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간격으로 한국과 캐나다를 날아다닌 지난 달은
시차 적응이란 말이 사치스러웠을 만큼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밤낮 구분할 수 없는 혼미한 날들이었다.
게다가 4월16일 캐나다로 돌아오던 날에는
같은 날, 다른 비행기로 출발한 친구 부부가
나보다 먼저 우리 집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집을 들어서기 무섭게 주부로서 역할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경을 거쳐 16시간 긴 비행으로
속눈썹의 무게도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엄마 간병하며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가평, 춘천, 용인… 어디든 달려와 곁에 있어주던 친구가
내 집에 왔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신나서
어디를 데리고 갈까…. 무엇을 보여줄까…. 뭘 먹일까…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숨을 몰아쉬며 스케줄을 잡았다.
솔직히…
차려주는 밥을 먹기도 힘들다며
그 친구 앞에 벌렁 드러누워도 괜찮을 막역지우지만
친구의 남편은 또 다른 관계이고
외국에서 친구와 뭉친 밤이 즐거워 피로도 잊게 하며 사람을 흥분시켰다.
다음날 아침부터 밴쿠버 시내와 근교를 구석구석 누비며
직접 여행 가이드를 하고
세끼 밥 해 먹이면서 7박8일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리고
친구를 서울로 떠나 보낸 토요일부터
잠깐씩 반찬을 준비하는 것 외
출근하는 남편을 보낸 뒤 다시 누우면, 퇴근하는 문소리에 잠을 깨는 날이 사흘째.
어제는 은근히 미안했다.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 친정엄마처럼 편한 분으로부터
‘아무리 힘들어도 지 엄마 간호하고 와서 생색낸다는 소리
듣지 않게 남편앞에서 티내지 말라\'는 잔소리를 들었던 터였다.
엄마 간병도 좋지만 내 여자가 얼굴 상하는 것도 싫고
긴 머리 질끈 동여매고 다니는 \'스타일\' 없는 것도 싫다며
미용실 다녀오라고 했지만
며칠 전 예약해서 운전하고 미용실까지 가는 것도 귀찮고
몇 시간 머리 들이밀고 고문당하는 것도 끔찍해서 포기 하고
대신, 긴 머리 풀어 헤치고 뽀사시하게 화장한 다음
그의 취향에 맞춰 매니큐어를 바르기로 했다.
천상 선생질 외 달리 마땅한 직업이 없을 것만 같은 순박한 남자가
긴 손톱에 강렬한 매니큐어 칠한 손톱을 좋아하는 취향이 좀 의외이기도 하고
일상생활하기에 편하고 좋은 게 좋은 본처기질에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긴 손톱이 불결해 보이는 현실적인 이유와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직업에 타이핑이 불편해서
손톱은 살 밑까지 싹 들여 깍는 게 내 습관이다.
이렇게 서로 전혀 코드가 다르니 그간 무슨 날만 되면 매니큐어를 사다 줘도
어쩌다 바르는 흉내만 낼 뿐, 진열만 되어 있는 걸 보다 못한 그가
언젠가 크리스마스에 잠자는 내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 놓고 ‘선물’이라고 해서
싸운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한달 가까이 돌보지 못하는 사이, 손톱이 제법 길어
손톱 줄로 끝을 갈고 광을 낸 다음, 패티코트를 입혀 매니큐어를 바른 후
투명 컬러를 덧입혔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펼친 채 입으로 후후 불며 30분을 있었나 보다.
“매니큐어 바르고 조금만 기다리면 될걸 긁히고 찍혀있는 여자를 보면
진짜 덜렁이 같더라”는 그의 말이 생각나서다.
오랜만에 시체놀이에서 벗어나 뽀사시하게 화장하고 기다린 저녁….
이제나 저제나 손톱을 들켜(?)보려고 산책하며 장갑을 벗어
장갑이 크다는 둥 작다는 둥 궁시렁대도
도무지 관심을 갖지 않는 그에게 몹시 실망한 채 심드렁한 마음으로
침대에 눕는 순간 또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누군가 나를 만지는 듯한 기분에 눈을 감은 채 더듬이를 세웠다.
가만가만 매끈거리는 내 손톱을 만지작 거리는 남편이 중얼거린다.
“으휴… 얼마나 힘들었으면 손에 살이 다 빠졌네…. 씨… 매니큐 바르면
얼마나 이쁜 손인데... 언니랑 오빠들한테 힘들다고 할 것이지… 후~ 바보같이.... \"
고맙고 미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