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일년이 되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시어른들 눈치도 보이고 마음이 쓰였다. 친정어머니께서 니가 문제가 있냐고 하시면서 걱정스런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이유는 한가지였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았고 늘 생활패턴이 나와는 반대로여서 부딪칠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병원도 다녀봤었다.
난 아침에 눈뜨면 씻고 학원에 나가기 바빴고 남편은 주위를 돌보느라고 늘상 외박에 외출이었다.
정말 우연찮게 2년만에 아이가 생겼고 시집은 오래된 한옥을 수리하겠다고 학원을 정리하라고 하셨다.
제법 소솔하니 잘 되었는데 보증금에 권리금까지 받은 돈을 일원하나 빼지 않고 시어머님손에 전달해드렸다.
내게 용돈은 고사하고 한두어달 집에서 쉬는데 정말 어디든지 나가고 싶었다.
그 이유는 집에 있는 사람이 네명이었다.
시아버님..시어머님..시동생..
아 그 시동생..
나보다 5살 많은 시동생
고3때 정신분열을 일으켜 집 밖에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동네 세워둔 차들을 부수어서 물어주고 싫은 소리듣고..그래도 내 말을 잘 들어준 착한 시동생..
그리고 막내 시동생..
나보다 2살 많았던..
생활력있고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맡아 주었던 사람.
하지만 내가 결혼하고 바로 人死사고를 일으켜 쌈지돈이랑 사식 넣어주고 내가 빚쟁이가 되게 한 사람.
큰 시누..시숙..
있으나마한 사람들..지기네 동생이 사고를 일으켜 해결해햐 하는 상황이어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뒷집지고 있었던 사람들..당신 아버님이 돌아가셔도 친구하나 문상오지 않고 장례비로 쓰라고 100만원 조의금을 큰 생색내면서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나의 시어머니였던 분..
예전에 돈놀이도 하고 제법 큰 살림을 하셨다고 하는데..초복이 되자 장을 보러 가신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어라 생닭을 10마리나 사고 또 수박을 열통이나 사셨다..
입이 떡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왜 이렇게 사시냐고 물었더니.
\"나누어 먹어야지 너희 시누도 외삼촌도 올거고 이모들도 큰 집 작은 집도 돌려야 하고..\"
그렇게 산 것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두어군데 돌리고 결국에는 중복때쯤 울 친정이랑 나누어주었었다.
참기름을 짜도 대여섯병..쌀을 찧어와도 두어가마니...콩을 사도 촌에서 한포대기이상.
무엇을 해도 넉넉하게..
뒷 창고에 양파 감자 고구마 항상 재어 놓고 계셔야 마음이 편하셨던 분이었다..
치금 6년째 요양병원에 계신다.
처음 2년가까이 한달에 130만원씩...지금은 생활보호대상자이시다.
내가 빠져 나온 뒤 기초 대상자가 되셨다.
난 나쁘다..나쁜 며느리이다.
하지만 난 며느리이지 그 어머니의 자식이 아니다..
시아버님 5년 누워계셨고..이제 시어머님 6년째..
그 집 자식들이 4명이나 있지만 아무도 병원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이제 병원비를 내가 내지 않아도 된다.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