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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아줌마, 그녀와의 운명적인 만남


BY 이클 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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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한집건너 옆집에 과부 아줌시가 이사 왔어요.

늦잠이 게으름뱅이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날은 주말이었고, 난 전날까지 삶에 허덕이며 지쳐있었으니까요.

그 날 만큼은 게으름뱅이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주말아침의 달콤한 늦잠은 아침을 거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죠.

핸드폰의 모닝콜까지 일찌감치 꺼논 나에게 아침잠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딩동! 딩동! 딩동!

울리는 현관 벨 소리에

난 망설였습니다. 택배 아저씨는 아닐 테고

모른 척 할까!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더 울리는 벨소리는 어딘지 구원의 벨소리 같더라구요. 다만 나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건 벨소리도, 달아난 잠도 아닌  벌거벗고 허둥대며 옷을 찾는  나의 알몸을 당당하게 훔쳐볼 앞동의 같은 라인 날라리 뚱녀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거실로 살금살금 기어가  베란다의 블라인드를 재빨리 내리고 옷을 둘처입고 현관으로 달려갔죠.

 

누구세요?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아-! 그녀가 서있었습니다.

살가운 바람을 따라 현관을 통해 들어오는 달큰한 살내음은 그녀의 피부빛을 닮아 있었습니다.

밝은 햇살앞에 서있는 그녀! 

그녀의 머리카락 실루엣을 흐트리는것은  새벽에 비구름을 몰고갔던 시원한 바람이었지만, 나의 마음을 흐트려버린것은 바람결에 스며드는 그녀의 향기였던 것입니다.

 

에테르! 

그녀의 등뒤에서 비춰지는 햇살보다도 환한 웃음이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녀의 미소가.. 향기가.... 잠에 취해있던 나를 깨우는 에테르였습니다.

한 덩이의 빵을 위해 전전날과 전날과 그리고 내일의 의무감에 지쳐버린 나의 마비된 감각을 깨우는 그녀의 커다랗고 검은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런 목선에서  어깨선까지 이어지는 쇄골의 우아함과 부드러운 턱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한여름 느티나무그늘속의 시원한 바람이랄까!

졸음으로 처진 어깨와 눈꺼풀을  단번에 깨우는 그녀의 서늘한 눈매도 물론 잊혀지질 않습니다.

기껏해야 난 고개를 숙이고 졸리를 닮은 그녀의 가슴속 브래지어가 비치는 투명한 블라우스 단추자락만 멀뚱히 쳐다보며 눈알을 굴리는 수밖에...


만약에 말입니다.

그녀에게 아줌마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이쁘시네요 라고 말하던가 나이를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젊고 아름다우싶니다.라고 말한다면

난 단호히 말하겠습니다.

그런 말은 그녀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고많은 말들중에 어떻게 그런 싸구려 단어로 그녀를 포장 할 수있겠습니까!

솔직히 음모라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구태의연하게 아름다움과 젊음을 동일시할까요?

아줌마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이쁘다는 말속에는  고작 젊음에 대한 콤플렉스가 우회적으로 섞여있을 터인데... 

이건 분명 에스테틱 산업의 거대 카르텔이 요구하는 음흉하고 탐욕스런 유행어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들의 들척지근한 사탕발림에 아줌마들의 마음이 설왕설래 한다면

보톡스로 띵띵해진 얼굴이 푸석하고 주름진 얼굴로 변할까봐 불안에 떠는 그녀들은  백설공주의 계모처럼  끊임없이 거울에게 말해야 겠지요. 얼마나 젊고 이뻐보이는가!

 



아줌마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이쁘시네요!

그런 말은 루키즘에 빠져버린 이시대의 여인네들의 지갑을, 신용카드를 열게하는 구취가 진동하는 싸구려 마술사의  트릭입니다.

난 그녀가 아줌마라고 여길 만큼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남정네들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을까?

자신의 미모를 끊임없이 확인 받고 살아온 그녀의 삶은 아름다운 선순환입니다.

눈가의 가느다란 실주름조차, 살짝 처진 가슴조차 자기 확신의 경지에 이른 그녀의 쾌활함을  무너뜨릴 순 없죠.

질투의 시선조차 부드러운 미소로 감싸 안을  너그러운 미소엔 확실히 젊은 여자들의 경계를 뛰어넘는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젊은 여인들이여!

길거리 남정네들의 싸구려 시선도 모자라  끊임없이 쇼윈도를 힐긋거리며 마네킹앞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차가운 유리창을 통해서 확인받고 싶어 한다면 

젊은 그대들의 불안하고  변덕스런  나르시즘은 언젠가 깨져버릴 마네킹입니다.

그리고 그 추억을 갈망하는 보톡스 부대가 곧 그대들의 초라한 자화상이 되는 날도  얼마 남지 않다는 걸 잊지 마시길!

