴업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558

일탈4 -오색 물결에 몸담고 오다-


BY 이안 2011-11-02

드디어 말로만 듣던 내장산 단풍구경을 다녀왔다. 절반은 사람구경이었다 해도

무색할 만큼 인피가 장난이 아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다가오는 오색물결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타버린 갈색,

타오르는 붉은색, 수줍은 주황빛깔, 해맑은 노란색, 청청한 파란색이 어우러져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내장산 단풍 단풍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단풍이 거기서 거기지 했다. 헌데 오색

물결은 내가 흔히 보아왔던 몇 백 미터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같은 색깔인 듯

하면서도 하나하나가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 단풍나무 길이 한없이

이어져있다.

 

몇 시간을 걸어도 단풍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했다. 2시간 정도를

걷고도 다 돌아보지 못하고 나와야 할 만큼 가도 가도 끝이 없다. 2시간 30분 가량을

달려온 보람이 운전으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카레밥을 해 먹고 집을 나섰다. 그때만 해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본격적으로 내릴 비는 아니지만 여행길에 비가 오는 건 좀 반갑지 않다.

그래도 떠남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진입해 내리 달렸다. 도로는 한산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차를

보며 언니는 비가 와서 한산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차를 끌고

다녀본 경험이 언니보다 많은 나는 생각이 달랐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길만 길은 아니다. 수없이 많은 도로에서 내장산을 향해

사람들이 한산한 길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떠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내장산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한곳으로 모여든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게다가 일정을 포기할 만큼

비가 주룩주룩 오는 것도 아니다.

 

두 여잔 차에 올라타서부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게 난 편하다. 난 운전기사다. 게다가 난 혼자 운전하며 여행하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그걸 즐기는 편이다. 애써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우린 일행이면서도 다른

팀이다. 따로 또 같이 움직인다.

 

간간히 언니가 오가와에게 한국어 단어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럴 때만 와글와글한

일본어 속에서 우리말이 툭 불거져 내 귀에 들어온다.

 

\'텃새\'라는 말을 설명한다. 필기구를 꺼내 써서 보여주기까지 한다. 아마도 정년퇴직

후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형부 때문에 시골에 땅을 사놓은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내려오기로 작정을 했으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나보다.

 

일본에도 텃새가 있냐고 언니가 우리말로 묻는다. 그녀는 없다고 말한다.

 

몇 번 언니는 그런 식으로 우리말 단어를 그녀에게 가르친다. 그럴 때마다 오가와

여사는 언니의 발음을 따라서 여러 번 반복한다.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전날 함께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여러 번 외워서 익혀놓아도 금방 잊힌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만만치 않다. 내가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는다.

서툴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거의 전달하는 수준이다. 한국어라곤 한마디도 할

줄 몰랐던 60이 넘은 일본인 여자가 3년 만에 일군 실력으로는 대단한 거다.

 

오전엔 한국어 강습소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오후엔 국제교류센터 같은 곳에서

일본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수업 준비를 하고 나면 2시 정도

된다고 했다. 보통은 그 시간이 그녀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라고 했다. 10시면

잠자리로 가는 나보다도 더 열심히 산다. 점점 그녀의 열정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그녀의 열정에 내 마음이 움직인다. 다소 편안해진 마음속으로 그녀가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온다. 나도 밀어내지 않는다.

 

고창 분기점에서 빠져나가라는 것을 고창 톨게이트로 착각을 했다. 그렇다고 다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럴 땐 느낌을 따라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내장산이 장성

근처에서 들어가게 돼 있었다. 그 감을 믿고 장성쪽으로 차를 몰았다. 언닌 염려가

되는 모양이다. 형부차에 있는 네비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보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네비는 사양이다. 게다가 여행하면서 겪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걱정 같은 건

다가오지도 않는다. 길은 뚫려 있고 서로 다 닿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좀 돌아가면 어때서. 그게 여행의 묘민데. 그럴 때 뜻하지 않게 주어지는 색다른 맛이

얼마나 달콤한데. 그걸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행하면서 네비를 달고

다닌다는 게 내 지론이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무작정 네비가 지시하는 대로 달려서 목적지만 얼른 돌아보고

오는 건 내게 여행이 아니다. 가다가 바닷가에 차를 세워놓고 할머니들 틈새에서

굴을 따기도 하고, 절 구경을 갔다가 하룻밤 묵고 올 수도 있는 게 여행이다.

