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장마철 날씨만큼이나 변화가 무쌍한 우리집
중단한 학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 별거를 선언하고 강원도로 떠났던 큰 딸이 돌아왔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또 다른 별거를 위해 돌아왔다.
강원도에 올라가더니 이번 학기에 복학하기보다는 내년 봄학기에 복학하는게 낫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며 들고 간 보따리를 도로 싣고 내려왔다.
싱겁기는....
그 날 이후... 큰딸은 바로 아르바이트자리를 알아보더니 부산의 동물병원에 취직을 했단다.
전공도 살리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애완견이나 다른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면서 좋아했다.
면접 때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은 큰딸의 미소가 너무 밝아서 기분이 좋아지는 얼굴이라고 하더란다.
애완동물들을 수술할 때 피도 봐야한다며 혹시 기절수준까지 가는 소심파인지를 물었을 때
딸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그랬고 많은 개들을 키워 본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면접에서 통과했단다.
일단은 동물들을 안 무서워하고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면서......
일반학과를 다닌것도 아니고 동물관련학과를 다닌 경력이 아주 좋은 점수를 준 모양이다.
원래 큰딸은 수의학과에 진학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애완견문화가 많이 보편화되면서 수의학과는 너무 높은 점수를 따야만 했고
시골 고등학교에서 중간쯤 하던 성적으로는 수의학과는 너무 버거운 학과였다.
그래도 동물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던 큰딸은 그 비슷한 공부를 한다며 동물자원학부라는
학과를 선택했고 경남의 시골학교에서 춘천의 강원대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 학과는 애완견보다는 덩치 큰 소나 돼지 같은 동물들을 알기 위한 공부가 더 많았지만
개에 관한 공부도 같이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애완관련 학과도 더 마치고 싶어했던 큰딸이
그런 학과를 선택하기까지 우리 부부 특히 남편이 준 영향이 지대하다.
큰딸이 어릴 때 부터 우리집에는 한두마리의 강아지들이 늘 있었고
큰딸이 중학생 무렵에는 아예 엄청난 애완견 사육까지 했으니...
보통 특수견이라 칭하는 고급애완견들을 아버님 댁에서 부업으로 사육을 했었다.
우리 애들은 너무 좋아했었고 꼬물꼬물 이쁜 강아지들이 늘어나는 재미는
팔아서 돈이 된다기보다는 키우는 재미가 더 좋았었다.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 같은 표정이 있는 이쁜 강아지들은 아이들의 순진한 친구들이었다.
어디 좋은 개가 있다고 하면 차를 몰고 밤중에도 개를 사러다녔던 순수했던 개 사랑.
달마시안의 귀여운 옷이나 닥스훈트의 짧아도 기름진 몸매며 허스키의 신비스런 눈매
새침떼기 푸들이나 머리 좋기도 유명한 양치기견 보도콜리 멋쟁이 코카스페니엘 등....
팔기 위한 애완견 사육이라기보다는 개들마다 지닌 특징이 더 즐거워 우리는 강아지들이나
어미견을 사 들였고 혈통좋은 종자견은 무리해가며 사 들여서 길렀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 온 애들은 책가방만 방에 던져 두고 조르르 할아버지집으로
아니 강아지를 보러 개사육장으로 달려들 갔었다.
그 시절에 큰딸은 동물관련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을 굳혔고 꿈도 키운 모양이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세련되고 폼나는 일을 저질러줄건데...ㅎㅎㅎㅎ
개 사육은 생각보다 일이 너무 많았고 우리가 좋아서 취미로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료값도 만만치 않았고 많은 개들의 뒤치닥거리는 정말이지 중노동이었다.
사람하고 달라서 우리에 종류별로 가둬 놓은 개들이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날마다 사람이 우리에 들어가서 일일이 치우고 물로 씻어 줘야하고 어떤 녀석이 임신기가 되었는지
날마다 사육장 바닥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보면서 적당한 시기에 교배를 시켜줘야 하고....
일년에 두번 있는 그 기간을 놓쳐버리면 안되기에 늘 긴장하며 봐야했다.
