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랑을 따라 억새가 익어간다.
잔잔한 바람에도 흔들흔들 꼭 건달처럼 온 몸을 흔들고 서 있다.
이른 아침 이슬 내린 마당에 떽떼그르르.....
노오란 은행알이 툭~툭~
마지막 인사인양 은행잎을 잽싸게 어루만지며 떨어지고
낮은데로 낮은데로 구르기를 재주 넘듯 한다.
단풍나무 가지에서는 빠알간 프로펠러가 익는다
또 한 계절이 바뀌고 있다.
가마솥도 찜통도 다 식었다.
문이란 문은 다 닫던지 다 열던지 헉헉대며 살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소매 긴 옷을 찾아 입었고 바람이 싫어져 선풍기는 그림자까지 감추어 버렸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싸늘한 기운에 자다가도 이불을 끌어당겨 덮게 만든다.
이 맘 때쯤에는 도지는 계절병.
온 집안을 홀딱 뒤집어 놓는 불치병인거다.
온 여름 내내 덥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대충대충 덮어두고 짱박아두고
둘둘 말아서 다락방으로 세탁장으로 감춰 뒀던 묵은 살림들을 홀까닥 꺼집어 냈다.
여름 빨래야 날마다 하는 빨래지만 당장 안 급한 살림정리들을 미루고 또 미뤄뒀다.
계절 옷 정리서부터 크고작은 선물상자들이며 신발장정리까지
해도해도 끝이 안 난다.
야간작업까지 하느라 눈이 감길 지경까지 중노동인데
남편은 손도 까딱 안한다.
안방 문갑을 꺼내고 서랍장을 해부하고 애들방 문갑까지 다 꺼내도록 서재에서 고개도 안 내민다.
계절마다 한번 사나흘씩은 난리법석을 떠는 아내가 영 못마땅한게다.
그냥 그 자리에 두고 살아도 세금 안 붙고 아프다고 아우성치지도 않는 살림들을
홀까닥 뒤집고 먼지 뒤집어 써 가며 요란을 떠는 아내가 너무한다 싶은거지...ㅋㅋㅋ
그런데 내 생각은 같은 살림살이고 같은 공간이지만 위치를 바꾸고
놔 두는 방식에 변화를 주면 한 몇달간은 새로운 분위기에서 살아갈 수 있는게 여간 즐겁지 않다.
눈에 안 보이는 구석진 자리의 먼지도 한바가지씩 걷어낼 수 있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그러면서 자주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도 하게 되고.
언제 놔 뒀는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찾아 냈을 때는 초등학교 때 소풍에서 보물찾기라도 한 것처럼
혼자서 신나고 혼자서 흐뭇하기까지 한 이 재미를 왜 싫어하는지....
서랍장도 문갑도 다 나혼자 밀고 당기며 옮기고 장식장에 장롱까지도 그리한다.
정 무거워 옮기기가 벅차면 애교 섞어가며 도움을 청하는데 마지못해 거들어 준다.
제발 좀 그냥 살잔다.ㅋㅋㅋㅋ
같은 방에서라도 위치를 바꾸고 다른 방으로 옮기며 집안 분위기가 확~달라졌을 때는
남편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몇달에 한번씩 낑낑거리고 거실이며 안방이 먼지범벅에 난장판이 되는 걸 싫어할 뿐이란다.
익숙한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살던 방식을 고수하며 살자주의의 남편과 달리 나는 변화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변덕스러운건 아니다.
큰 돈을 들여 새 물건을 사자는 것도 아니고 있던 물건을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일 뿐.
가령 가로본능의 책꽂이를 세로로 바꾼다던가
화장대 위 스킨이랑 영양크림 같은 기초화장품과 샘플등을 색이 고운 작은 상자에
종류별로 분류해서 담아 둔다던가
침대 옆 창가에 갈색계통의 좀 화려한 커텐을 갈아 단다던가
전등갓을 집에 있던 한지등으로 교환하는 그런 일 등을 하는 변화.
그런데 그런 작은 변화가 결코 작은게 아니다.
힘들기는 하지만 한 사나흘 고생한 보람은 분명히 크게 다가온다.
침실 전용 커텐이 바뀌면 잠자리가 바뀐다.
조금 더 로멘틱???ㅎㅎㅎㅎ
침대 메트를 갈고 배겟닢을 갈면서 옅은 향수를 한 두 방울 뿌려 두면 분위기가 훨씬 달콤하다.
후각이 민감하고 발달한 남편은 아주 작은 변화도 금방 알아차리고 싱긋~웃어준다.
여름 내내 칙칙하게 서 있던 책장을 가로로 길게 눕혀 놓으니 안방이 훨씬 높게 보여서 좋다.
책장은 가로가 짧고 세로가 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 버리니 마음이 편안한 느낌이다.
아이들방의 한지 파티션을 안방에 들여 와서 차탁 옆에 두니 그 분위기도 고향집 같다.
남편은 서재에서 자기 일에 충실하느라 밖의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이방 저방 옮겨다니는 아내의 쿵쾅대는 발걸음에 결코 평화롭지는 못하다.
아내가 계절마다 해대는 분위기변화에는 토를 달거나 별 다른 간섭은 않는데 그렇다고 크게 도와주지도 않는다.
자칫 잘못 거들었다가는 돈 들일 일을 하잘까 봐 꽁꽁 숨는거겠지.ㅋㅋㅋㅋ
이번 대 공사는 어제 시작했으니 이번 주말까지는 해야 할 것 같다.
하루에 한방씩 하기로 했다.
더 욕심내서 많이 했다가는 허리에 무리도 가고 후유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주말에 둘째가 내려온다니 짜잔~~하고 놀래켜야겠다.
잘했다고 칭찬해 줄까?
엄마 또 힘 좀 쓰셨네요~~그러고 말까?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