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어도 은근히 드넓은 오지랖 탓인가?
나는 독신주의자가 아닌 과년한 노총각 노처녀가 결혼을 못 해서 애태우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짚신도 짝이 있단 속담처럼 누구에게나 가장 잘 맞는 배우자가 있게 마련인데
내가 조금 도와줘서 또 한 쌍의 커플이 탄생한다면 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특히 마음 졸이고 계실 연로한 그들의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활달한 성격이 못 돼서 앞에서 멍석을 펴주진 못해도 조용히 뒤에서 미는건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방이 제삼자인 나의 응원의 말을 믿어주니 그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결혼한 지 1년 남짓된 새신랑인 우리 직원 한 사람은
그 당시 나이가 막 삼십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는데
암만 소개팅을 해도 도무지 성사가 되지 않았다.
이유는 키가 작고 얼굴이 크고 약간 겉늙어 보여 요즘 젊은 여자들이 선호할
외모가 아니라는 것.자세히 뜯어보면 이목구비가 특별히 못난 구석은 없다
그 나이 되도록 연애도 제대로 한 번 못 해봤고 소개팅에 나가도
여자가 고개를 외로 꼬고 앉았다가 쌩~하고 나가버리기 일쑤라서
그런 자리에 나갔다 돌아오는 날이면 더욱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사람이 착하고 성실하고 성격좋고 유머감각 있고 술매너도 좋고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집안에 재산도 좀 있는 외아들이라
나머지 조건은 좋은 편에 속하는데도 그 놈의 외모가 뭔지...ㅠ
나는 그의 성품과 조건이 너무 아까워서 나라면 저런 자리에 얼른 시집갈텐데
여자들은 왜 남자 보는 눈이 없을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남편을 만났어도 외모나 조건보다는 됨됨이와 비전만 봤고
외모는 그 때보다 나이 든 지금이 더 낫다.)
점점 기가 죽어가는 그에게 \'앞으로 얼마든지 좋은 여자,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그런 사람 만날 수 있으니 기죽지 말고 힘내라\'고 격려하면 \'에휴~제가 뭘요\'이러고
한숨만 쉬니 얼마나 짠하던지...
그러던 차에 어느날 소개팅이 성사되어 애프터 신청을 하고
그럭 저럭 잘 되어가는 눈치가 보였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임자를 만났구나. 1년간의 내 중보기도의
응답이 이제야 오는구나.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좀 더 일찍 퇴근을 해도, 근무중에 문자와 전화통화 하느라
시간을 보내다가 일에 실수를 해도 우리 내외는 그가 연애를 하고
이제 장가갈 수 있을거란 희망으로 다~ 눈감아 주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연애를 해보는 서른 중반의 노총각(요즘은
이 정도는 노총각도 아니지만)이 얼마나 대견하고 짠하던지..
어느날 중년의 신사 한 분이 회사로 찾아오셨다.
나는 여자의 육감이랄까? 제대로 신분을 안 밝히고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만
하는 그 분이 순간적으로 그의 예비 장인 어른일지도 모르겠단 직감이 들었다.
나도 그 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마침 개인 볼일을 보러 관공서에 간 그 직원을 대신해 공손하게 대해드리며
한 편으로 밖에 나가 몰래 그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장인어른 되실 분이 찾아오신 것같다고 서둘러 들어오라고.
(나중에 그가 나의 이런 직감을 너무 신기해했다.ㅎ)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나의 직감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우선 회사 분위기와 그의 성품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눈치여서 내가 먼저 운을 떼었다.
\"따님이 남자 보는 눈이 있나봐요. 아무개 과장은 정말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좋은 사람이에요. 제가 누굴 소개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안타깝네요~\"
그랬더니 슬며시 웃으시며 사실은 내가 딸만 넷을 두었는데
이 딸이 그 나이 먹도록 연애도 안하고 자기는 엄마 아빠랑 살겠다고
선언을 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남자를 만나는 듯하더니 두 달 만에 갑자기
시집을 가겠다고 해서 너무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인가? 무엇에 홀린 것은 아닌가?사람은 제대로 골랐나?
너무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노라고 하시는거다.
그래서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대로 그의 장점을 추켜세우며 마구
칭찬을 늘어놓았다.
요즘 젊은 처자들이 외모에만 비중을 둬서 그렇지 그 사람은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 총각이다.
여자관계 걱정할 필요도 없는 순진하고 깨끗한 사람이고
능력있고 성실하고 성격도 좋아서 장가가도 아내 속썩일 사람이 아니니
사위 삼으셔도 정말 후회없으실 거라고...
나중에 들으니 제삼자인 내가, 그것도 회사 오너의 마누라가 직원을
그렇게까지 좋게 평가할 때는 정말 믿어도 좋을 사람인가보다.
사회생활 헛한 사람은 아닌가보다 신뢰가 갔다고 했다.
