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너무 선선합니다. 바람이 다소 차갑게도 느껴집니다.
이제야 말로 뜨거운 무언가가 그리워지는 계절이 온 것 같습니다.
그제는 생일이었고 낼모레는 결혼 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마침 남편이 회사에서 치르는 시험 때문에 모든 이벤트를 일요일로 미루고 제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을 하라고 하네요. 이것이야말로 진짜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제는 말을 할 줄 아는 둥이녀석들이 ‘엄마 생일축하해요’라고 이야기할 땐 정말 새끼 낳은 보람을 느낍니다.
하루종일 말 안듣고 잠들기 직전까지 이것저것 다 해달라고 끊임없이 투정부리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가도 ‘엄마 힘내세요’라며 양쪽에서 팔과 다리를 주무리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하루의 피로가 눈녹듯이 사라져버립니다.
하지만 오래 전 남편과 처음 데이트를 하던 날은 가을이 깊어가는 인사동 거리였습니다.
낙엽이 바람에 뒹굴며 날아가던 그 날은 너무나 추웠고 뜨거운 수제비 한그릇이 더 따뜻했고 손에 쥔 커피 한잔이 너무나 따뜻해서 정말 제 심장을 녹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이 그때로 끝나고 4년동안 우린 얼굴을 보면서도 아무 사이도 아무 관계도 의미도 없이 모른 척 지냈습니다.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지냈던 것이지요.
그리고 매년 가을이면 왠지 그날의 차가운 거리와 뜨거운 수제비와 커피가 생각나더군요.
그 만남이 흐지부지 되니 그 추억도 왠지 쓸쓸해지더군요.
그런데 몇 년후 남편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내게 다시 다가왔고 저는 거절했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진심을 믿지 못해서였고 사람들로 인해 지칠대로 지친 저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완전히 남편과 이별을 하려는 순간 남편은 저에게 죽어도 못 헤어지겠다며 자존심을 모두 내던져버리고 붙잡더군요.
제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건 결혼은 완벽한 인간이 만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인간이 만나서 서로를 보완하며 완성해간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어쩌면 나 역시 한없이 부족하면서도 완벽한 이성을 꿈꾸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그렇게 우린 결혼했고 어느덧 4년이 되었습니다.
가끔 남편은 초창기의 우리가 갔던 경복궁과 인사동거리를 이야기하지만 저는 모른척 외면합니다. ‘난 기억이 안나는데...기억이 나더라도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돌아서서는 씩 웃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가을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지금은 그 기억이 그저 비엔나 커피처럼 뜨거운 커피 안에 든 아이스크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편으로는 생각도 고민도 감성도 많았던 그 때가 살짝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가끔 불행한 결혼 생활을 고민하는 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결혼 초창기의 그 마음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행히 남편은 소나무처럼 한결같아서 지금까지 잘 지내온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한없이 고맙지요. 어찌 보면 결혼하기까지 성숙을 위한 많은 과정이 있었고 힘들었기에 더욱더 소중하게 생각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결혼전보다 주름살은 늘고 서로에 대한 긴장감과 설레임은 없어도 그래도 마음만은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온전히 따뜻해진 가을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네요.
추신: 저와 똑같은 아이디를 쓰신 분을 보고
제가 아컴에 그동안 너무 글을 안올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이 반성 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