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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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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 뭐길래


BY 카라 2010-11-12

남편이 동호회 시절 취미로 그렸던 그림이 우연히 모회사의 제품에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저작권 사용료로 백만원을 준단다.

아싸!! 이게 왠 횡재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겨울 그림 열심히 그릴걸.

무슨 예술적 고뇌와 철학이 있다고 어둡고 칙칙한 그림만 그려놓고 스스로를 위안했던지..

아무튼 계산에 없던 백만원이 생긴다니 기분이 좋아지는데

몇 달째 마이너스 통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거 들어온다 해도 겨우 마이너스 상쇄할 뿐인데 그렇다고 생활비에 충당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자기야, 우리의 가정경제가 그리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통장은 마이너스이지만...

그래도 없던 돈 생긴 거니까 자기 맘대로 써...대신 부탁하나만 들어주라...“

“응?”

“나 겨울부츠 하나만 사주라. 올해는 꼭 사야지 하면서도 못 산게 몇 년 째다.”

남편은 그제서야 하하하 웃는다.

“어차피 생활비 통장으로 들어오니까 카드로 사.”

“생활비 통장으로 들어오면 마이너스 갚느라 흐지부지 될텐데...”

“그럼 할 수 없고 뭐.”


결혼 전 골드미스라고 믿었던 나, 은근히 패션에도 신경을 쓰고 다녔는데 아줌마가 되고 나서 보니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오래 전 산 부츠는 이미 유행이 지나 촌티가 났다. 그 많았던 나팔 바지들은 이젠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할 판이다. 몇 번 입지도 않아서 아직도 새것인데 이것들을 입고 신고 나가면 영락없는 촌아줌마가 된다.

이상하다. 나보다도 살림이 빠듯한 애기엄마들도 요즘 유행하는 레깅스 바지와 굽이 뾰족한 날씬한 가죽 부츠들을 신고 다닌다.

다들 한 때 그렇게 유행했던 옷들은 모두 버린 걸까?

미스시절 옷들을 만지작 거리며 어쩌면 이것들은 두 번 다시 입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왜냐하면 옷은 멀쩡하지만 그 유행이란 놈 때문에...

남편에게는 나의 이런 속내가 다소 귀엽게 느껴진 듯 했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그런 것들에 초연해진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오랜 고생끝에 전문직에 안착한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젊은 나이에 이사가 되었다고 한터 쏜다기에 나갔는데 여전히 화려한 미모에 싱글들이다.

화려한 그들 앞에서 왠지 모를 위축감이 느껴졌다.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 혹시 트위터 하니?”

하지만 내가 채 대답도 하기 전에 옆의 친구가 말한다.

“얘가 그런 걸 할 리가 없잖아.”

스마트 폰, 트위터...이젠 통신도 유행인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런 것도 안하고 사는 나는

유행과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묘하게도 기분이 나빴다. 그런 거 할 리가 없긴 하지만 이제는 자기들 하고는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이다.

아직도 미쓰인 그들은 선배들에게 소개팅 해달라고 졸라댔다. 선배들은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는 나이가 꽉 차서 마땅히 소개할 데가 없는데 재혼 자리도 괜찮냐며 놀려댔다.

난 선배들에게 적어도 그런 것을 부탁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행복했던 일은 결혼을 하고 쌍둥이를 낳고 키운 일이다.

하지만 당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닌듯 하여 조금은 허전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언젠가 자랄 것이고 자기의 자리를 찾아 떠날텐데 그 때에 나는 과연 무엇이 되어 있을까?

의기 소침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모임을 항상 주선하는 맘씨 좋은 선배가 말했다.

“재네들 너무 신경쓰지 마라. 말은 저렇게 해도 속으로 너를 엄청 부러워하니까.

 직업도 화려한 만큼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란다“

난 선배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정말 고마웠다. 늦은 시간 아줌마이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면 자신의 집과 반대방향인 우리집까지 바래다 주는 친절함과 배려 또한 잊을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유행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걸 느낀다.

연말이 가까워 온다.

벌써부터 송년회를 한다는 문자가 한두개씩 날아온다.

그래도 나는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비록 유행에 뒤쳐진 아줌마이긴 하지만 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유행에 뒤떨어진 아줌마는 아직도 사람들을 만날 때면 어리둥절해진다.

세상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 겁도 난다.

왜냐하면 나는 그냥 아날로그가 좋고, 한번 사면 오년이고 십년이고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아직은 좋기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