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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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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_송편_김장


BY 갑자기 2011-09-15

 

눈부시게 온 세상을 밝히려 준비하는 새벽, 채 밝지 않은 새벽에 아침 신문을 가지려 나갈 때마다 만나는 것은 엘리베이터 앞 빈 공간을 비추는 센서와 1층 계단에서부터 올라오는 공기의 흐름이다. 공기가 차갑다.

가을이 오고 있다.

난 아침밥을 짓기 전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늘 운동을 한다. 왕벚꽃나무의 노란 잎들이 봄에 폈던 화려한 꽃잎 보다 조금 적게 떨어져 있다. 소나무와 키 큰 나무 아래서 자라는 보랏빛 맥문동은 음지에서 낡아서 처연한 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미 나와 있는 이웃들이 제각기 온동기구에 매달려 숫자을 세고 있다.

내일 모레는 추석이다. 신문에는 송편을 포함한 여러 가지 추석 준비에 지면을 채우고 있다. \'송편\' 하면 제일 먼저, 고인이 되신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결혼한 첫해의 추석 전날 새색시로 시어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떡 반죽을 하였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아이를 낳는다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얼굴을 붉히며 열심히 빚었다. 그날 밤에 팔이 아파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하였다. 그 다음 날 추석 아침에 며느리로서 큰 일 한 것처럼 일찍이 시댁 대문으로 들어서는데, 어머님이 뛰어 나오시면서 내 손을 잡고 부엌 뒷문으로 인도하신다. 어머님은 검지 손가락을 당신의 입에 대고, 또 다른 한손으로 대바구니 속을 가리키신다. 어머나! 동글동글한 예쁜 송편은 하나도 없고 뒤죽박죽의 정체모를 떡들이 엉켜 있다. \'어머!, 어떻게 해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대바구니를 치우셨다.

가을이 깊어 간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이 가을바람 따라서 춤을 춘다. 길 옆 시멘드 바닥에 널려 있는 빨간 고추들이 몸을 뒤척인다. 김장 담그는 계절이 되었다. 결혼하여 첫 해 가을 시어머니의 말씀 따라 김치재료를 다듬고, 크기를 정해 주시면 고대로 썰고, 항아리도 닦고 하였다. 김장 담그는 일에 양념 맛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마치 자신이 중심인물인양 어머니의 만류도 듣지 않고, 겁 모르는 새아가는 총각같은 식모도 제쳐놓고, 채 썬 무, 파, 마늘, 고춧가루 등을 넣고, 김장 양념을 버무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보신 어머니는 두 손에 참기름을 발라 주셨다. 한참이나 신나게 버무린 양념을 절인 배추에 넣어 김장을 끝냈다.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두 손잔등이 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퇴근한 남편은 이것을 보고 어머니께 전화를 올렸다. 달려오신 어머니는 멘소리담을 발라주셨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고추와 마늘의 매운 독이 올라 화끈화끈 불을 지르는 듯 하였다. 어머니는 밤새 며느리의 양손을 찬물에 담그었다가 뺐다 하시면서 돌보아주셨다. 울듯 눈에 눈물을 참고 있는 며느리를 쳐다보는 시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보였다. 결혼 직전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림살이를 전혀 모르는 7남매의 막내딸로 자란, 둘째 며느리를 늘 감싸주고 덮어 주며 가르쳐 주셨다.

추석 명절, 그 아름다운 가을이 가고 있다.

지금은 내가 두 며느리의 시어미 자리에 서 있다.

시대가 바뀌어서 며느리를 불러 놓고 김장을 담그고 ,송편을 빚는 그런 생활은 점점 없어져 간다. 그저 간편하게 사다 먹고, 쉽게 ,바쁜 세상을 지내고 있다. 그러기에 가족간에 살뜰함, 따뜻함, 정다움, 애타는 마음, 그리움 같은 깊고도 넓은 정을 느낄 수가 없다.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한 쓸쓸함이 찾아온다. 조그마한 일에 행복해 지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삶의 순간들이 살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가을의 작은 추억들이 떠올라 생에 대한 용기와 사랑, 부드러움을 일깨워 준다.

이젠 계절에 맞추어 주변에 있는 분들의 도움보다, 자식들과 함께 하여 새로운 가정문화를 만들어야겠다. 그저 바라다보면서, 그저 쉽고도 편히, 그냥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만이, 최상이라 생각했던 마음을 버리고, 조금은 피해도 주고, 상처는 아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부딪치면서, 아파하고 위로하며 따스한 생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