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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부인은 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BY 일필휴지 2010-07-18

장맛비가 이틀간 요동을 쳐 ‘주었다’.

그 덕분으로 이틀간은 더위를 모를 수 있어 고마웠다!

 

그러나 오늘의 하늘은 다시금 폭염을 동반한 점령군으로 들어설 기색으로 역력하다.

노는 토요일인 어제는 오전에 재래시장에 가서 닭을 두 마리 샀다.

 

직장에서 휴가를 맞아 오늘 오후에 온다는

아들에게도 먹일 요량으로 아내의 요청에 의해 산 거다.

닭 볶음탕은 자주 해 먹였기에 물릴까 봐서 삼계탕 용도로 달라고 했다.

 

닭을 파는 총각은 닭의 꽁지를 떼어내고 약간의 손질을 하여 주었다.

이어 대추를 사고 길 건너의 인삼을 파는 아저씨에게도 갔다.

 

“한 근에 얼마쥬?”

“5천 원이유.”

 

“남은 돈이 3천 원뿐이니 반 근만 주세유.

삼계탕에 정작 인삼이 안 들어가서야 서운하니까유.”

“맞는 말씀이유!”

 

그렇게 사온 닭과 인삼 등을 넣어 끓인 아내의 ‘정성표’ 삼계탕에

소주 두 병과 맥주도 입가심으로 한 병을 더 마셨더니 까무룩 잠이 쏟아졌다.

 

덕분으로 어제는 대낮부터 밤늦게까지 세상 모르고 수면 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다.

타는 목마름의 갈증으로 눈을 뜨니 시간은 어느새 밤 9시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차가운 보리차를 한 잔 마신 뒤 자는 아내를 깨울 순 없어

마루에 깔고 자는 이부자리에 다시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평소엔 안방의 침대에서 아내랑 둘이 자는데

무더위가 창궐하는 요즘엔 잠시 ‘별거’ 중이다.

이는 겨울과는 달리 둘이 붙어서(!) 자면 더 더운 때문이다.

 

마루에 이불을 깔고 바로 머리맡에는 선풍기를 튼다.

덮을 거로는 까슬까슬하여 시원한 얇은 이불을

사용하는데 그러나 새벽녘이나 되어야 비로소 덮게 된다.

 

밤에는 열대야 비슥한 더위가 여전한 때문이다.

한데 이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적에 죽부인(竹夫人)처럼 요긴한 데 또 없다.

 

대오리로 길고 둥글게 얼기설기 엮어 만든 기구인

죽부인은 여름밤에 서늘한 기운이 돌게 하기 위하여 끼고 자는 일종의 동무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죽부인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는 경향이다.

왜냐면 죽부인의 사용은 부인, 즉 아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기는 생각 때문이다.

 

고루하고 진부한 사관일지는 모르겠으되 여하튼

죽부인을 끼고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는 남편이라고 가정(假定)해 보자.

 

아울러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 내가 부인의 처지라는 관점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부아가 활화산으로 치솟지 않을지?!

 

죽부인 아니라 그 이상으로 시원하고 좋은 여름철

냉방기구가 있다 한들 배우자인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빌미가 된다면 아예 상종조차 안 하는 것!

 

이게 바로 나의 여전히 오롯한 고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