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리집 달력의 오늘,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가 크게 그려져있었다.
\"내 생일\"
온 가족이 다 알아 볼수 있도록 유별나게 표시를 했다.
무심한 남편은 달력을 쳐다보지도 않은채 출근을 하고..
퇴근 전 까지 전화 한통없이 잠잠하면 공연히 심통이 나서
먼저 전화를 한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요?\"
\"모올라~. 토요일인가?\"
\"치, 됐어요\"
찰깍 전화를 끊어버린다.
조금있으면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 당신 생일이구먼. 다 알고있었지. 뭐 하고 싶노?\"
\"흥. 엎드려 절받기네. 마 됐어요\"
\"맛있는거 사줄꾸마. 뭐 묵고싶노\"
\"살이 쪄서 죽겠구먼. 암것도 안묵을라요\"
퇴근한 남편은 얼른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울 마누라 돈 되게 좋아하재. 자, 퍼뜩 받아래이\"
못이기는채 얼른 나꾸챈다.
아이들에게도 비열한 수법으로 내 생일을 꼭 챙긴다.
\"애들아, 저어기 상가에 엄마가 갖고싶은 거 있던데....\"
미리 그 가게 주인과 짜고 아이들이 선물 사러 오면 내가 찜해 놓은거
주라고 한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런 수법은 통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다 출가하고, 남편에게 뇌경색이 오면서 마눌 생일을 챙길 여유가 없다.
물론 나도 내 생일을 챙길 엄두도 내지 않는다.
언젠가 부터 우리 집 달력의 오늘은 깨끗하게 아무 표시가 없어졌다.
아이들도 길이 멀어 내 생일에는 내려오지 못하게 하니
며늘, 딸이 해마다 선물이나 돈을 보내온다.
오늘,
며늘이 축하 편지와 화장품을 보내왔다.
손녀의 -할머니 사랑해요- 라는 글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가장 흐뭇하다.
딸은 아이 키우느라 정신이 없는지 아직 잠잠하다.
남편에게 오늘 내 생일인데요?
들은척도 안한다.
하긴 마눌생일이 대순가, 말을 못해서 답답해 죽겠는데 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깟 미역국 안먹으면 한 살 덜 먹고 좋지 뭐.
귀찮아서 끓여먹기도 싫고.
서운 하지도, 섭섭하지도 않다.
아, 그런데 왜 이리 세월은 잘 가는지 ....
하는 일도 없이, 뚜렷이 해 놓은 일도 없이 어느 날,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건 아닐까.
영국의 극작가 \'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