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생활도 올해로 18년.
따로 가정살림을 거의 안 하는 상태라 그릇들이 모두 구식들이다.
20여년전 결혼할 때 준비한 혼수품들도 쓰고 있으니 알만하다.
근간에 마련한거라고는 4년전 큰딸을 시집보내며 하도 탐나는게 있어서
두어개 따로 준비한 그릇이 최신형인 셈이다.
가끔씩 드라마를 시청할 때 식사시간에 식탁에 셋팅되어 있는 그릇을 유심히 보는데
나랑은 참 다른 그릇들이라 혼자서 피씩~웃었다.
어쩌다가 애들이 다 모이는 날
사위까지 동석한 식사시간에도 각각의 그릇들이 식탁에 올라온다.
국그릇까지도 따로 국밥처럼.
집에서 살림을 따로 살았더라면 절실해서 준비했을거지만
대부분은 할머니들하고 같이 부페식으로 하는 식사라
절실함도 크게 없었고 투박하거나말거나 물 안 새고 금 간 그릇들이 아니었기에
그냥저냥 버티고 넘어갔다.
그런데 안봐도 좋을것을 요 며칠전에 보고야 말았다.
대구에 사는 어떤 분의 집엘 방문했었는데
거실이며 안방 주방에까지 온통 수제품도기들로 장식을 해 뒀었다.
전통 찻잔세트는 기본이었으며 화로며 수족관 잎차 보관항아리며
크고 작은 화분이며 거실등 갓에까지 세상에 둘도 없는 단 하나 .
손수 만든 작품들로 전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의 수작들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은은한 색이 주는 편안함에 거칠은 듯 부드러운 질감이 참 좋았다.
날렵하고 가벼운 서양그릇의 간편함보다는
다소 투박은 해 보였지만 넉넉함에 기품이 있어보였다.
대작들은 몇달이 걸려야 겨우 한두점 만들수 있다고 했다.
혼자서는 들만지기도 힘든 그런 작품들도 여럿.
거실에 다른 장식장이나 가구는 일체 없애고 오로지 도자기들로만
옹기종기 전시를 해 뒀는데도 거실이 꽉 찬 느낌이었다.
짙푸른 연잎 모양이 그려진 그릇이며 청보리로 장식된 커다란 접시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직화로 즉석에서 음식을 해도 깨지지 않는다는게 더 매력적이었고.
평소엔 내 그릇들에 별 불만이 없었는데
그 댁 그릇들을 보고 온 후로부터 이거야 원...ㅎㅎㅎ
구식에다가
짝짝이에다가
갑자기 막 미워지려고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확 깨지기라도 했으면 좋겠구먼.
이참저참에 새로 좀 들여놓게...ㅋㅋㅋ
일부러는 그러지 못하는 내 성격이고보면
이 간절함을 어떻게 해결한다???
마침 남편 친구의 아내중에 생활도자기만드는 일을 잠시 한 사람이 있었다.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통화를 해 본 결과 다음 주에 그 공장에 나를 소개해 주겠단다.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자기공장도 있다고 했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단체로 견학을 가기도 하고 일정한 회비를 내면
머그 컵이나 접시 한두점 정도는 만들어 준다고도 했다.
회원들에게 다도회도 가끔 소개해 준다니 더 좋고.
일반인들의 견학이나 배움의 길도 열려있다니 일단은 한번 가 보기로 했다.
입회비가 너무 비싸면 관둘거고
화분이나 간단한 생활도자기 정도를 만들 실력만 갖추어진다면 참 좋겠다.
2주에 한번씩 쉬는 날에 가서 뭘 크게 배울까만
땅에 묻혀 있으면 그냥 흙인것을 사람이 발로 밟고 손으로 빚으면
모양도 빛도 가지각색의 놀라움으로 탄생한다.
영하까지 내려가서 어는 차가운 흙이 1000 도가 넘는 뜨거운 가마에서 구워지면
가스불 위에서도 끄떡없이 견디는 무서운 인내를 키운다.
펄펄 끓는 국이든 얼음이 둥~둥~뜨는 냉면이든
다 담아내고 품어주는 지혜로움으로 고요히 다가온다.
어쩌면 인생의 담금질을 끝낸 중후한 노신사같은 모습으로.
십수년이 흘러도 감히 전문가적인 경지는 따라가지 못할거고 안 할거지만
내 손으로 만든 투박한 그릇에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음식을 담아내는 정도만이라도 되어준다면
더 이상의 욕심은 없겠다.
봄이다.
꽃들이 긴긴 겨울잠을 깨고 뽀족뾰족 새순을 키워올린다.
그 동안은 시골 5일장에서 눈을 반짝이며 고르고 골라서 산 화분에
내 꽃들을 담아 키웠지만 기다려라 내 이쁜이들아~
머지않은 날에 찌그러진 화분일지라도 사랑으로 만든 화분에다가 너희들을 이사시켜주마.
그런데 큰 기대는 하지말아주라.
상황이 너무 버거우면 현실이 되지 못할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거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니 약간은 설레이는 내 마음이라는거지~`
짜리몽땅하고 섬세하지 못한 남자같은 이 손으로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게 짜릿하다는거.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