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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인생(5)] 입대 전 선물...


BY KC 2010-11-15

형의 입대 영장으로 온 가족이 한바탕 눈물의 저녁을 보낸 후 집안의 분위기는 항상 음울하였다. 마치 세상 어디에도 결코 밝음이 없는 듯한 암울함이 항상 온 집안을 내리 누르고 있었다. 온 집안이래봐야 옛날 형식의 부엌이 달린 직사각형 모양의 기다란 방이 전부였다. 따라서 누구도 그 암울한 분위기에서 잠시 동안만이라도 벗어나 다른 세상을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자고 나면 어머니의 긴 한숨, 밝지 않은 형의 출근 얼굴,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어머니의 잦은 푸념, 그리고 저녁 때가 되어 퇴근한 형의 밝지 않은 얼굴이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도 그런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당시 나에게 세상에는 단 두개의 기둥만이 존재했었다. 그것은 어머니와 둘째 형이었다. 그런데 그 두개의 기둥이 늘 활력도 없이 부유하는 듯한 표정과 행동을 하고 있었으므로 나를 둘러싼 세상은 온통 어둡게만 보였다. 특히 어머니는 간간히 재봉틀 돌리는 것을 멈추시고 한 뼘 정도 밖에 하늘을 허용하지 않는 재봉틀 위의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하였다. 그럴 때면 반은 푸념처럼 반은 나와 내 위의 형에게 질문하는 듯한 투로 걱정을 토로하셨다.

이제 어쩐다냐? 큰형도 군대가 있는데 네 둘째마저 군대에 간다면…”

 

비록 어머니의 유교적 기준에 장남으로서 제역할을 하지 못했던 큰 형이지만 그래도 당시 둘째 형이 입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큰 형의 존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으로 보였다. 큰 아들 위로 큰 딸이 있었지만 전통적인 사고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의지하는 것만큼 딸에게는 의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다. 또한 이남에 피난 내려온 일가친척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달랑 우리 여덟식구가 전부였으므로 다른 누구에게 의지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서열상의 큰 아들과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왔던 둘째 아들에게만 의지하며 생계를 꾸려오시던 어머니에게 두 아들의 군대 입대는 의지할 곳을 잃어 버렸다는 이상의 상심함을 가지셨던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내게 있어 둘째 형과 더불어 바로 세상이었던 어머니의 그 눈물젖은 상심은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온통 슬픈 쟂빛의 세상만을 안겨 주었다.

 

입대 영장을 받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실제로 형이 입대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없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본격적인 추운 겨울의 초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기억은 형이 군대 입대 전에 가족에게 사준 선물 때문이다.

 

형은 먼저 당시 겨우살이에 필요한 연탄을 들여 놓았다. 몇장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 그전까지 우리집 작은 창고에 그렇게 많은 연탄이 들어온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할 만큼 연탄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커피포트였다. 왜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옅은 녹색에 하얀색 그림이 그려진 외벽에 아랫부분과 윗부분이 하얀색으로 된 기다란 원뿔형의 모양을 가진 그 보온병을 커피포트라 불렀다. 안쪽은 유리로 되어 있어 뜨거운 물을 끓여 부어 놓으면 얼마 동안 뜨거운 물이 나오던 것이었다. 기분 좋은 쿠션을 가진 윗부분 동그란 뚜껑을 누르면 ~~ 바람이 새는듯한 소리와 함께 뾰족히 나온 주둥이의 아래에서 안쪽의 뜨거운 물을 밖으로 토해내던 앙증맞은 제품이었다. 우리는 서로 그 커피포트의 물을 눌러 마시려고 하였다. 주전자에서 끓였던 물을 부어 놓은 것일 따름인데 우리는 그 커피포트에서 따라져 나온 물이 왠지 더 맛있고 건강에도 좋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그 물을 서로 마시려고 하였고, 어떤 땐 내 차례가 되어 뚜껑을 눌렀는데 그만 푸르륵하고 몇 방울의 물만 떨어지고 물이 나오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리곤 하였다. 이렇게 그 겨울동안 우리가족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받던 만큼 모두가 소중하게 다루었던 커피포트가 형이 군대 입대 전에 가족에게 사준 제품이었다.

 

그리고 세번째 형이 우리에게 사준 것은 온 가족의 내복이었다. 날씨가 추운 어느날 저녁, 형은 나와, 내 위의 형 그리고 그 위의 누나를 데리고 약 한 시간여를 걸어 중앙시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형은 온 가족의 내복을 샀다. 어머니와 큰 누나 그리고 작은 누나의 빨간 내복, 그리고 셋째 형과 넷째 그리고 나에게는 옅은 갈색의 내복을 한 벌씩 사주었다. 이전에도 내복을 사입었지만 거의 전부 소위 에 들어있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날 형이 가족을 위해 사준 내복들은 모두 에 네모 반듯하게 들어 있던 것들이었다. 뚜껑이 열려진채 진열되어 있던 것을 고르면 주인이 선반 위에서 혹은 그 내복이 진열된 아래에서 뚜껑이 닫힌 동일한 내복을 건네 주었다. 곽에 들어있던 내복을 잘 보지 못했던 내게 그 내복은 더 따뜻하고 더 깨끗하게 보였다.

 

온 가족을 위해 그렇게 내복을 산 후 형이랑 함께 동행한 우리 세사람, 나와 내 위의 형과 둘째 누나에게는 겨울 코트를 한 벌씩 더 사주었다. 누나와 내 위의 형의 코트가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내 코트는 안쪽의 털과 바깥쪽의 옷감이 분리되는 반코트였다. 짙은 갈색의 털이 모자와 등 그리고 앞쪽 같이 달려 있고 팔은 누비로 되어 있는 안쪽과 그것을 몇 개의 커다란 단추로 붙여 입는 옅은 갈색의 천으로 되어 있는 바깥쪽으로 되어 있던 것이었다. 형은 몇년은 입어야 된다고 내가 원하던 사이즈보다는 큰 것을 샀지만 나는 그 코트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털이 모자까지 달려 있었고, 바깥 양쪽에 커다란 주머니는 물론 특히 가슴 부위에 후크로 여닫이가 가능한 두 개의 작은 주머니와 왼쪽 어깨 아래에 달린 역시 후크가 달린 주머니가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렇게 온가족을 위한 내복과 세 사람의 코트를 사주고는 형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우리 먼저 집에 돌아가라고 하였다. 아마 누나도 내 위의 형도 그날 산 코트를 입고 집에 돌아왔을 것이다. 나도 내겐 조금 컷지만 맘에 쏙 든 그 코트를 연신 살펴가며 그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그렇게 우리 셋은 기분좋게 집에 돌아욌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누나에게 형이 사준 내복이며 꺼내 놓았을 때 어머니와 큰누나는 기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눈물을 흘리셨다. 곽에 들어 있던 내복을 펼쳐 보지도 않으시고 그냥 소리없이 우시기만 하였다. 아마 내 기억으로 어머니는 그 내복을 한 번도 입지 않으셨다. 집에서 제법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올려두는 선반 위에 그 곽을 그대로 올려 놓은 채로 한 번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