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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2 -손님맞이 준비-


BY 이안 2011-10-31

아침에 전화가 왔다. 언니다. 인천에서 540분에 출발한단다. 그곳 터미널에서 좀

일찍 만나 저녁을 먹고 출발할 거라며 이것저것 사지 말란다. 내가 부산이라도

떨까봐 미리 단속한다. 말은 그러마고 해 놓고 난 시장에 가서 과일과 오이 등을 사다

씻어서 쟁인다. 손님이 온다는데 손 놓고 있는 것도 그렇다.

 

오후에는 온 집을 구석구석 청소한다. 바닥에 얼룩이 있는 정도의 더러운 것은

참는데 물건이 여기저기 뒹구는 지저분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쓸고 닦고면

충분할 거 같다. 내 집에 오는 손님에게 내 집이 편안한 쉼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릇도 수저도 다시 꺼내 세제로 닦는다. 혼자 살기 때문에

아무래도 소홀할 수가 있다. 대충 물로만 씻어서 놓을 때가 많다. 그래서 손님이

온다면 사용할 그릇을 꺼내 세제로 다시 닦는 것도 내겐 손님맞이의 필수 과정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내장산까지 가는 빠른 길도 찾아본다. 네비가 없으니 그 수고도

필수항목이다.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고 검색을 누른다. 작업 중이라는 표시가

나타나더니 이내 요청한 자료가 화면에 가득 뜬다. 왼쪽에는 네비가 해줄 말이

오른쪽에는 지도가 보인다. 것도 출력해 놓는다.

 

그런 부산을 떨고 나니 저녁 먹고 뮤직뱅크 보다가 나설 만큼의 여유가 생긴다.

카레용 고기를 사려면 좀 일찍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원래 내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일찍 출발해야 한다.

 

TV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의 신나는 노래와 춤판이 이어지고 있다. 미적미적하다

전원을 끈다. 좀 여유 있게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좀 여유 있게 도착해서 내가

기다려야 한다. 예의나 배려심이 특별한 민족인 일본인이 함께란다. 그 여자에게

한국인에게도 예의나 배려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아니 것보다는

여유 있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이 그 패를 선택한다.

 

내게 여유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적대다 허둥지둥 떠나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이

급하지 않을 만큼, 짜증나지 않을 만큼 시간이 살짝 남아도는 것이다. 여행을 갈 때도

이건 어김없이 작용한다. 그런 때도 내게 여유는 여행지의 사정에 따라서 밥을 해

먹고 집안을 찬찬히 살피고 떠날 수 있는 그 정도의 시간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는 시간도 상황에 따라 때론 4, 때론 5, 때론 6시로 그렇게

변화무쌍하다. 그런 내가 뮤뱅 때문에 미적댈 리는 없다.

 

2시간 거리니 740분 정도면 도착할 거 같다. 하나로마트에 가서 간단히 장을 보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720, 20여분의 시간이 있다. 난 하차장에서 살짝 비킨 곳에

차를 정차시키고 눈을 감는다.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온다. 일본인 여자 생각도,

언니 생각도, 그리고 내일 다녀올 하루치기 여행도 생각해본다. 왼갖 생각이 머리도

꼬리도 없이 다가왔다 사라지길 서너 번. 문득 출퇴근 시간대와 맞물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밀렸을지도 모른다.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어디쯤 오는냐고 물었더니

다 왔단다. 밀리진 않은 모양이다. 전화를 끊고 다시 눈을 감는다. 아련한 느낌이

다가온다. 참 낯설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입구를 바라본다. 차 한 대가 들어온다.

 

나는 재빨리 차 안을 살핀다. 행여 언니가 보일까 해서다. 인천에서 오는 차라는

보장도 없는데 시간에 들어서는 차다보니 본능에 가깝게 내 시선이 움직인다.

 

창으로 사람 서너 명이 눈에 들어온다. 반대쪽도 있으니 몇 명 더 늘어나겠지.

예전 차가 많지 않았던 때 생각이 떠오른다. 그땐 차 가진 사람보다 차 없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버스도 늘 만원이었다. 자리 잡기 쟁탈전도 벌어졌다.

기싸움도 간혹 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버스회사 걱정이 될 만큼 차가 헐렁하다.

세월이 흐른 만큼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나도 차를 몰고 다니고,

너도 나도 차를 몰고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수업시간 선생님으로부터 백억 달러 수출을 꿈꾸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국에는 한 집에 차가 식구 수대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득히 먼 나라

이야기라고 부러워했던 때에 비하면 미꾸라지 용 된 거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