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고양이는 안녕하신가?
집안에 연로한 어른 안부 여쭈어 보듯
서른 두 살 아가씨 은정이에게 나는 수시로 물어 본다.
일을 시작한 지 3일만에 매장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가서
차비가 없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나
급여를 보름에 한 번씩 미리 달라고 할 때도
나이가 있으니 부모님 도움 받지 않고 외국서 살기가 버거운가 보다 짐작했을 뿐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난 달 30일.
집 렌트비와 주인 캐네디언 할머니의 카드를 빌려 사용한 금액을
돈이 부족해서 이번 달에는 다 갚지를 못했다는 말에
파트타임 수입이 적다고 해도 렌트비를 못 낼 정도는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쓰기에 남의 카드까지 빌려서 사용했는지 물어보지 않고 넘길 수가 없었다.
“넌 어린 애가 아니라서 내가 신경을 안 썼는데, 두 곳에서 일하고 팁까지 합치면
혼자 충분히 살 텐데 남의 카드를 빌려서 사용할 만큼 그렇게 쓰냐. 항상 자기 수입 규모에 맞춰서 살아야지.”
머뭇거리던 은정이가 적자난 이유가 ‘고양이 때문에’라고 한다.
\"너 혼자 살기도 빠듯한데 그러게 고양이는 왜 키워. 당장 누구 줘 버려”
다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던 은정이가 ‘얼마나 의지 되는데요..’ 한다.
한국 가는 사람이 주고 갔냐는 물음에 한국서 직접 데리고 온 거란다.
“동물 데리고 오려면 비행기 표 사야하고 진료 기록도 있어야 하고
이것 저것 경비가 얼만데, 엄마한테 맡기고 오던지 누구 주던지 하지 뭐하러 데리 왔어. \"
다시 머뭇거리던 은정이가 말 했다.
“우리 야옹이는….. 앞을 못 봐요…”
“뭐??? 하아~ ! 장님 고양이면 더 버렸어야지. 그걸 비행기 표 사서 왜 데리고 와!
돈도 300만원밖에 안 가지고 출발 했다면서 어떻게 키우려고 데리고 올 작정을 했어……
얼른 누구 줘 버려. 여긴 동물 하나 키우는 게 애 하나 키우는 만큼 돈 들어! \"
니가 천사냐! 동물보호단체 직원이냐……
참고 있던 말이 봇물 터지 듯 쏟아졌다.
직원들과 회식을 하면 맛있는 음식일수록 다른 사람 앞으로 밀어 놓고
모자란 듯 하면 먼저 수저를 놓는 ....
영악스러움이라곤 약에 쓸래도 찾아 볼 수 없는 애가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 여행한 번 제대로 다니지 못하면서
‘지금 무슨 정신 나간 짓이냐’고 화가 나려고 했다.
출근 길에 어느 골목에서 염증으로 두 눈이 붙어 있던 고양이를 발견하고
‘괜찮아… 걱정 마’ 꼭 껴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치료 시기를 놓친 고양이는 결국 장님이 되었다는 은정이의 고양이.
지금도 미리 이름 부르며 가만히 안지 않으면 은정이 손길에도 움찔 놀란다며
버리라는 내 말에 생각만 해도 안스러워 죽을 표정을 짓는다.
하, 아무리 충청도 양반 동네에서 자라나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예술을 사랑하는 착하디 착한 아가씨라 하더라도
애완동물 살 때나 넘겨 받을 때 일단 건강하고, 귀엽고, 복종하는
그것이 애완동물 답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터.
내가 내린 명쾌한 해답은 하나 였다.
“장님이니까 버려…”
잠잠히 듣고 있던 은정이가 내 해답에 가만히 X 표를 쳤다.
“장님이니까 버릴 수가 없어요.”
장님이기 때문에 받아 줄 사람도 없고
장님이기 때문에 돌보아 줄 누군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고
장님이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에 버림받는 상처까지 줄 수 없고
장님이기 때문에 도둑고양이로도 살 수 없어 죽을 지도 모르고
장님이기 때문에 내가 돌봐야 한다…
는 것이다.
할머니의 카드를 빌려 쓰게 된 것도
창살 위를 가만가만 오르내리며 놀던 고양이가
발을 헛디뎌 베란다로 떨어지면서 골반이 부러졌단다.
이 나라는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동물병원 치료비가 사람의 몇 배다.
응급실로 데리고 간 고양이 치료비가 한 번에 400불, 한화로 약 50만원이었고
이후 고정하는 기브스를 하고 통원 치료비와 약값 때문에 어려워하자
집 주인 캐네디언 할머니가 자신의 카드로 우선 결제를 하고 매월 갚게 했다는 것.
삼겹살 좋아하느냐고 지나가는 말처럼 묻는 내 말에
너무 너무 좋아하는데 비싸서
밴쿠버 생활 6개월이 되도록 한 번도 먹지 못했다던 애.
1인분에 1만8천원가량으로 한국보다 비싸긴 하지만
6개월 동안 한 번도 먹지 못할 만큼의 금액은 아닌데
비싸서 못 먹었다는 아이가
고양이 치료비와 사료 값, 간식 값에 아낌없이 쓰고도 후회가 없다.
험한 세상 살아 가려면 모진 구석도 있어야 한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져 살지 마라는 타박에도
여전히 ‘우리 야옹이는요……’로 시작되는 고양이 자랑을 할 때면
행복해서 죽는다.
저게 착한 걸까? 푼수 일까?
이런 며느리 본다면, 나 같은 성질 급한 시엄니들은 속 터져 명(命)대로 못 살거나
들볶아 대서 지가 먼저 죽거나…….
그래도 신경이 쓰여 수시로 묻는다.
\"장님 고양이는 잘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