그리고 내인상이 허풍칠 사람같지 않고 말씨가 조곤조곤해서 진실돼 보였다나?ㅎ
나는 늙어가는 내 외모가 맘에 안 드는데 저런 말을 가끔 들을 때면
내가 이때껏 그런대로 잘 살아왔나보다 하며 혼자 흐뭇해하곤 한다.ㅎ
그렇게 해서 일단 안심을 하고 되돌아가신 장인어른의 마음이 녹으셔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만난 지 석 달 만에 드디어 그가 장가를 갔다.
뒤에 그의 부인에게 듣자하니 친정아버지 반대가 심했는데 내 공로가 컸다고
나 아니면 자기들 결혼도 못할 뻔했다고 고맙다는 말을 지금까지도 한다.ㅎ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성사가 안 되고 매번 첫만남부터 어긋나던 그가
그 아내에겐 첫눈에 이상형으로 다가오더란다.
그리고 매번 만나도 전혀 낯설지가 않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 했다.
신랑도 신랑이지만 색시가 신랑을 더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자기눈엔 그 어느 남자보다도 잘 생긴 사람이란다.ㅎ
천생연분이란게 바로 그런건가 보다.
결혼식날 새신랑의 노모께서는 나의 손을 덥썩 잡으셨다.
내아들 장가 못 가는 줄 알았는데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그 장인어른께서도 코가 깨지게 인사를 하셨다.
그들은 지금 정말 예쁘게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
오늘도 그와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바로 옆회사의 직원인데 저 위의 우리 직원과 동갑친구다.
이 사람은 외모가 훤하다. 그야말로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미남이고 운동도
잘 하는데 이상하게 여자 앞에만 가면 쑥맥이 돼서 말 한 마디 못하고
머리만 벅벅 긁다가 끝나곤 했다.
맘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입이 더욱 얼어붙는다고 했다.ㅠ
처음엔 무뚝뚝해도 인정스런 구석이 있고 친한 사람들에겐 말도 잘 해서
특히 거래처 아줌마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는 사람이다.
젊은 아줌마들이 이 총각 이쁘다고 김치도 잘 퍼다줄 정도.ㅎ
입 가진 사람들은 다 이구동성으로
\'아니 그 외모에 그 키에 왜 그 나이까지 장가를 못 가냐?\'고 한마디씩 하곤 했다.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면 맏아들인 그에게 쏟아지는 부모님과 친척들의
올해는 제발 장가가란 덕담이 얼마나 스트레스였을까?
그러다가 작년 연말 함께 송년회를 하던 중국식당에서 이 총각 중신 좀 서라고
여주인께 했던 말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자기에게 과년한 여동생이 있는데 공부하느라 나이를 먹었다.
외국어를 몇 가지나 할 줄 알고 키도 적당하고 얼굴도 예쁜 동생이다
그렇게 전화가 왔다.
그냥 듣고넘기는 줄 알았는데 자기 친동생을 소개해준다면 그 날 그 총각이
맘에 들었다는 뜻이란 생각이 들어서 나는 또 오지랖을 발동해 남편을 졸랐다
저 아무개 과장 장가 보내러 당장 가자고.ㅎ
그래서 오늘 자리를 마련했는데 우리 회사도 아니고 옆회사 직원인데도
그 여사장님은 우리 내외를 보자고 했다.
우리가 소개한다고 해서 믿고 자기 동생에게 선을 보이는 거라고.
(물론 그 총각이 다니는 우리 옆회사 사장님도 오래 겪어봤지만 성품이
정말 좋으신 분이다)
내남편은 원래의 성격대로 솔직하게 그 총각의 장단점을 다 얘기해주었다.
소탈하고 고집세고 가식이 없고 처자식은 절대 안 굶길 생활력을 가졌다 등등.
나는 칭찬을 주로 했다.
이렇게 잘 생기고 키크고 다리도 길어서 여자가 아주 많이 따를 것같지만
너무 수줍어해서 여자 앞에만 가면 말을 못 한다.
평소에는 박력있고 고집도 있고 책임감도 강하다.
처음에만 서먹해서 말을 못 하지 알고보면 속정도 있다
동물도 엄청 좋아한다.
술 마시면 말도 하고 잘 웃고 착해진다.
주사 같은 거 없고 인물값 해서 여자 울릴 일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등등
두 자매가 맞다며 웃는다.ㅎ
그를 장가보내기 위해 응원차 떼거리로 몰려가 회식을 하던
우리 두 회사 직원(숫자가 10명을 넘지 않음)들이 시끌시끌한 가운데서
여사장님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그러더니 그 날 처음 본 그 총각도 순진해보이고 좋았지만
우리 내외를 가리키며 두 분이 오래된 부분데도 굉장히 보기가 좋고
신뢰가 가서 두 분이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 내외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 까지 왔는데
다행히 얼굴엔 그늘이 별로 없나보다.
굳이 그 자리에서 별로 그렇지도 않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해서 잠자코 있다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만 했다.ㅎ
끝나고 나오려는데 그 총각이 처자가 맘에 들었던지 나더러 고맙다며
악수를 하자고 두 손을 내밀어 엉겁결에 그 총각과 악수를 했다.ㅎ
아무튼 이번에도 느낌이 좋은데 올해 서른 후반으로 들어서는 그 두 선남선녀의
만남이 끝까지 잘 되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