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참 황당한 사고를 겪는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조금 부산했던 탓인지 어이없는 사고를 더러 겪었다.
산 아래 깊이 패인 웅덩이에서 혼자 다이빙 연습하다가
정수리에 주먹만한 혹이 생겨 죽을 뻔 한다던지
다섯살 때 온 동네 아이들 모아서
어른들 껌(?)이라며 새마을 담배 두 갑을 돌려 피우고
돌림병으로 오해한 어른들에 의해 단체로 병원으로 실려 갔던 일……..
고등학교 시절엔, 동네 구멍가게 앞을 지나다가
도로가에서 잡담을 나누며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저어~기 저 집~~ ’하며 팔을 뻗는 순간
태우던 담배가 내 귀로 쏙 들어가 병원을 다니며 고생을 하기도 했다.
2월28일, 한국에서 돌아와 그동안 밀린 일과 소득세 신고로
시차적응 할 겨를도 없이 바쁜 일주일을 보낸 엊그제…
급히 주방으로 가려는 순간 발 아래가 뜨끔했다.
소름돋는 서늘한 아픔에
발을 들어 본 곳에는 내 양말에 걸려서 세워지면서
절묘한 타이밍으로 밟힌 이쑤시개가 박혔다.
핀셋으로 빼 낸다음
생각보다 아프긴 해도 까짓 이쑤시개라는 생각에
양말을 벗어 확인해보니 상처가 꽤 깊고 통증이 장난이 아니다.
엄지발가락 아래 볼록한 뼈 부분에 나무조각이 박힌 건지
발등까지 욱신대면서 다섯 발가락이 부어 올랐다.
하지만 이쑤시개에 찔린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시인 릴케도 장미 가시에 찔려 파상풍으로죽었는데
나는 이쑤시개에 찔려 파상풍에 죽는 다면 재미있는 일’이라며
남편과 농담을 주고 받았다.
이쑤시개의 일부가 남은 듯 하다는 의사는 수술대 위에 나를 뉘여 놓고
마취주사를 놓은 다음 그 부위를 작게 절개해서 나무조각 잔여물을 제거하고
파상풍 주사까지 놓았다.
의사는 ‘따끔’할 것이라 했고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남편은
조금만 참으면 끝이라 해 놓고
마취를 했음에도 너무 아파서 벌떡 일어나고 싶었다.
치료가 끝난 후 휠체어를 가지러 간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이까짓 작은 상처만으로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신체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두 차례나 한 엄마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막내 딸 얼굴 한 번 보고 죽고 싶었다고 했을까.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모두 엄마를 위해서라는 생각이야 같겠지만
엄마의 고통을 헤아리기보다 머리로 이해한 우리 입장, 내 입장에서
‘밥 드시라… 운동하시라….’ 떼를 쓰며 오히려 괴로움을 준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퍼 질러 앉아 우는 내게 간호사가 달려 와 진통제를 줄까 묻는다.
진통제….
마음이 아플 때 먹는 진통제가 있다면……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