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 때 나의 친정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하시다가 매몰사고로 사망하셨다.
일곱살짜리 기억의 용량은 너무 작다.
아버지라는 말과 아빠라는 말은 그 일곱살 이후로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부르지 못하는 호칭이었다.
그 후 결혼을 하니 시아버님이 계시고 또 시어머니가 나에게 새로운 가족관계가 생겼고, 호적을 보니 나의 본관도 시아버지의 본관에 그대로 전입되었다.
그로부터 이십여년이 지난 세월이 흐르니까 이젠 처음엔 아버님 아버님 이러다가 어느 날부터 아버지 아버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일곱살 이후로 단 한 번도 못 부른 그 아버지를 나는 전화로 찾아가서 아님 일부러라도 더 자주 사용했다. 아마 나도 무의식중에 친정 아버지의 부존재로 그로 인한 보상을 실컷 타 볼 욕심이 생겼는지 모른다. 말도 무뚝뚝하고, 거기다가 자타가 공인하는 살림치 며느리가 아무때나 아버지 아버지 했지만, 아버지도 딸이 없고 아들만 넷인 정말 아기자기한 맛이 없는 집안 분위기에 늘 사고뭉치 큰 며느리가 있었으니 심심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 내 생각이었다.
얼마 전 청천하늘에 날벼락같은 전화 한통화를 받았다. 할머니 집에 놀러간 울 딸이
\"엄마! 할아버지 암이 번져서 수술 하신대!\"
그러니까 암 수술을 네 번 하셨는데, 또 한다는 말에 이번에는 정말 어떻게 할 줄 몰랐다. 병원에서 환자들과 늘 부대끼던 나였다. 말이 그렇지 네번째 수술 하실때 나 다시는 수술 안 할거다. 너무 아프다 이 말씀을 세번이나 하셨는데. 질긴 생명을 자랑하듯, 아버지의 몸안에선 여전히 잘 사는 그 암세포들을 또 다시 제거하는 수술을 하신다는 전화에 그냥 멍청하게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집안에 늘 부지런히 움직이셨는데, 좋다는 약초를 다 구별하시고, 당신 손수 요리도 하시고 늘 바쁘게 사신분인데, 그런 분이 울 아버지인데, 누구에게 한 번도 폐 끼친적없고, 법없어도 살 분이리고 주위에 늘 친구들이 전화로 직접 찾아 오셔서 사람좋아 하신 분인데. 왜 하필이면 암수술을 다섯 번이나 하게 하는지 ,,,,
정신 차리고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하신다.
아이고 아버지 제가 뭐하는 사람이예요? 그런 건 더욱 저하고 의논하셔야지요. 언제 수슬날짜 인가요?
아버진 내 많은 질문에 단 한 번 말씀하셨다.
\" 니 바쁘잖어..누가 애길했디야?\'
지금 누가 알려줬냐는 말씀에 자식한테 부담 주지않고, 조용히 수술받고 일처리 할 생각이셨나보다. 순간 그 단 한마디 말씀에 울컥 목구멍에 뭔가 걸려서 기침이 나왔다. 전화 통화하다가 내 기침소리에 아버지가 니 감기걸렸냐? 이 말씀에 니도 건강 관리 잘해야 한다. 너무 신경쓰지말고 걱정말라는 말씀이시다.
수술 날 당당의사를 만났다. 병원에서 수없이 옆에서 들었던 수술진행 애길 울 아버지가 어떻게 수술진행을 할 것이며, 만일 수술하다가 워낙 큰 수술과정이기에 위험한 것도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정작 울 아버지 수술과정에 환자 보호자로서 확인 서명을 하고, 위의 내용을 잘 설명받고 잘 들었습니다라고 자필하라고 하고 내 사인을 쓸 때, 혹시 이 번 수술이 울 아버지 마지막일 것 같아 수술 안하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이렇게 착잡하고 기막힌 심정을 어디에 호소도 못하는데. 내 옆에 앉아계신 울 어머니 손을 꽉 잡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좀 더 신경을 쓰고 도리를 다 했으면 몇 번씩 수술을 안 하실텐데, 정말 어머니도 내 손을 꽉 잡았다. 이런 상황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기전 나는 다른 말을 어떤 말도 못했다.
그래도 뭔가 해야 했다. 그 동안 수술하신 후 나 다시는 수술을 안하신다는 말이 또 더올랐다. 아버지 수술후 좀 많이 아픕니다. 전에보다 더 아플겁니다. 아버지 아버지 그니께 견뎌 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손을 꽉 잡아드렸다. 아버지도 두 눈을 꼭 감으시고 입을 꽉 다무시더니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아버지 앞에서 도저히 눈물을 흘리지 못할 것 같아 등을 돌려 하늘을 쳐다 봤다. 아버지는 그렇게 수술실에 들어가시고 잠시후 수술대기중이라고 화면에 뜨더니 곧이어 화면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마취중입니다\"
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