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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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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에 영어공부하러 캐나다에 가다 - 1


BY Late Bloomer 2011-01-12

1. 영어 필요성 절감 -1

 

나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생활 초년에는 다른 동기보다 비교적 빠른 승진을 하였다. 하지만 직장생활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왠지 뒤쳐진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친구들의 상당수가 외국계 회사를 다녔던 관계로 주로 그들의 근로여건과 내 것을 비교하게 되었다. 먼저 그들은 내 급여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고 있었다. 더 부러운 것은 그들은 토요일에 근무를 하지 않았다. 5일만 근무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자주 본사 혹은 지사가 소재하는 외국으로 출장을 다녔다. 회사의 성장 가능성보다도 이 세가지 기준-급여, 5일 근무, 해외출장은 사회 초년생인 내게 이상적인 직장생활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라도 외국계 회사를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여러 차례 외국계 회사의 구인 공고를 찾아 지원하곤 하였다. 당시 외국계 회사는 대개 이력서에 합격하면 영어 필기시험과 영어면접을 치도록 하였다. 외부 학원에 의뢰하여 보는 것도 있었고, 회사에서 직접 실행하는 곳도 있었다. 영어 필기시험과 영어면접에 합격되면 관리자들과의 실무면접 그리고 최고 경영자와의 최종 면접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물론 관리자들과 실무 면접이나 최고 경영자와의 최종면접에서도 자주 영어로 몇가지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영어면접과 관련한 가장 황당한 사례는 무역업을 한다는 회사를 찾아갔을 때였다. 관리자들과의 실무면접이 끝나고 사장실이 있는 그 빌딩 최고층으로 안내되어갔다. 사장은 몇가지 질문을 한 후에 내가 앉은 책상 위에 놓인 약 한 페이지 분량의 영어 기사를 크게 읽어보라고 하였다. 읽어보라는 지시였으므로 오로지 발음에만 신경 써가며 읽으려고 애를 썼다. 영어 발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r][l], 그리고 [th] 발음에 온통 신경 써가면서 읽어갔다. 다 읽고 났더니 그 기사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설명해 보라고 하였다. 아뿔싸. 머리가 하해졌다. 발음에만 신경써 읽느라고 내용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 회사 취직은 내 발음과 더불어 물 건너 갔다.

 

하지만 머지 않아 외국계 회사 입사라는 나의 집념은 실현되었다. 그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이상적인 직장생활의 세가지 기준-급여, 5일 근무, 외국출장-중 두 가지가 어느 정도 만족되었다. 급여가 상당이 올랐으며, 5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 다만 외국 출장은 그렇게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 기술이나 품질, 마케팅이나 영업부서의 경우 외국의 선진기술과 기법을 배우기 위해 출장이 잦았다. 하지만 관리부서에 근무하는 내게 외국 출장의 기회는 많지가 않았다. 일년에 한 차례 정도 전 세계에 근무하는 해당 관리부서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최되 교육이나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해외출장을 가게 되면 도통 무슨 얘기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까지 10년 동안 내가 받은 영어교육은 오로지 문법과 읽기 위주였다. 대화를 배운 적도 별로 없었고, 대화를 하는 영어 선생님도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교육이나 미팅에서 자료를 제공하거나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문서화된 영어였으니 읽기에 관한 한 어느정도 숙달된 내게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말로만 하는 시간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그룹으로 나누어 토론을 하는 경우 전혀 참가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다른 참가자들이 나를 배려한다고 내 생각을 묻곤 하였지만 몇마디 내 대답에 영어를 못한다고 판단이 들었는지 아예 나를 제외하고 자기들끼리 떠들어대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휴식시간이었다. 보통 해외에서 교육이나 미팅을 하면 최하 약 20분 정도로 휴게시간을 넉넉하게 주었다. 그 시간동안 다른 참가자들은 쉴새없이 자기들끼리 모여 주절댄다. 나는 도저히 그들의 잡담에 끼어들수가 없다.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화장실에 갔다와서 제공되는 다과나 음료만 축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통 해외 출장을 가면 나는 3S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첫번째 S Smile로 못알아 들어도 알아듣는 척 웃는 모습을 지었고, 두번째 S Silence로 너무나 조용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리고 마지막 S Sleep으로 알아듣지 못하니 졸음만 쏟아졌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경우가 있었다. 바로 일본인이 참가한 경우였다. 대개 일본인들 역시 영어 대화 수준이 우리와 비슷하였다. 휴식시간에 그들도 나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 잘 안되는 영어만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휴식시간 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반일감정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다만 그 일본인 참가했다는 것만으로, 일본인이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만으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일년에 한 두차례 찾아오는 해외출장 시 늘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지금부터 죽어라고 영어공부를 해서 다음 이런 기회가 오면 죽여주게 영어로 떠들어야겠다고. 그리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돌아오는 길에 외국공항에서 영어로 된 책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좀 비싸지만 이제부터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된 책만 읽겠다는 나의 굳은 다짐의 실행이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읽기 시작한다. 폼도 근사해 보이고, 나도 좀 있어 보이는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몇 페이지를 가지 못해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하였다. 비행기 타면 읽겠다고 잠시 접어둔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었다. 그렇게 산 책이 몇 권인지 모른다. 그리고 다음에 또 해외출장을 가면 똑같이 교육이나 미팅 중 똑 같은 외로움을 느끼고, 똑 같은 투지와 다짐을 하고, 그리고 똑 같이 영어 책 구매가 이루어졌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