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년말부터 날 괴롭히던 감기가 아직도 동거를 끝내지 않았다.
밉다고...
싫다고...
전혀 반갑지 않다고 정을 떼려고 해도
죽어라고 나와의 동거에 종지부를 쉽게 찍어주지 않았다.
주사를 들이밀어도
쓰디쓴 약을 한줌씩 밀어 넣어도 그래도 좋단다.
열은 없었다.
으스스하던 몸도 다 나았건만
마른 잔기침이 문제였다.
숨을 크게만 쉰다 싶으면 곧장 콜록콜록콜록....
꼭 폐병쟁이 기침처럼 콜록거렸다.
전화를 걸 일이 있어도 자제를 해야만 했다.
혹시라도 나의 기침 때문에 듣는 사람이 걱정을 할까 봐.
그런데도 다른 해 년초보다 더 잦은 수련회가 예약되어 있었기에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줄줄이 수련회를 치루어야만 했다
내 나이가 썩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태어나고 처음으로 겨울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다.
뭐든지 다 꽁꽁 얼어붙었고
난방이 잘 되는 집 안이 얼마나 고마운지도 알았다.
북쪽에 있던 온수통이 얼어서 냉수만 나오던 세면장에서
작은 남비에 물을 데워서 고양이 세수를 하던 며칠 동안
그래도 이 추위에 한뎃잠을 안 자도 되는게 그렇게 행복했었다.
약을 먹어도 안 듣고
주사를 맞아도 안 물러가던 감기가
혹시나 더 큰 병을 키우지나 않을까 싶어서 폐 사진을 찍어 봐도 이상 무~
\"그럼 선생님 기침이 왜 이리도 안 떨어집니까?
기침 때문에 잠도 설쳐야하고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미칠 지경입니다.
기침만 떨어지게 해 주세요..제발...\"
의사선생님도 난감해 했다.
자기한테서 서너번이나 주사맞고 약 먹어도 안 떨어지는 기침이니
더 신경을 써서 약을 지어주시겠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먹은 약은 기침을 가라앉혔다.
어지간해서는 약을 안 먹던 내가 이번엔 감기약을 거의 한상자는 족히 넘을거다.
지겹도록 먹어댔으니....
의사선생님은 잘 먹고 푹.....며칠동안 휴식을 취하면 나을거라 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실현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날마다 꼭두새벽에 수련회는 이어졌고 한 주에 두팀이나
그것도 500~800명씩이나.
강행군에 새벽시장의 칼바람까지 마셔대며 지냈으니
감기가 독이 올라 그렇게 날 안 놔 줬다.
어디 한번 당해봐라.
좀 쉬게 해 달라니까 안 쉬어주더니 죽을만치는 아니더라도 좀 아파봐라.
정말 그랬다.
죽을만치는 아니었지만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주방에서 수련회 할 때는 악을 쓰고 했는데
집에만 올라오면 거실 쇼파에 실신하는 수준으로 꼬꾸라졌었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일어나 다시 씻고 침대로 올라가 또 시체처럼 넉 다운~
그렇게 한달을 버티다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고
면역력이 약했졌던지 잠시라도 앉아 있을라치면 몽롱~~~
바삐 돌아다닐 때면 다 잊고 씽씽돌이처럼 뺑뺑이를 돌다가
밤만되면 혼자서 끙끙......
최근에 한 수련회는 예상 인원보다 300명 정도가 더 늘어나서
시장 봐 온 부식을 단 두끼니에 다 소비하고
여기저기서 조달을 했는데 한정된 인원으로 불어난 부식을 준비하느라
얼마나 바쁘게 돌아쳤던지 영하10도가 넘는 날씨에도 등에서는 땀이 꼽꼽하게 느껴졌다.
150인분 가스밥솥 3개에 두 탕씩이나 밥을 해댔고
500인분 국솥 2개에 돌아봤다가 볶음솥에 50kg의 고기도 뽁아대다가
식기세척기에 불이 들어가나 확인하느라 겨울이 겨울인지 여름인지....
그러다 땀이 식으면 등줄기가 서...늘....
그러니 감기가 떨어지나 말이지.
갱년기를 거친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나한테는 갱년기니 귄태기니 이런 말은 그냥 흘러가는 말이구나 했는데
지독한 감기가 갱년기를 알게 해 줬고
감기로 엉망진창이 된 몸상태는 남편을 소 닭 보듯 하게 만들었다.
내 몸이 바닥을 치는데 남편이 곱게 보일리 만무했다.
그냥 조용히 잠 자 주는게 날 위해 주는 남편으로 보이는데 어쩌랴?
결혼하고 가장 오랜 기간 소원했지 싶다.
그래도 늘 하던 간단한 스킨쉽은 있었지만 말이지.....
남편이 그랬다.
당신도 감기엔 못 당하는 걸 보니 늙어가나보네....
그 말이 왜 그리도 서운하던지.
무적함대처럼 지칠줄 모르고 달려 온 50 평생이 갑자기 초라해져 보였다.
당연한 일인데도 내가 아플수도 있고 늙어간다는게 이상하기만 했다.
막내가 대학을 가게 됐고 큰딸이 아기를 낳기만하면 엄연히 할머니가 되는데도
난 안 아프고 안 늙을줄로만 알았으니 이상하지?
왜 난 이런 상태가 안 올거라 여기며 살았을까?
어려운 시절을 이기면서 남편이 아팠을 때도 나만은 아프면 안된다고
아이들한테 엄마까지 힘들게 되면 안된다고 스스로 각인을 하며 살아서 그럴까?
불로장생약을 먹은 적도 없는 내가 왜 언제까지나 젊다고 오해하며 살고 있을까?
어젯밤에는 횟집 알바를 마치고 밤 11시가 넘어서 집에 온 아들이
새벽 1시에 이란과 우리나라가 축구를 하는 걸 봐야하기에
그 때까지는 안 자고 엄마를 안마해 드리겠다고 했다.
풀코스로 1시간 30분 동안이나 차분하게 안마를 해 주면서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아들은 참 행복하단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안마를 해 주는 아들은
엄마가 일을 그만했으면 참 좋겠단다.
어깨를 주무르던 아들은 엄마 어깨는 근육질이 장난아니게 단단하다면서
대학가서 열심히 공부할테니 저 걱정을 말란다.
후훗....
그래만 해 줘라.
그럼 엄마 일 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