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모 방송사에서 진행했던 프로가수들의 경쟁무대.
일곱명의 정상급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여러 분야의 평가단이 점수를 매기는
잔인할수도 있었던 무대였었다.
노래를 직업으로 삼아 적게는 수년에서 많게는 수십년을 살아가는
전문 노래꾼들인데도 같이 노래하는 가수들끼리 경쟁을 해야하고
또 꼴찌는 탈락을 해야하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기에
그 프로그램에 나오던 가수들의 긴장감이나 스트레스는 지켜보는 시청자들한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박진감 넘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안방에서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오랫만에 들어보는 노래다운 노래였다지만
경쟁을 하는 그 가수들은 마이크 잡은 손이 달달달 떨리도록 힘든 무대였다.
아쉽게 고음처리도 불안하기까지 했다.
꼴찌를 한 가수한테는 탈락의 불명예와 함께 엄청난 심리적 위기가 올 수 있었던
힘든 무대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들의 용기가 대단했다.
물론 나름의 자신감은 있었겠지만 잘하는 가수들끼리의 경쟁은 어느 누가해도
힘든 과정일 것 같다.
그래도 나름대로 다들 노래 하나만은 자신있게 잘한다는 프로가수들인데....
더 잘해야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리허설 때 울기까지 한 가수도 봤었다.
평가단들의 엇갈리는 점수로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했지만
결국 꼴찌는 나왔고 아쉬운 탈락도 있었다.
꼴찌를 했다고 가수가 아닌것은 아니다.
순간적인 당황스러움은 있겠지만 새로운 각오로 직업인 가수를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면 이 기회가 자신에게는 발전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꼴찌를 했던 김건모는 그랬다.
꼴찌를 예상 못했었던 자신감은 어디로 가고
재도전의 기회를 얻어 꼴찌를 면했을 때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프로가 그런 말을 하기 참 어려울건데 솔직하게 자신의 느슨했던 자세를 반성했다.
그러면서 더 노력하는 가수가 되겠다고도 했다.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올해로 주부 25년차도 넘은 프로중에서도 한참 프로인 주부다.
어느 직업을 갖든 25년이 넘으면 아마추어는 이미 옛날에 졸업하고
프로도 고참 프로가 될 연식이다.
“나는 가수다” 처럼 주부들을 상대로 “나는 주부다”로 경쟁시킨다면
나는 과연 꼴찌를 면할수는 있을까?
여러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정하게 한다면
첫 번째... .남편을 사랑하고 잘 받들며 살았는가?
둘째.........육아는 잘 했는가?
셋째.........살림은 잘했는가?
넷째.........재테크는 성공했는가?
다섯째.....시부모님들은 잘 모셨는가?
그 외에도 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충 이 정도로 분야를 나눈다고 할 때
몇 개 항목이나 높은 점수를 얻을수 있을지?
아주 잘함
잘함
보통
조금 못함
아주 못함
초등학교 성적표처럼 “수우미양가”를 매길까?
결혼하고 지금까지 한가하게 여유를 갖고 살아오진 않았지만
바쁘게 동동거리다보니 아이들은 어느 새 다 자라 우리 품을 떠났다.
비싸진 않지만 대충 살림사는 집 같은 외형은 갖추고 산다.
부부 사랑엔 변함이 없는데 남편을 잘 받들진 못한 것 같다.
시부모님들한테는 잘은 모르지만 우리형편에 맞게는 하지 않았나 싶어서
조금은 위로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재테크?
이 부분에는 전혀 자신이 없는 부분이다.
워낙에 돈에는 계산이 없는 사람이다보니 불릴 줄은 모른다.ㅎㅎㅎ
살림살이들이 반짝반짝 윤이나고
남편이나 아이들이 남들이 부러워할 인물들이고
손 큰 아줌마가되어 부동산 시장에서 알아주는 아줌마거나
주식투자에 남다른 후각이 발달해서 남편 월급하고는 상관없이 재산증식을 하는
진정 재테크의 고수가 되어야만 프로주부가 되는건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자신이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살림살이도 반짝반짝하고는 거리가 멀고
남편을 잘 챙긴다고는 하지만 늘 건너뛰기 일쑤다.
확대경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집안 구석구석 먼지가 수두룩하다.
눈 가는데만 살살 닦아서 살고있으니 오죽하랴~
아이들은 거의 방목이다시피 풀어 놓고 키웠더니 무럭무럭 잘도 컸다.
여자아이가 신발 사이즈가 255 mm니...ㅋㅋㅋㅋ
내적인 성장은 잘 모르겠다.
고슴도치 사랑이라고 크게 욕 먹지 않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살아가는 내가 주부프로그램에 나간다면
꼴찌를 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주부다.
그것도 한 가정을 책임지는 연식만 프로급(?)주부다.
주부능력 평가에서 자신있게 등수에 들 용기는 없지만 그래도 주부다.
주부연식 꼬리표를 싹뚝 잘라버리고 신혼시절 애송이 주부로 돌아간대도
여전히 자신은 없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고 이름도 다르듯이
살림사는 솜씨도 다 다르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니까 서로를 인정해 주고 살면 그 뿐이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솜씨를 인정해 주고 살면
내가 덜 미워지고 행복해진다.
세상에는 일등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일등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일등을 못했다고 다 불행하지는 않다.
더욱이 주부에게는 일등이 있을수도 없다.
각 가정마다 형편과 사정이 다 다른데 어떻게 등수를 매길 수 있단 말인지.
물론 남들이 다 부러워할만한 가정을 보면 그 주부나 가정에
부러움의 감정은 가질수 있지만 그로인해 내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면 안된다.
소중한 내 가정에 주부인 내가 갖는 존재감이 얼마나 큰데....
나는 일등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내 집의 진정한 지킴이 건강한 주부이면 만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