그러다가 임신이 되고 두 달 후에 새끼를 낳게 되는 날에는 낮이면 다행인데 밤에라도 낳게 되면
밤을 꼴딱 세우기도 했어야했다.
새끼를 혼자서도 잘 낳고 새끼 치중을 잘 하는 어미견이 있는가 하면
새끼를 낳다가 어미가 깔아 뭉개서 죽이는 경우도 종종있어서 새끼 낳는 날은 사육장 안을 잘 살펴야한다.
낳자마자 탯줄을 어미가 끊어주면 어미젖을 바로 물면 건강한데 어쩌다가 약한 강아지라도 나오면
강아지 혼자서 젖을 못 찾고 끙끙거리기라도 하면 얼른 엄마 젖냄새를 맡게 하고 젖꼭지를 물려줘야한다.
안그러면 다른 건강한 새끼들한테 치이고 젖을 못 물다가 결국엔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비실비실거리는 약한 강아지를 어미도 내 치는 경우를 가끔보게 되는데
그런 경우는 아무리 젖을 물려줘도 스스로 잘 빨지 못하다가 결국엔 건강한 다른 강아지들 틈에서
도태되고 어미한테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
그런 일들이 있게되는 날에는 개사육장에서 살다시피 해야 하는데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 결국 사랑하는 개들을 팔아야 한다는데 합의를 봤다.
그 개들을 사 들이면서 돌아다녔던 우리 부부의 열정이나
이쁜 강아지들이 한마리 두마리씩 불어나면서 애들이 기뻐하고 귀여워했던 시간들이
쉽게 개들을 넘기지 못하고 한달 두달..시간을 자꾸 끌다가 결국엔 애들이 학교 가고 없는 시간에
처음 사들였던 가격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가격으로 그 이쁜 각아지들을 다 팔고 말았다.
마지막 개들까지 다 실려 나간 빈 사육장에는 애들이 남긴 웃음만이 남아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걱정스러웠다.
아이들의 실망과 안타까움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개사육장 곁에도 안 가고 싶었다.
우리 안에서 강아지들을 받았고 꼬물꼬물 귀염을 떨면서 기어다녔던 강아지들이 눈에 어른거려
아이들보다 더 큰 실망이 나를 힘들게도 했다.
자꾸만 강아지들의 발길질이 내 발에 걸리는 듯도 했다.
개들이 모두 떠난 빈사육장을 보고 울먹이던 큰딸의 모습은 내 마음을 오래도록 아프게 했었다.
좀 남겨두지 다 팔았어요????......................
울먹이며 자꾸만 그 말을 되뇌이던 큰딸 그리고 둘째와 막둥이까지.
너무나 좋은 장난감들을 잃어버린 아이들처럼 여기저기 개 사육장을 강아지들을 찾아다녔다.
다음 봄학기에 복학을 하겠다며 동물병원에 취직을 하고 부산에 원룸을 얻고 정말 또 별거에 들어간단다.
전공도 살리고 이쁜 강아지들을 원없이 만지게 되는 일이라서 너무 좋아한다.
동물병원과 함께 애완견센타가 같이 있어서 미용도 배울 계획이라며 꿈에 부풀어 있다.
사위가 순순히 취직을 허락했고 별거에 동의를 해 줬다니 고맙다.
혼자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데도 딸의 꿈을 위한 일이라며 그 정도는 참아준다니 다행이다.
나중에 이곳 시골 땅에 개훈련소를 차리고 싶어하는 큰 딸.
남편도 나도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해 보라고 딸의 꿈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기엔 더 많은 공부도 해야하고 경험에 실력도 길러야 한다.
걱정이 앞서기보다는 큰딸의 꿈을 향한 발걸음에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은데 딸아~~
뜻이 있는 곳에 길도 있는 법.
여자가 하기에는 좀 벅차뵈고 힘이 들 것 같아 조금은 걱정스럽지만
그럴수록 더 도전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지 싶구나.
엄마는 아주 멋져보여서 화이팅을 힘차게 외쳐본다.
우리딸 화이팅~~!!!!
초지일관 하나의 꿈을 키우는 너의 앞날에 푸른빛깔 희망의 깃발이 높이 펄럭이기를......
목표가 분명한 사람의 발걸음에는 힘이 느껴진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