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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팝송


BY 그대향기 2010-07-02

 

 

 

날씨가 후줄근하고 덥다.

아침부터 습도가 너무 높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베어 나온다.

온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옷도 순면으로 감싸 있지만 그래도 덥....다.

주방으로  마당으로 2층 집으로 동동거리다 보면 어느새 옷은 다 젖어 있다.

그래서 내겐 순면으로 된 이쁜 티셔츠가 아~주 많다.ㅎㅎㅎ

손님들이 자주 오고 땀냄새나는 옷을 입고 있으면 실례가 되니......

 

일터가 워낙에 넓다보니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많이 걷게되고

또 자외선에 너무 노출이 심하다보니 거무튀튀하게 늙어간다.

기본바탕도 좀 검은 혈색인데다가 자외선 무제한 공급이다보니...ㅋㅋㅋ

땀 때문에 요즘은 화장은 생각도 못한다.

선선해지면 예의상 약간 하는 화장이고.

그래봤자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고 놀리는 남편이지만.ㅋㅋㅋ

 

이른 아침에 하는 운동도 요즘은 삼가하고 있다.

갈 때는 별로였던 햇살이 돌아 올 때는  제법 뜨겁다.

햇살을 등지고 올라간 산이 하산 할 때는 햇살을 안고 내려와야 한다.

운동을 안 할수는 없고 그리하여 다시 지하세계로 진입.

습한 냄새가 좀 나긴하지만 그래도 전천후 헬스장이질 않은가~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 다음 여기저기 손볼데를 좀 손보고.

 

물걸레로 먼지를 좀 닦아내고

운동기구들을 하나 둘 제자리에 두고 틀어 놓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낡은 가죽쇼파에 앉아서 추억에 잠기며 음악을 들었다.

지난번 막내오빠한테 부탁해서 구입한 운동할 때 듣기 좋은 테잎을 하나 부탁한게

흘러간 팝송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기숙사 담 밖으로 들었던 그 추억 속의 팝송들....

 

Sun of Jamaica

Rivers of Babylon

Wanted

Eldorado

Call Me

Hello Mr Monkey

One Way Ticket

Fame

Gloria

Mamma Mia

Living Next Door To Alice

.

.

.

.

.

.

 

새벽반과 오후반 야간반으로 나누어서 3교대근무를 하면서

졸린 눈으로 또 학교를 가야했던 그 시절.

지친 몸으로 들어 와 최대한 빨리 씻고 자리에 누우면 기숙사 담 밖에 있던 소리사에서

이런 팝송들이 신이 나서 흘러나왔었다.

스피커를 내가 사는 기숙사쪽으로 해 놓고 틀어주던 팝송.

때로는 소리사에 들려서 원어로 된 가사를 손에 넣고 한글로 다시 적어서

외우기까지 했던 정겨운 팝송들.

 

내 여고시절  꿈과 함께 했던 팝송들이다.

느리디 느린 팝송은 어쩐지 우울한 것 같았고 정확한 가사전달이 어려웠던 팝송은

그냥 신나고 즐거운 곡이 더 좋았었다.

때로는 퇴근길 먼지 투성이 몸으로 들어 가던 그 긴 골목길에서 이런 음악이 흐르면

온 몸의 기운들이 다시 활기를 찾았고 열일곱 열여덟의 꿈많은 소녀로 다시 살아났었다.

몸치에 춤치였지만  워낙에 흥은 좀 있는 편이라 팝송이 흐르면 엉덩이를 들썩들썩~~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힘겨운 교대근무시간을 날려 보냈었다.

 

막내오빠가 배달해 준 카세트 테잎 한장이

추억을 일어나게 하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기숙사 담이며 골목길을 떠오르게 한다.

엄마아버지의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또래 여고생들이 마냥 좋아보였던 그 시절.

쓸데없는 자존심만 하늘을 찔러서 친한 친구 몇 한테만 나의 소식을 전하고 살았었지.ㅎㅎㅎㅎ

절대로 기죽기는 싫어서 산학협동의 학교에 다닌다는 그 사실이 왜 그리도 입 밖으로 안 나오던지...

어린 마음에 고등학교는 다니고 싶고 맨날 사고만 치는 오빠들 덕분에 집안은 풍비박산.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부모님 곁을 떠나긴 했어도 가난했던 고향집이 늘 그리웠었고

엄마의 젖은 눈빛이 사무치도록 그리웠었다.

 

저당이 잡혀서 넘어가기 일보 직전에 잠오는 눈 비비며 번 돈으로 찾아야했던 고향집

철이없었던건지 누구의 꽴에 빠졌었던건지 오빠들은 사고뭉치들이었다.

엄마의 희생은 끝이 없었고 하나뿐인 외동딸의 고등학교 진학까지 불투명했던 그 때

고향집에 더 이상 머무른다는 것은 나의 앞날에 먹구름만 안겨줄 것 같아서 떠났던 열여섯살의 소녀는

교대근무도, 졸린 눈으로 듣던 수업도, 반갑고 고맙기만 했었는데.....

우리 아이들한테는 가난이나 너무 심한 고통은 물려 주고 싶지 않아서

내 몸이 힘들어도, 내 몸이 더 이상의 일을 거부하는 듯한 몸짓도, 기쁨으로 이기려 한다.

힘들고 가슴 아픈 일은 내 대에서 끝이고 싶어서다.

내 땀과 남편의 땀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주고 싶은거다.

 

엄마가 그립고 고향집이 그리웠던 열여섯 어린 소녀가

그런 날들을 기숙사 밖 담장 너머의 팝송을 들으며 견뎠고

잡초처럼....아무데서나 뿌리 내리길 잘 하는 잡초처럼 살았었다.

지금은 추억 속의 팝송이지만 그 시절에는 내가 넘어가지 못할 자유처럼 느껴졌었다.

지하실의 전천후 헬스장에서 듣는 추억의 팝송은

또 다른 곡으로 내게 편안한 휴식을 준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지하실 공간이 얼마나 고마운지.....

오늘 밤에는 페브리지라도 들고 내려가야겠다.

 

저랑같이 추억여행하시러 지하실로 내려가실 분 어디 없으세요?ㅎㅎㅎㅎ