친구와 여행하면서 얻은 게 있다면 바로 그런 뜻하지 않은 일들이 여행을 즐겁고

품격 있게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오래오래 기억되는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다. 그래서 난 언니와 달리 아무렇지도 않다.

 

구불구불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언니는 또 걱정을 내비춘다. 난 내장산을 넘고 있을

거라고 안심을 시킨다. 그러면서 바로 이게 여행이라는 말도 한다.

 

산 양편으로 어우러진 나무들이 여전히 파랗다. 해마다 내가 매스컴에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내장산 단풍의 절정은 11월 첫째 주 아니면 둘째 주였다. 헌데 10

말이다. 일찍 와서 제대로 된 단풍을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가온다.

일본엔 기온변화가 심하지 않아서 단풍이 밍밍하다는데, 이왕이면 오색의 아름다운

색깔로 한국의 아름다운 인상을 하나 더 보태주고 싶다. 그래서인지 단풍이 안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아쉬움이 자꾸 끼어든다.

 

산길을 내려오자 지천에 감이 널려 있다. 길가 가판대에도 산비탈에 심어놓은

감나무에도 주황빛이 얹힌 노란색 감이 한가득이다. 유달리 감을 좋아하는 내 눈에

감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언니도 마차가지인 모양이다. 내장산까지 가는 동안 감만

나타나면 감이다를 연신 내뱉는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내장산 입구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길거리까지 점령한

차들이 빼곡히 눈에 들어온다. 붐비는 사람들도 한가득 들어온다.

 

임시로 만든 듯한 언덕빼기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리는 내장산 입구로 향했다.

단풍보다도 사람들의 옷차림이 더 알록달록했다. 언니는 오가와 여사와 함께 걸어서

천천히 뒤따라온다. 난 입구 매표소로 가 9000원을 주고 입장권을 산다.

 

천천히 걸어서 단풍나무 길로 들어섰다. 단풍이다! 내 눈은 어리둥절하다.

내 입은 탄성을 지르기에 바쁘다. 오는 동안 마음 속에 자리잡았던 염려는 들어서는

순간 달아나버렸다. 한껏 뽐내며 이어진 단풍나무 터널 속에 갇혀서도 내 오감은

행복했다.

 

오가와 여사의 입에서도 감탄사가 새어나온다. 그러더니 사진을 찍자며 내 팔을

잡아끈다. 난 내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녀의 제안을 뿌리친다.

헌데 그녀가 놔주지 않는다. 난 끝까지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에게 이끌려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그녀와 나란히 선다. 언니의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길을 따라 걷는 게 아니다. 단풍을 보면서 사람 뒤꼭지에 끌려

그냥 따라가고 있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사람들도 끊임없이

밀려간다. 개미들의 행렬같다.

 

가다가 서서 둘을 기다린다. 딴에는 천천히 걷고 있는데도 두 사람은 번번이 뒤쳐진다.

10년 째 거의 매일 걷기운동을 해오고 있는 내게 내 걸음은 걸음마 수준이다.

그런데도 번번이 간격이 벌어진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속도가 기어오는 수준이다.

단풍나무에 취한 건지 이야기에 취한 건지 알 수가 없다.

 

혼자 걷는 게 싫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뒤따라오는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걸을 수도 있었다.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할 때도 있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도 즐기는 내게 그런 건 낯설지 않다. 다른 사람들 이목을 부담스럽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난 걷기와 서서 기다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산가족이 됐다 만났다 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간혹 만남의 자리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럴 땐 오가와 여사가 꼭 날 챙긴다. 사진 속에 낯선 여자가 되어 있는 나와 만나기

싫어서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내가 그녀의 잡아끎에 이끌려 카메라 앞에 선다.

 

왜 사진 속의 난 내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거울 속 내 모습에 익숙해진

탓인가 보다. 거울 속의 난 그냥 내가 아니니까 말이다. 오히려 사진 속의 내가 정말

나인데도 난 늘 거꾸로 받아들인다.

 

내장사 대웅전 앞에는 축원이 담긴 연등이 행렬을 이루고 걸려있다.

그리고 고풍스런 한옥이 곱게 물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사이로 고즈넉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카메라를 꺼내 나도 찍고 한옥도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하며 찍는다.

유물이 되어가는 우리네 가옥이다. 그래서 이젠 고궁이나 절, 서원에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다. 아쉽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1시간 정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