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이용하는 대형마트에서 우편물이 왔다. 물론 그동안 사용한 포인트를 이용할 수 있는 상품권과 함께였다. 집 근처에 있음에도 농산물이 좀 더 싱싱하고 저렴한 하나로마트를 많이 이용하다보니, 6개월 동안 쌓인 포인트는 그닥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착실하게 책자를 보내줬다. 그곳에는 할인행사 상품 안내도 있었지만 나만을 위한 특별할인 상품목록도 있었다. 난 책자를 넘기며 내가 필요한 상품을 중심으로 할인폭이 비교적 큰 상품목록만 몇 개 추렸다. 그 중에는 바닥을 보이고 있는 올리브유도 있었다.
난 올리브유나 사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걸어서 마트로 갔다. 중앙통로를 걷다보니 올리브유가 5천 얼마의 가격표를 달고 진열되어 있는 게 눈에 띠었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그걸 쇼핑바구니에 담았다. 나만을 위한 특별할인이라고 내 이름까지 기록돼 있는 상품권과는 뭔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난 계산대로 가서 내 이름이 적힌 할인권을 내밀며 이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며 나를 진열대로 안내했다. 그녀가 안내한 진열대에는 보잘 것 없이 조그마한 병에 담긴 용량이 훨씬 작은 올리브유가 있었다. 가격은 7천 원대였다. 난 그걸 가지고 통로에 당당하게 진열돼 있는 올리브유가 있던 곳으로 갔다.
900㎖에 유효기간 3년인 올리브유는 5천 원대로 할인해서 팔면서, 나만을 위해 특별히 할인해주겠다는 올리브유는 500㎖에 7천 원대의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유효기간도 2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난 나를 따라온 직원에게 따졌다. 그녀도 할 말이 없는지 우물쭈물했다.
갑자기 우롱당한 느낌이 와락 다가왔다. 전국에 수십 개의 매장을 가지고 운영하는 대기업이 소비자인 나를 상대로 재고처리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난 올리브유를 제자리에 놓고 나왔다. 씁쓸했다. 50% 할인을 떠나서 기분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대기업이 이렇게 소비자를 기만해도 되냐고 난 직원에게 계산을 하면서 따져 물었다. 그녀도 적당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러니까 소비자가 알아서 잘 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만 남겼다. 그녀가 보기에도 행사가 적절하지 못해 보였던 것이다.
난 상품권을 그날로 모두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졌다. 가격이 비싸고 싸고를 떠나서 우롱당한다는 느낌을 주는 상품권에 더 이상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 이후 난 걸어서 몇 분이면 갈 거리에 마트가 있음에도 발걸음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때 그 느낌을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장이 열리는 날 시장 한 바퀴를 돌아 하나로마트를 들러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여 쓰고 있다.
며칠 전에는 하나로 마트에서 900㎖ 포도씨유를 두 병씩 묶어 하나 값에 팔기에 망설이지 않고 사들고 왔다. 가격이 그 마트보다 저렴한지 그런 건 따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 마트처럼 날 기만하지는 않으니까 그나마 믿음이 간다. 마음속에서 거부감도 일지 않았다.
믿음,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소비자를 생각하는 척, 소비자 개개인을 위한 특별할인권이라는 가면을 씌운 상품목록책자를 소비자에게 보낸다. 그 많은 돈을 들여가며 전국에 있는 소비자들에게도 나에게 보낸 우편물과 똑같은 책자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는 소비자들이 할인권을 쥐고 매장을 찾아주기를 바랐겠지.
그 중에 몇 명이 그들의 낚시 밥에 걸려들었을까? 걸려드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돈을 들여가며 책자를 만들어 보냈으리라. 낚시꾼이 미끼를 끼운 낚싯대를 던지면 걸려드는 물고기가 있듯이. 할인권을 들고 매장을 찾아간 나처럼 말이다.
난 앞으로 다시는 할인이라는 미끼를 물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왕이면 저렴한 가격에 사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있으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난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미끼를 던져도 쓸데없는 물건은 구입하지 않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나에게 경고를 보낸다. 그렇지 않으면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