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창앞에 신록이 푸르다.
아침 산책을 나가는 사람들이 눈 앞에 보인다.
수녀님에게서 받아온 자료를 뒤적거리지만 구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음 작품을 위한 준비는 저만치 밀어두고 있다.
재소자들의 사연과 편지가 쌓여 있다.
그들의 사연을 읽으니 내가 겪은 일들은 그리 불행한 일은 아니었던것 같다.
남의 불행에 자신의 행복을 가늠한다는 것은 좋은 버릇이 아님을 안다.
오늘이 며칠이냐..오늘이 무슨 요일이냐..
하루에도 몇번씩 물어보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 마음이 답답해지지만 같은 대답을 반복해드린다.
이제 혼자의 외출은 불가능해진 아버지.
하루가 심심하기 그지없다.
기진맥진해서 누워 있는 언니.
도무지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
신경정신과에 예약을 하도록 권해본다.
혼자의 힘으로 되지 않을 경우는 의사의 힘을 빌릴수 밖에 없다.
너만 믿는다는 언니를 바라보며 내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지치지 않는 인생은 없건만 떨치고 일어서는 일은 자신의 몫이다.
좀더 젊은 나이에 세상에대한 적응력을 키울수 있었다면....
이제 모든것이 능력부족임을 본다.
살아온대로 살수만 있다면 그 또한 행운이다.
일산 사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MBC 구층에 식사가 맛이 있단다.
언니랑 아버지 모시고 나오라는 말을 한다.
어떤 것도 쉽게 결정을 못하는 언니를 겨우 데리고 나갔다.
아버지는 기분 전환이 되는 모양이었다.
친구 부부와 커피 프린스에 마주 앉았다.
커피 프린스 드라마 촬영 장소란다.
친구가 커피를 샀다.
친구의 남편과 아버지는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버지는 바둑을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바둑을 두지 못한다는 친구의 남편은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 했다.
네 친구도 혼자냐..
돌아와서 물으신다.
부부가 함께 왔잖아요.
아..그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고 남편이냐?
친구가 젊어보였나보다.
웃음이 없는 집안에서 오랫만에 웃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