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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솥단지


BY 들꽃향기 2010-11-15

어제는 요셉의 집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문앞에 아침부터 앉아서 놀고 계신 할마버지들이 계셨다.

예전에 그런 무료 급식소에서 주방봉사를 1번 해본 적이 있었고 그땐 단체급식 후의 커다란 솥단지들과 다라이등 큰 물건들을 설겆이하는게 너무 싫어서 그런 곳엔 안 가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요즘은 자유시간이 너무 많아서 무료하기도 하고 내손으로 뭔가 거룩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던 터라 옛날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 버렸다.

함께 간 자매님들을 따라서 장화를 갈아신고 앞치마를 두르고는 주방으로 들어가니 껍질이 다벗겨진 감자들이 커다란 고무다라이에서 뒹굴고 있었다.

수녀님께서 어제 누군가 그 감자들을 갖다 주었는데 할머니들이 껍질을 다 벗겨 놓고 가셨단다.

그런데 썩은 것도 있고 감자싹도 나 있어서 손질을 다시 하고 잘게 썰어서 갈아 감자전을 부치자고 하셨다.

이 쓰레기같은 감자들이 우리 손을 거쳐서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음식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열심히 감자들을 다시 손질했다.

잠시 후에 수녀님께서 잘게 잘린 감자  한 다라이를 뒷 마당으로 들고 가시더니 기계에 넣고 갈았다.

기계소리에 나가보니 고추나 마늘가는 방앗간에서 보았던 기계가 있었고 수녀님은 그게 높이 있어서 치마를 입고 올라가서 감자들을 넣고 기계를 돌리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주방에 다시 와서 또 도와줄 일이 없나 하고 둘러보니 상어고기-돈배기-를 큰 냄비에 넣고 양념해서 졸일건데 다른 수녀님이 양념을 만들라고 하셨다.

보니 다른 자매님들이 어느새인가 양파와 풋고추와 대파를 채 썰어 놓으셨다.

나는 조림 양념은 맛있게 만들 자신이 있었지만 시누이 뻘쯤 되는 자매님들이 계셔서 일일이 물어보는척 했더니 간장은 그리 많이 넣으면 안되고 깨소금은 넣으면 안되고등등 잔소리를 시작하는 바람에 조금 피곤하겠구나 싶은 느낌이 들어서 얼른 뒷마당으로 나오니 어느새 수녀님이 감자갈은 거하고 부추를 섞어서 감자전 부칠 재료를 두 다라이나 만들어 두셨다.

그걸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씩 후라이팬에 놓고 눌러 부치란다. 

그런데 후라이팬을 보니 길에서 호떡을 사먹을 때 보았던 것이었다.

크고 편편해서 한 판에 30개 정도는 올라갈 것 같았다.

3명이 서서 한사람은 숟가락으로 반죽을 놓아 눌러 주고 한사람은 뒤집어서 옆으로 밀어주면 왼쪽에 서서 제대로 지져서 완성 바구니에 담아두면 식혀서 또 다른 사람이 그걸 배식하는 그릇에 보기 좋게 담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그 호떡 후라이팬이 너무 신기해서 호떡장사가 된 기분으로 신나게 뒤집었다.

그런데 자꾸하다보니 오른팔과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빨리 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악~ 이럴때 왼손도 좀 번갈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식사가 완성되고 배식구에 차례로 음식들이 차려졌다.

우리 봉사자들은 먼저 식사를 해야한다고 해서 식판을 들고 한끼 밥을 때웠다.

빈 식판을 들고 설겆이를 하러 주방에 들어가니 이미 몇번씩  와서 봉사를 해 본 자매님들은 배식구에 놓여진 반찬 한개 한개 앞에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나는 흰 행주를 빨아서 식탁으로 쓰는 책상을 닦으려고 엉거주춤 서있으니 밥을 먹으려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수녀님이 포개져 있는 식판을 하나씩 떼어 놓아주란다.

나는 식판을 떼어 놓아 주면서 행주를 들고 생선조림을 놓다가 양념이 옆에 묻으면 닦아서 깨끗이 해주면서 자리를 지켰다. 밥과 국을 주는 자리에는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이 자리 잡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 밥을 주면서 \"밥 더 주꾜?\"라고 물어보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에게는 밥을 두배로 얹어 주었는데 산더미처럼 쌓인 밥을 가지고 가서 그걸 다 드시고 가셨다. 그 사람들은 하루에 한끼만 먹고 사는 사람이란다. 거리의 노숙자들인가?

순식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밥을 드시고 가셨다.

설겆이가 남았구나

진짜 하기 싫은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이왕 거룩한 일을 하려고 맘을 먹었으니..

그래도 착한 형제님 한분이 식판에 세제를 묻히고 설겆이를 도와주고 계셨다.

컵과 숟가락, 젓가락을 씼고 물통도 씻고 바닥에 놓여 있는 큰 솥단지와 남비들만 안씻었었으면 생각했었는데 다른 자매님이 하는걸 보고 그냥 있을수가 없어 같이 하면서 밥솥을 들다가 죽는줄 알았다. 어찌나 무겁던지 무쇠솥~~~

생선을 조린 큰 남비에 생선이 눌러 붙어서 쇠수세미가 없냐고 했더니 프라스틱병뚜껑으로 긁으란다. 나는 오른 팔을 되도록 아끼려고 노력하는데 주방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오른손으로 남비바닥을 긁고 있으니 오른 팔이 떨어져 나갈것처럼 아팠다. 

아 하느님도 너무 하시지

내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다고~~

일을 다 마치고 나오는데 어떤 자매님이 오늘은 121명이 밥을 먹고 갔다고 하셨다.

진짜 웃긴다.

집에 와서 어깨와 허리가 욱신거려서 드러 누웠다가 안가려다가 저녁미사에 갔다.

복음 말씀이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였는데 그 사람들은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아무 일도 안하고 매일 밥만 얻어먹고 가는 사람들인가?

만약 그렇다면 진짜 모순이다.

왜 일을 안할까?

매일 얻어 먹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료급식을 하는지를 더 잘 알고 맨날 그런 곳만 찾아 다닌다고 하지 않는가?

나이가 드신 분들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에게는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것이 국가가 해야 될 일이 아닐까?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고?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옛날에 거기 봉사활동을 다니던 형제님이 보이기에 물어보았다.

\"그 요셉의 집에 무쇠솥좀 바꾸면 안되나? 전기밥솥이 가볍고 편리한데 왜 그 무거운 솥단지를 쓰지? \'

그 형제님 왈 \"그 밥솥에 밥을 해야 밥이 맛있잖아요\" 이러는 거다

야 진짜 천사들이 따로 없군

다신 거기 가나 봐라

 

조리를 배우고 나서는 길을 걸어가다가도 식당가의 뒷 주방 문이 열려 있는 틈으로 보이는 커다란 무쇠솥단지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었는데~~~

그전엔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던 장면들이었는데...

 

아악~ 무쇠 솥단지~~~

지금도 뒷목이 뻐근하다.

 

그런데 지금도 거기서 누군가 한끼 식사를 때우고 계시겠구나

또 누군가는 무쇠 솥단지를 씻고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