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 왜 불러~!!
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
외국에서 추석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일 뿐이다.
그러나 그냥 보내기엔 여전히 무언가 아쉽다.
대청마루에서부터 멍석이 두 개가 깔린 마당까지 남자들만
서열대로 줄지어 서서 차례를 지내던 어린 시절,,,,,
코 흘리개 꼬맹이 녀석들까지 꼬추 달린 유세하며 절을 할 때마다
왜? 왜 여자는 안돼? 반항심에 슬그머니 꽁무니에 붙어 절을 하곤 했다.
뒤늦게 발견한 엄마 손에 끌려 나올 때면
집안 어른들은 흠흠…. 헛기침 소리 두어 번 내면서
‘저 지지배는 커서 뭐가 될라 카노” 하시던
그 일도 이젠 추억이 되었다.
“니 내일 제삿밥 먹으러
외국에서 명절 아침 뉴스만 봐도 목이 메이는 날,
차례 지낸 밥 먹으러 오라는 이 한 마디는
액면가 100 만원짜리 복권 당첨의 기쁨에 맞먹는다.
홍홍!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콧노래가 절로 났다.
“언니! 내일 차례 끝나면 점심 먹으러 와~”
흐흐….
“나, 벌써 점심 약속은 했는데 저녁에 가면 안될까?”
“응, 맘대로 해~”
얼쑤! 덩더쿵!
추석날 아침,
꼬릿꼬릿한 마른 오징어 우린 국물에 쇠고기에 다시마, 두부, 무 넣고 끓인
경북 대구지방의 탕국 특유의 냄새가 현관서부터 진동을 한다.
식탁 위엔, 조기, 각종 전, 찜 닭, 산적, 색색의 나물….
“언니네 조상님들, 뵌 적은 없습니다만 감사합니대이~~ “
간단히 기도하고 전투적인 자세로 식사에 돌입했다.
“야야~~ 혼자 시장 봐서 차례 준비하느라 어제 종일 서 있었더니
허리가 좀 아프다. 소파에 누울 테니까 너그는 많이 먹으래이~”
“그려 언닌 푹 쉬어! 언니 몫까지 내가 다 먹어 줄테니 걱정 말구...”
언니는 전기찜질기를 켜 놓고 끙끙대며 누웠다. 아픈 걸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고
설거지라도 해주고 가야지…. 하면서 주방으로 들어 갔다.
그랬다. 설거지를 시작했는데….
프라이팬이며 솥, 냄비, 그릇들이 보인다.
씻은 그릇들이 물 빠질 동안 가스레인지 주변 기름 때를 닦는 다는 것이
찬장으로 옮겨 가고, 그릇 정리만 하려고 했는데 바닥에 먼지가 보인다.
수세미에 트리오 묻혀 닦고 보니 옆에 냉장고 문짝이 얼룩얼룩하다.
문짝만 닦자... 그런데 또 문틈에 먼지가 보인다.
문틈을 닦으려니 문을 열지 않을 수가 없다.
….
그 곁에 김치냉장고…. 다시 주방 구석….
오븐….. 쓰레기통 까지 닦고 나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언니!! 파는 언제 사둔 거야? 이건 시들었고 고추는..... 레몬은..... 버려도 돼?“
언니는 거실 바닥에 누워서 내가 꺼내어 소리치는 족족 ‘내 삐리라~’를 반복하고
걸레며 야채, 플라스틱 통까지 이것도 저것도 버리다 보니
어느새 큰 쓰레기 봉투가 두 개를 넘고 있었다.
자잘한 봉지에 담아 구석구석 박혀 있는 것들까지 몽땅 끄집어 내어
마른 곡물들은 투명한 병들에 담고 급한 것부터 눈에 잘 보이도록 모든 정리를 끝냈다.
이젠 집에 가야겠다고 나서는 우릴 배웅하려고 일어나던 언니가
거짓말 처럼 꿈쩍도 못했다. 장난인 줄 알고 일으키자
비명을 지른다.
부랴 부랴
차 뒷 자석에 눕혀 한 시간 거리의 병원으로 응급후송을 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저녁 초대를 한 후배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흔쾌히 함께 오란다.
저녁을 먹인 다음 언니네 집까지 데려다 주고
이제 임무 끝! 하는데 언니의 전화벨이 울린다.
전날 구입한 침대 매트리스가 하필 그 시간에 도착했단다. 그 야밤에…
남편이랑 낑낑대며 12층까지 옮겨주며 나는 또 투덜댔다.
“언니@! 오늘 우리 안불렀음 어쩔뻔 했어?\"
\"엉금 엉금 기어서 전화를 했겠지\"
\"누구한테?
\"너한테.....다행히 오늘 밥이라도 먹인 후라 내가 좀 덜 미안타!\"
헐!
밥 한 그릇 먹여 놓고 집안 일거리 겨우 끝냈더니
갑자기 바닥에 드러 누워 ...엠뷸런스가 되어 병원 다녀왔지
저녁까지 근사하게 얻어 먹였더니 이번엔
언니 오늘 날 잡았지?
.......... 궁시렁 궁시렁........
언니는 웃음을 참느라 오줌을 지릴 지경이란다. 허리가 울려서 더 아프다며
‘야~ 제발 웃기지 마! 웃기지 마!’ 손사레를 치면서도 참을 수가 없어
벽을 잡고 서서 킬킬대는 그 모양이 더 웃겨 나는 벽을 두드리며 웃어제꼈다.
그런 우릴 본 남편은 어이가 없어서 또 웃고…
“언니@!! 앞으로 제삿밥 먹으라고 부르지 맛! ~ “
“야야~~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 부를끼다. 니 같으면 안 부르겠나.”
흥!
*PS
세월이 바뀌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여자들의
허리심, 뱃심, 팔뚝심, 인내심을 먹고 남자들이 무작정 행복한 대한민국의 명절..
올 명절도 고생 ‘마이’ 하셨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