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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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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수학여행단


BY 그대향기 2010-11-15

 

 

 

 

해마다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할머니들을 모시고 가까운 산으로 단풍나들이를 한다.

차멀미도 그렇고 허리까지 불편하신 터라 멀리는 못가고 차로 한두시간 거리의 밀양 가지산이나

대구 팔공산 정도로 하룻길 단풍 나들이를 가신다.

가끔은 서울도 가고 대전까지 먼 길을 가지만 거의 한두시간거리를 가게 된다.

걸어서 구경하는 단풍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드라이브를 하는 수준?

차로 휘~~돌아가면서 산이나 길 가의 단풍을 구경하시곤 한다.

올해는 지난 주에 단풍구경을 갔는데 영락없는 초등학생들의 수학여행단 같으셨다.

 

이른 아침을 드시고 옷을 챙겨 입으시는데 ㅎㅎㅎㅎㅎ

그날 바람이 몹씨 불었는데도 봄쟘바에 구멍 쑹쑹 난 여름 샌들에

한겨울 털옷에 목도리까지 한 할머니에

청바지에 멋이 잔뜩 들은  머플러에~

가지가지 형형색색의 옷차림에 핸드백까지.

얼굴엔 설레인 표정이 역력한데 몸은 꼬부랑꼬부랑~~ㅎㅎㅎ

분도 뽀얗게 바르셨고 전날 머리 염색까지 하셨는지 주름 투성이 얼굴인데도

머리만큼은 쌔까맣고 입술연지까지 빨갛게 꼭 개그프로의 펭귄입술 같다.ㅎㅎㅎㅎ

 

어찌어찌 가지산을 돌고 표충사로 석남사언저리까지

가을 햇살아래 자잘한 단풍나무잎이 빨간별처럼 반짝이는 길을 돌았고

이른 봄에는 소담스런 꽃으로 화사하게 봄을 열던 벚나무는

선홍빛의 어여쁜 잎이 단풍이 들어 얼마나 곱던지...

완전히 다 물들지 않은 잎은 노랗고 단풍이  다 든 잎은 발갛다.

앞 차의 꽁무니를 따라 달리는 은행잎들은 오종종종.....

숨이 멎을 때까지 노란 질주를 어디까지나 하고 있었다.

 

가지산의 단풍은 상록수인 소나무보다 잡목이 더 많아서

빨갛게 노랗게 물든 잡목들이 산 아래에서 정상으로  몰려 올라가는

양떼를 보는 듯 동글동글 산을 물들이고 있었다.

계곡들도 완만하다보니 깍아지른 듯한 기암괴석보다는

둥글둥글한 작은 산들이 단풍에 물들어 따뜻한 호빵처럼 보였다.

차에서 내리지는 못하시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오색찬란한 풍경에서

늦가을을 만끽하시는 할머니들은 어느 듯 그 단풍이 자신들이라 그러셨다.

\"우리도 조금 있으면 저런 단풍잎처럼 떨어지겠구나...\"

 

사계절 중에서 꽁꽁 언 한겨울보다 더 쓸쓸함을 느끼시는 할머니들.

추울 때는 방안에서 한발짝도 밖으로는 안 떼시는 할머니들이시라

가을이 가장 늦은 계절인 것 처럼 느껴지니 그러실게다.

어딜가서 식사를 해도 욕심꾸러기 할머니는 그 욕심 다 채우셔야 일어나시고

혼자서는 한걸음도 안 걸으시려는 할머니는 여전히  전 몸무게를 내 팔에 의지하시고서야 걸으신다.

말이 나들이길이지 한번 나갔다오면 완전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차를 타고 내리실 때 그 몸무게들을 다 받아 오르내리게 하셔야지

계단이라도 있는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 날에는 아휴휴....ㅎㅎㅎ

그러기에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날씬한 아줌마가 될란다고 하면

그럼 누가 부축하고 누가 힘든 일 다하냐고 절대로 그러지 말라시며 펄쩍들  뛰신다.ㅋㅋㅋ

 

할머니들 덕분에 좋은 음식점에서 맛있는 식사도 같이 하고

좋은 곳에서 좋은 구경도 많이 하지만

그런 곳에서 그런 대접을 받을 때 마다 경주에 혼자 계시는 친정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물론 막내 오빠네랑 같이 계시지만 올케는 일하러 나가고 오빠는 건강상의 이유로

운동을 다니느라 집을 자주 비우게 되니 빈 집에 늘 혼자이신 엄마.

철들고 친정엄마보다는 지금의 이 할머니들하고 더 오래 살고 있는 나는

엄마생각이 아무리 간절해도 같이는 살 수 없기에 안타깝기만 하다.

몇해 전에 엄마하고 같이 사는 막내 오빠랑 의논해서 엄마를 내가 사는 직장 옆에 집을 구해서

내가 엄마를 마지막까지 모시겠다고 했을 때 오빠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엄마가 노인성질병은 다 가지고 계시고 자주 병원에도 가야하신다며

내 직장생활에도 지장이 있고 엄마가 치매기운까지 있으시니 내가 너무 힘들거라고 했다.

 

직장은 어디까지나 직장이고 엄마 모시는 문제는 개인적인 일이라며

나는 친정엄마지만 남편은 장모님인데 처음처럼 끝까지 좋은 감정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처음에는 서운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생각하니 오빠말이 다 옳았다.

오빠는 내 친 부모지만 그 때 난 시부모님도 곁에서 모시고 있었고

아이들이 한창 어려서 공부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았는데 오빤 그걸 염려했던게다.

이런저런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되면 엄마 모시는 일이 힘들어 질거고

그러게되면 부부문제도 심각해 진다고 극구 말렸었다.

난 단지 우리 할머니들을 오래 모시면서 우리 엄만데 나도 모시지 했던거고

우리 할머니들도 자식들을 두고 여기까지 오셨는데 오빤 그 짐을 끝까지 혼자서

다 감당하려고 하니 언제나 긴장이 되고 지금은 건강도 좋지 못해 더 힘들다.

 

할머니들 단풍놀이 끝에 또 친정엄마가 걸리는 막내 딸이다.

직장이면서도 할머니들을 모시고 산다고 칭찬은 늘 받으면서

정작 가슴 속에는 친정엄마의 남은 날이 그리 길지 못하실거라는 불안감으로

서운하고 죄송하고 안타까운 맘만 가득하다.

며칠전에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기일이었는데 직장에 먼  미국에서 손님이 오셨고

그 손님을 이틀동안 전담하느라 친정에는 가지 못했다.

오빠의 긴 여운이 남는 전화만 받고 못 갔다.

\"어째 시간이 되겠나?

 안되겠제?....................\"

 

두시간만 달리면 가는 친정인데도 이리도 어려울까?

아무래도 성의가 부족한 탓일게다.

그리고 야간운전을 너무 부담스러워하는 남편이라 더더욱 안 가게 된다.

안 그러면 일 마치고 두시간 달려서 엄마 좀 만나뵙고 쌩~하니 내려 오겠구만...

유난히 눈이 쉽게 충혈되는 남편이라 가능하면 야간 운전은 안하게 한다.

달리 남편을 위해 주는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작은 일부터 안하게 되니

두 주일마다 쉬는 날에도 낮에만 잠깐 볼일을 보고 가능하면 빨리 집으로 돌아 온다.

해 떨어지기 바쁘게.

할머니들의 단풍놀이 운전기사를  확실하게 하려면 남편이 건강해야하니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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