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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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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BY 매실 2010-12-19

십 여 년 전

나는 서울에서 1년간 학습지 관리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 볼까 한다.

 

예쁜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있는 집이었다.

엄마는 그저 퉁퉁하고 전형적인 아줌마 외모였는데

딸은 얼굴도 예쁜데다 말씨도 어찌나 상냥한지

마치 이슬만 먹고 살 것같은 느낌이 드는 아이였다.

 

특별히 공부를 잘 하지는 못해도 성실한 편이었다.

 

그 아이를 보면서 저 엄마의 젊은 시절도 저랬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는데

 

나는 인수인계 받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회사에서 교육받은대로

아이의 지금 현재 상태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진도는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기타등등

 

그런데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 엄마가

느닷없이 \'흥!\'하고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내가 말하고 있는 도중에 돌아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분명 나는 한창 말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말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는 듯한 몸짓으로...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 아이는 학비가 비싸다는 사립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겨우 2~3만원 하는 학습지 교사에겐 들을 말이 없었을까?

내가 갓 졸업한 젊은 사람이 아닌 어중간한 아줌마여서 그랬을까?

 

그 후로도 그 엄마는 내가 아무리 인사를 깍듯이 해도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마치 내가 무시 당해도 좋을 아랫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솔직히 난 그 아이에게 별 애정없이 의무적으로

기본적인 도리만 했던 것같다.

 

얼마 후엔 아이가 이웃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내가 맡은 구역이 아니라서 헤어지게 되었는데 궁금해서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전세 만기가 되었는데 전세금을 많이 올려달래서 이사할 수밖에

없단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엄청 부자라서 평소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 줄 알았는데...

 

그 예쁘던 딸도 커서 엄마를 닮았을까?

 

 

 

또 한 집은 엄마가 미술가여서 넓은 집안엔 온통 미술도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가끔 전시회도 연다고 했다.

명문여대 대학원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몸짓이나 목소리가 아주 우아했다.

 

그 집엔 초등 저학년 아들만 둘이었는데 어찌나 개구쟁인지

공부에는 뜻이 없고 정말 산만했다.

 

그 엄마는 아이 야단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애들이 무슨 짓을 해도

야단치지 않고 모른 척 할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내가 야단칠까봐

곁눈질로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제어가 안될 정도로 심해서 도무지 공부를 가르칠 수가 없었다.

 

나는 공부하자고 사정사정 하다가 시간이 흘러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엄마는 우아한 목소리로 왜 안 가르치고 그냥 가려느냐고 물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나도 그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지만 충분히 알 나이고

명색이 선생님 앞인데 야단을 쳐서라도 자리에 앉히든가

정 공부에 뜻이 없는 것 같으면 학습지를 그만두게 해야지.

 

저렇게 공부습관이 안 잡힌 애를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학습지를 시켜서 뭐하나? 또 사립초등학교만 보내면 단가?

내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 엄마가 외출하고 없던 어느 날, 저희 둘이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데

얼마나 과격하던지 어느 한 사람이 병원으로 실려가게 될까봐

내가 얼마나 놀라고 걱정이 되던지..깔고 앉아 목을 조르고 주먹으로 내리치고

발로 차고 벽으로 던지고...어휴...듣도 보도 못 하던 광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내힘으로는 도저히 말릴 수도 없었다.

형제끼리 자라면 다 그런가? 

 

나중에 내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엄마는 여전히 담담했다.

늘 있는 일이었나?

 

그 엄마는 나중에 아이들이 더 큰 후에 어떻게 감당했을까?

 

 

 

나더러 얼마나 살기가 어려우면 어린 자식들을 놔두고

이런 일을 하고 다니냐고 대놓고 묻는 엄마들도 종종 있었다.

 

아무리 내가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해도 믿지 않을 테니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아무리 사교육 학습지라지만 내가 최소한 1년은 해야 아이들에게

책임을 다할 것 같아서 1년을 아주 꾹꾹 눌러 참다가 사표를 내고 나오는데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사람 대접을 받고 일을 해야지

은근히 사람을 경멸하는 건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 하도 공부를 잘 하고 착실해서 지금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정말 궁금한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 뒤엔 역시 훌륭한 엄마가 있었다.

스스로 알고 있는 정보가 많은데도 자기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든 학원 선생님이든 아주 존중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이니

아들이 보고 배우지 않을 수 있을까?

 

가방끈이 긴 엄마는 아니었지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하던

모습이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늦은 저녁시간이라 배고플까봐 꼭 케잌 같은 간식거리를 넣어주던

엄마도 기억난다.

매번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텐데 늘 한결같았다.

 

집안을 차분하고 깔끔하게 정돈하고 아이들 공부습관을 잘 잡아주려고 애쓰던

엄마였는데 아이들이 그 기대에 부응해서 공부를 잘 했기를 바래본다.

 

 

 

 

기억나는 집이 또 하나 있는데

아빠는 늦깎이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가시고 엄마가 일본인 관광객 투어가이드를

한다고 했다.

 

아이가 외동딸이라 외로움을 타서 나는 공부보다도 말동무 노릇을 주로 했는데

그 아이 역시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가 강해서 내가 해줄 거라곤 격려의 말 밖엔

없던 것 같다.

 

어느 날 함께 사시는 외할머니께서 \'우리 손녀딸을 가르치는 선생님께

식사 대접을 하고 싶어서 특별히 차렸노라\'며 진수성찬을 차려놓으셔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시간도 없을 뿐더러 편하게 밥을 얻어먹을 자리가 아니어서 끝내 사양하고

나왔지만 정말 감동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길어야 이 삼십 분씩 잠깐 수학 공부 봐주는 나를 웃어른이

그렇게 깍듯하게 대우해 주시다니 황송할 지경이었다.

 

그 후 엄마와도 마주치게 되었는데 연배도 나보다  위고

소위 명문대 나온 전문직업인이어서 도도할 줄 알았더니

오히려 더 겸손하고 예의가 바른 분이었다.

 

 

 

저런 부모를 보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다 동원해서라도

그 아이들을 잘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각양각색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게 학부모로서의 자세를 알려주었다.

 

우리 애들도 초등학교 때 학습지를 얼마간 했는데 그 선생님들에게 내가 어떻게

대해드려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