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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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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딸, *채는 예뻤다.


BY *콜라* 2010-09-05

엄친딸, 그녀는 예뻤다.

 

얼굴 예쁘고 공부 잘하고 효심이 극진한 

엄친딸 *채가

1년의 밴쿠버 생활을 알차게 보내고  

한국으로 떠나기 이틀 전 가게로 찾아왔다. 

 

재학중인 연세대학교를 휴학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밴쿠버에 입국한 지난 가을

아컴 에세이방 엄마의 글 친구라는 인연으로

처음 찾아 왔던 그날보다

더 씩씩해 진 모습으로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온 것이다.

 

나는 늘 바쁘고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아르바이트하며

각자의 이유에 매달려

10분 거리에 살면서도 그리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간간이 안부를 묻고

만나서 밥도 먹으며 풋풋한 꿈과 도전을 흐뭇하게 듣곤 했었다.

 

흐르는 세월, 도끼로도 막지 못한다던가.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서 떠나야 할 날이 되어 버렸다.  

 

함께 떠나기로 약속하고 신청했던 인디언 원주민 선교를

채 정리되지 못한 가게 사정으로 혼자 떠나 보낸 후

돌아올 날짜가 지나도 소식이 없어 몹시 궁금했지만

어른들의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간섭일 수 있어

연락오기만 기다리던 중이었다.

 

민채가 작별인사를 오던 그날은

내가 엄마의 병을 통보 받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느라

핏발 선 두 눈을 부릅뜬 채

걸음 걸음 떨어지는 눈물을 삼키며 하루를 견디고 있던 오후였다.   

 

~! 이모! 이모 위로해 드리려고 선물을 준비했어요.

 

한 손에 초밥, 한 손에 쇼핑백을 들고  

말 그대로 하며 매장 앞 계단을 폴짝 거리며 그 애가 뛰어들어 올 때

결 고운 긴 생머리가 어깨아래서 찰랑거렸다.  

 

예의 씩씩한 목소리, 환한 얼굴로 들어선 민채는

나를 향한 염려와 걱정을 감추고

선교 다녀온 이야기부터 까르르 웃음으로 쏟아내며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를 할까 고민하는 속내가 느껴졌다. 

 

이모! 내가 선물을 준비했는데 이모 마음에 들었음 좋겠어요

 

지난달 감사의 선물이라며 오메가3를 준 걸 잊은 걸까.

또 선물을 준비했단다.

해준 것도 없는데, 두 번씩이나 감사의 선물을 준다니

고마움과 미안함이 쑥스럽기만 하다.

 

학생이 무슨 돈 있다고 툭하면 선물이냐고 을 주는 내 말에

그러지 않아도 돈으로 사는 선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듯하여

영혼의 양식을 준비했다며 비장한 얼굴로

기운 없는 나를 매장 내 가장 중앙 테이블에 끌어다 앉혔다.

 

혹여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다짐을 한 번 더 한 후

쇼핑백에서 조심스럽게 민채가 꺼낸 것은

작은 피리였다. 

 

아이리쉬 휘슬

 

솔직히 이전까지 그런 악기를 본 적도 없고

이름조차 생경한 작고 앙증맞은 피리는

*채의 가늘고 하얀 손가락 안에 숨은 듯 안긴 듯……

맑고 고운 고음의 선율로 

내 지친 마음과 슬픈 하루를 위로하고 있었다.

 

나를 위한 작은 음악회……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이보다 감동적인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인터넷을 통해 독학으로 익힌 취미 수준이라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짧은 곡이 못내 아쉽고

이틀 후 헤어짐이 서운해서 더 애절하기만 하던 피리소리

 

커튼 콜에 가까운 앵콜 송을 청해 연이어 감상한 후에 

무슨 연유인지 고맙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너무 예상치 못한 선물에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며칠 동안 침잠해 있던 내 깊은 슬픔을 걷어 내어 준  

나를 위한 민채의 작은 음악회는

영원히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선물로 기억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 차마 쑥스러워 하지 못했던

정말 행복했다는 말

민채야 고마웠어..... 한 마디를 이제서야 전한다.

 

 

추신: 1년 동안 심정적으로 내 딸이었던 *채를 다시 그대향기님에게 돌려 드린 지금

그 아이가 살던 다운타운 jurvis 거리가 너무 황량해서 싫어 졌다.

늘 헤어지고 나면 더 잘해 주지 못했던 게 아쉽고 후회스럽고..

나에게 이별은 언제쯤, 몇 살쯤 면역이 생길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