 

 


어쨓든

예쁜 막내이모를 바라보는 사춘기 소년의 숨겨진 연정을 타오르게 하는 남자들의 영원한 성적 판타지 소위 막내이모 신드롬(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변종이요, 롤리타 신드롬의 반대입니다.)

에 빠진 난 그녀의 쾌활한 미소에 틱장애에 빠진 소년처럼 힐끔 힐끔  쳐다볼 뿐 이었지요!


어머! 어머! 미안해  총각! 잠을 깨워서 미안해  어떡하지!


무슨 일이죠?

뚱한 대답과 함께 수줍은 시선을 조금씩 흘리자 그녀는 내가 구원군이라는 것을 확신한 듯 자기방 벽에 시계를 달려고 하는데 못질을 부탁할 수 있는냐고 물어봅니다.


음! 

옆집의 독실한 크리스챤 안현수군!

그대가 새벽주일예배에 나간동안 그녀의 도움이 한집건너 나에게로 왔구려!

이런 황금의 찬스를 놓친 그대는 하나님을 원망할지언정  나를 원망하지 말지어라!

난 여기서 그대의 하나님을 찬양하리! 아멘!

 

망설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기사도정신에 총각정신에 안현수의 기독교봉사정신까지 덤으로 무장한 난 마지막으로 망치로 중무장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신림동 고시촌 언덕빼기 고시생의 궁하디 궁한 종아리를 원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운 여름날 두툼한 청바지로 감춰버리면 그만이니까요.  돈키호테처럼!


탕! 탕! 탕!

위태롭게 세발의자에 서서  어설프게 망치질하는 나의 모습이 불안 했는지 우리의 예쁜이모는 살며시 나의 다리를 잡아줍니다.

순식간이었어요. 

아이쿠!

못대신 쳐버린 엄지손가락은 나를 원망하지 말라!

물론 대담하고 진솔한 그녀의 친절이 잘못은 아닙니다!

나의 양쪽다리의 힘을 팔뚝이 아닌 사타구니로만 보내려 하는 나의 주책이 잘못이지요.

또다시 다리가 힘없이 무너지려는 순간 나는 이를 악물고  속으로 외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아줌마!  이러면 안 됩니다. 아줌마!

난 망치로 나의 본능을 대신해서 힘껏 못대가리를 내리칩니다.

본능이 요구하는 데로 화산처럼 격렬하게 솟아있는 주책없는 나의 본능을 때려죽이듯 망치는 못대가리에 불을 뿜으며 사정없이 벽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힘을 뽑아야 합니다.

탈진해야 합니다.

그녀는 나의 격한 행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더 세게  나의 종아리를  잡아 줍니다.

사고는 없었습니다.


커다란 악기케이스를 조심스럽게 옮기는 그녀가 서울시향 첼리스트라는 것은 그녀의 이삿짐이 말해 줬습니다.

각종 기념사진액자며 악보를 담은 박스를 옮기는 것은 그녀의 몫이지만 농짝 수평 맞춰주고 무거운 화분을 무려 8개나 옮기는 것은 나의 몫이었죠. 

땀에 전 나의 얼굴이 안쓰러웠는지 그녀가 음료수를 사러갔습니다. 

그사이 난 아까부터 노리고 있던 속옷상자(검정색브래지어가 살짝 삐져나온 상태)까지 기어이 뜯어내서 친절하게  옷장 속에 넣어주니  진한 현기증이 몰려옵니다.

박스상자속에 갇혀있던 그녀의 에테르가 나의 심장에 활력을 넣어 줍니다.

잠시 후 돌아온 그녀가 콜라를 건네주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어머!~ 아파보이네 어쩌지!

 

좀 쉬면됩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해!

저기 저 커다란 액자사진은 벽에 걸어야 될 것 같은데 지금 걸어 보겠습니다.

건너방 벽이 좋겠네요.

 

솔직히 말해 나는 그녀와 좀 더 시간을 보낼 궁리를 했죠.

 

아니야! 오늘은 여기까지 정리해도 훌륭해!

주말에 내가 염치없이 남의 시간을 많이 빼앗았지?

 

갑자기 그녀의 서늘한 손이 내 청바지 앞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은 것도 순간

두툼한 청바지가 지금껏 나의 주책을 감추고 있는데 그녀의 손이 들어오니 주책도 놀라고 그녀도 놀란 모양입니다.

본능적으로 그녀가 손을 빼자 나의 바지주머니에 남은 것은 삐죽이 나온  푸릇한 만원권짜리 지폐자락입니다.

지폐를 보는 순간 그게 날 불편하게 하더라고요.

정색하는 나의 고지식한 낯에다

 

여자 친구하고 맛있는 식사나 해! 내가 미안해서 그래!

 

그리곤 웃으며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자니

그제야 나는 주말의 달콤한 총각여행이  끝나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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