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부끄러운 어버이날
매년 어버이날을 맞지만 한번도 어버이날에 친정 엄마를 뵈러 가지 않았다.
한달 후 음력 5월 8일이 엄마 생신이라 그때 가기 위해서다.
교통이 좋은 세상인데 어버이날에 가고 또 생신에 가도 되건만
바쁘다는 핑계로 겹쳐서 한번만 갔었다.
엄마는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시집을 왔다.
5남매의 장남에게 시집을 왔고 그해 시아버지의 상을 치루었다.
장남인 남편이 가장이 되었고 세명의 동생들을 차례로 혼사시켰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 맞벌이를 하였고
맏며느리로, 직장인으로, 아이엄마로
늘 몸과 마음이 바빴다.
엄마는 바쁜 딸을 이해하고 기다렸다.
그래도 사실은 성의만 있었다면 친정을 못갈 정도로 바쁘진 않았다.
명절에도 친정에 거의 가지 않았다.
나이차가 별로 없는 남편의 4형제는 명절을 아주 재미있게 보냈다.
술마시고, 화투놀이, 카드놀이, 바둑두기, 장기두기...
쉴새없이 이어지다 마지막엔 당구장으로 향한다.
동네의 당구장 주인에게는 명절마다 오는 4형제로 알려져 있단다.
며느리들은 종일 상차려다 바치며 수다로 시간을 보냈다.
그때도 친정에 가겠다고 선뜻 나서지 않았다.
큰며느리가 친정에 가겠다는데 계속 놀고 있을 시동생은 없을텐데 말이다.
명절이라고 인사차 방문하는 친척들은 시어머니께 맡겨도 되었을텐데 말이다.
엄마는 섭섭해도 참고 기다렸다.
딸들은 모두 친정 엄마에게 효도하는 일에 인색한가?
나는 왜 친정 엄마에게 얼굴 보여주는 것에 인색했던가?
힘들게 키워 시집 보낸후 일년에 기껏 두세번 볼수 있는 딸
엄마가 늘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닌데.
이제는 친정엄마가 그 자리에 없다.
미루어 미루어 친정가던 엄마 생일날도 이제는 없다.
지난 가을 친정 엄마가 몸져 누우셨다.
43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혼자 몸으로 5남매를 키운 엄마는
당당하고 강직한 분이셨다.
병원에서 말기암 판정을 내렸고 남은 기간은 겨우 6개월 정도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통이 있었을까
그러나 엄마는 가족에게도, 친구분들에게도 내색없이 생활하셨던 것이다.
남은 6개월... 우리 형제들은 번갈아 가며 전심전력 엄마의 간병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엄마에게 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내뜻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정말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내게 내린 신의 벌이었을까?
나는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하게 되었고
내가 퇴원하는 날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엄마의 병을 알고 3개월 그짧았던 날들
친정엄마는 이제 더 이상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